해인사 성보박물관은 해인사 신불교문화단지의 한 부분으로 시작되었다.
1980년, 해인사는 절 본래의 기능을 확장한 새로운 불교문화단지를 큰절과 입구 관광단지 사이에 짓기로 결정하였다. 불교문화단지는 네 가지 주요한 기능을 갖게 되었다. 첫째는 성보박물관이며 둘째는 만불전으로 예불과 국제회의를 할 수 있는 장소다. 셋째는 선수련원과 팔만대장경 연구소이며 넷째는 야외대불을 중심으로 하는 옥외사원으로 된 이 프로젝트는 해인사의 1200주년이 되는 2002년에 완공되도록 계획되었다.
불교문화단지의 부지는 큰절과 두 계곡의 물이 산으로부터 흘러와 관광마을과 아랫마을이 교차하는 옛 해인초등학교 자리다. 풍수지리적으로 매우 좋은 곳이며 본래 이 곳에는 허덕사라는 가야왕국 시대의 절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20세기 초 일정시대에 초등학교가 세워졌다가 폐교되었다. 큰절 가까이 위치하고 있으므로 관광마을과 아랫마을간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불교문화단지를 지나야 한다. 따라서 이 단지는 절의 새로운 관문 역할을 함과 동시에 관광마을을 큰절로부터 격리시키는 역할도 하게 된다. 원래 사원은 수도승과 신도들을 위한 공간이다. 따라서 일반 관광객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사찰 자체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불교문화단지가 중간지대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IMF로 인해 성보박물관만 진행되었다. 성보박물관은 해인사가 가지고 있는 성보유물을 수장 전시하는 일 외에도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일반인들에게 보이는 특별한 역할을 해야 한다.
수다라장, 법보전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일반인들이 직접 보게 하는 일은 어렵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팔만대장경은 일반대중과 격리되어 보호되어야 하므로 성보박물관은 성보 중의 성보인 팔만대장경을 간접형식으로 보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불교 박물관으로서의 제 기능인 불교의 내용을 시각형식으로 알게 하는 일을 제대로 하려면 불교의 정수를 담은 불교미술을 체계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해인사 성보 박물관은 해인사 수장 성보유물과 팔만대장경과 불교미술을 보이는 세 기본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되었다. 박물관의 내용에 대해서는 세 기본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것에 의견이 일치를 보였으나 항상 절집을 지을 때마다 문제되는 건축양식에 대해서는 전통형식을 취할 것인가 새로운 건축형식을 취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였다.
현재까지 한국의 사찰을 건축하는 것을 보면 전통적 목조건축형식으로 하거나 철근 콘크리트와 같은 현대식 재료를 사용하여 전통양식을 재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고식적 방법을 대신할 수 있을 창조적 대안을 모색하여 사원 건축의 새로운 표현기법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현대건축이 아무리 미학적인 수식을 동원한다 해도 역사와 전통을 대신 말하기는 어렵다. 현대건축 언어는 전통건축과 표현형식이 다르므로 역사에 대한 감상적 덧칠보다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자기모습을 유지함으로써 역사와 대응적으로 대화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역사와 관련된 건축물의 경우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상생적 미학이 더욱 필요하다.
그리고 해인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1200년 역사를 가진 가람이다. 수다라장, 법보전을 지으신 학조대사는 대장경을 안치하기 위한 건물을 설계할 때 단순히 옛건축형식을 따르기 보다 판전이 가져야 할 물상적 요구를 최고로 수행할 수 있을 과학적 공간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였다. 학조 스님이 설계한 팔만대장경을 안치하기 위한 건물인 수다라장, 법보전의 건축형식은 단순명료하면서도 치밀한 자연친화적 공간조직을 이룸으로써 열, 습기 그리고 통풍에 놀라울 만한 내구력을 보이고 있다.
학조 스님이 만일 살아 있었더라면 어떠한 건물을 지었을까를 생각하였다. 현대기술과 전통 건축의 미학을 함께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양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태양과 물과 바람 등의 요소들과 건축공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건물이 주변 환경과 밀접하게 교감하는 공간형식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특히 인공적 에너지 장치를 최소화하고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끌어들여 적극적으로 주변 환경은 건축과 일치시키려 노력하였다.
건축물 앞마당은 한국의 전통마당처럼 하고, 건물 높이도 위압감에서 벗어나도록 완만한 곡선과 평면성을 강조하였고, 전통사찰이 가지는 단청효과 등 화려한 모습과 달리 외관을 목재와 회벽과 티타니움 징크 등 재료본래의 색채를 그대로 나타나게 하여 외관을 강조하지 않는 익명성을 추구하였다. 철골구조와 외관의 목조와 회벽을 그대로 안으로 이어 외벽과 내벽 마감이 모두 현대건축형식을 존중하여 목구조인 해인사의 사찰양식과 대조를 이룸으로써 건축물이 갖는 종속성을 의도적으로 탈피하였다. 따라서 이 공간은 사찰과 함께 존재할 수도 있고, 따로 떨어져 서 존재하여도 무방한 자기정체성을 확보하도록 하였다.
외관은 한국의 전통건축형식과 현대건축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절충주의적 디자인을 통하여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느낌을 연출하였다. 내부공간은 괘불의 높이를 고려, 8m보다 높게 설정하고 외부 공간과의 상호관입을 극대화 하였다. 중심부를 4분의 1곡선의 원형으로 하여 곡선이 주는 완만한 부드러움을 유지하였고 유물관 2층은 원형 돔을 형성하여 바깥의 가야 산 자락과 유연하게 어울리는 유기적인 내부공간을 창출하려 하였다.
내용에 있어서 박물관은 크게 세군데 전시부분으로 되어 있다.
1층의 성보유물전시실, 지하의 불교예술전시실, 2층의 팔만대장경 전시실이 그것이다. 성보 유물실은 해인사의 불교미술컬렉션을 전시하는 곳이고 불교예술 전시실은 불교미술전반을 다룬 기획전시실이며, 팔만대장경실은 팔만대장경의 제작과정과 내용을 프레스코화와 비디오 아트로 보여주면서 수다라장, 법보전의 모형을 함께 전시하도록 하였다. 특히 수차례 백남준 선생을 소호의 스튜디오로 찾아가 팔만대장경을 비디오 아트로 만드는 일을 논의하였다. 고려의 불화가 세계최고의 미술이 된 것같이 선생의 <팔만대장경 비디오 아트>가 해인사 성보유물박물관의 또 하나의 세계적 작품이 될 수 있도록 1년 넘게 긴 논의를 거쳤다.
팔만대장경 비디오 아트의 배경인 프레스코화는 반년이 넘는 진영선 교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움직이는 그림과 프레스코화 간의 현묘함 교감을 이루어 내었다. 세라설계가 디자인한 내부공간은 수다라장, 법보전의 내부공간의 분위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살려 해인사 성보박물관 특유의 내부공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었다.
전체적으로 현대건축형식으로 해인사가 갖고 있는 전통건축형식의 미학을 표현하려 노력하였으나 아직 옥외공간은 물론 만불전, 수련원, 야외대불 등 주도공간이 완성되지 않았다. 본래 계획하였던 모두가 이루어져 원래 의도하였던 불교단지의 모습이 드러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