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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푸대에 옛술을 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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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명법 2002년 07월 245호
주역에 ‘항恒’이라는 괘가 있다. ‘오래 됨’을 뜻하는 이 괘는 뜻밖에도 가장 변화가 심한 우레와 바람으로 만들어져 있다. 영원한 것을 변하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찾았던 플라톤과 달리 천지의 조화를 끝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 조화를 영원한 것으로 본이 괘만큼 동양적 세계관을 잘 나타내는 것도 없을 것이다.
박물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이 괘의 의미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박물관이라는 것이 절집뿐 아니라 우리 문화에 낯선 것은 박물관이 제국주의의 산물로 식민지 약탈물을 과시하기 위해 세워졌던 서양사의 배경도 있겠지만 변화와 영원함에 대한 우리 나름의 관념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상 우리에게는 특별히 원형이라는 개념도 없고 그 원형을 보존하려는 시도도 많지 않았다. 더구나 모든 상이 허망함을 절감하는 사문에게 변화에 맞서 무언가를 보존하려는 시도는 한낱 인간의 부질없는 노력쯤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조화에 순응했던 우리 조상의 두터운 심성은 변화의 허망함을 허무로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에 순응하며 영원한 것을 만들어 가는 지혜를 쌓았는데 해인사야말로 그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싶다.
여러 차례 큰 화재를 당하여 중수를 거듭해야 했던 이 가람에서 창건 당시의 원형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창건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분적 변화를 거듭하면서 지세를 이용하여 빼어난 가람을 일구어냈다. 개산 1200년, 그 많은 변화에도 우뚝하게 보존된 것은 우리 선조들의 간절한 정성과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1491년 조위가 쓴 <해인사중수기>에는 중수의 내역과 더불어 흥망성쇠에 대한 애틋한 심정이 토로되어 있다.
“생겨나고 망가지는 운수가 하늘에 달렸는지 사람에 매였는지는 모르거니와, 성쇠 흥망이 끝없는 이 세상에서 이 절이 언제까지나 오늘과 같을 것을 무엇으로 보장하랴. 뒷날 이 절에 있는 이들은 마땅히 두 전하의 독실한 효성과 등곡 스님의 경영하던 수고를 항상 잊지 않고 더욱 수도·교화하여 성쇠의 운수에만 맡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또 1876년 퇴암 스님이 쓴 <해인사실화적>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일기一氣가 처음 흘러 천지가 생긴 뒤로 이치는 변함이 없으나, 사실은 항상 변천함에 성쇠하는 운수가 그 사이에 왕래함을 어느 물건치고 아니 받을 수 있으랴… 애달프다! 강희康熙(1662~1722)로부터 동치同治(1862~1874)까지 몇 백 년이 못되어 일곱 번이나 화재가 있었으나, 장경각만은 그대로 보전되었으니 이것이 ‘사실은 변천하지만 이치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 할까….”이처럼 사람의 일이 하늘의 뜻을 따르면서 변치 않는 정성으로 천년의 세월 동안 해인사는 한결같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불교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 역시 그렇다. 티벳의 만다라는 치밀하게 정성 들여 만들어지지만 법회가 끝나면 색 모래는 거둬지고 만다라는 사라진다. 모래는 바람결에 사라져 버리지만 만다라는 영원히 만들어진다. 무상無常과 불변의 변주곡은 이렇게 연주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성보는 박제되어 보존되어야 하는 대상화된 유물이 아니라 함께 숨쉬고 살아가며 변화해 가는 그런 것이었다. 굳이 원형을 복구하려고 하지 않은 채 세월에 따라 조락하면 손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손되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순응했다.
그래서 건축뿐만 아니라 불상의 개금이나 개채改彩도 손쉽게 허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원작의 큰 틀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내에서 작품은 변화를 거듭한다. 손질을 거듭하면 원형은 변하기 마련이다. 조선시대 불상도 개금을 하면 최근에 조성한 불상이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 변화는 원형에 대한 훼손이라기보다 불상을 더 잘 모시는 것으로 인정된다. 깊은 종교적 심성과 미적 안목을 갖춘 장인이라면 원작의 장점을 온전히 살려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원작을 훼손하거나 망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원작이 갖는 종교적, 미적 가치를 그 시대의 문화적 역량만큼 재해석하고 꼭 그 만큼만 향수享受하게 된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너무 성급하여 옛것은 망실되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르면서 조화를 추구했던 우리네 삶의 태도도 실종되고 말았다. 성보박물관은 단순히 구시대의 유물을 보관하거나 스님들의 생활에 대한 이방인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변화와 영원을 담으려는 우리 시대의 시도다.
그 동안 해인사에 보관되어 온 유물들은 각별한 사연과 깊은 불교적 정신을 반영한 것들이 많다. 그 중 백미는 희랑조사 조각상이다. 우선 미술사적으로 국내 유일한 영정조각이라는 점 외에도 사실적 묘사의 뛰어남에서도 주목받는 작품이다. 대체로 초상조각은 권위적이거나 과장된 것이 많은데, 그것은 조각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권력자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조선시대 조각상은 양식상의 퇴조를 보여 세부묘사가 생략되는데 반해, 희랑조사상은 과장 없는 사실적 묘사로 스님의 인품과 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깊이 패인 주름과 여위고 긴 얼굴에 드러난 광대뼈 등은 노스님의 수행자적 풍취를 그대로 전하고 있으며, 살짝 머금은 미소는 조금은 냉랭해 보일 수 있는 인상을 완화시키면서 노스님의 인자한 면모를 보여 준다. 이런 사실적 얼굴묘사와 함께 이 조각상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손의 처리이다. 부처님 처럼 수인을 취하거나 다른 조사영정에서처럼 불자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정하게 두손을 포개고 앉은 자세는 약간 각진 어깨선에서 흘러나온 몸체의 흐름을 마무리하면서, 스님의 반듯하고 맑은 기품을 전하고 있다. 이 작품의 과장 없고 담담한 표현은 조각가의 예술적 기량보다 희랑조사 자신의 수행과 인품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동양에서 늙음은 쇠잔한 기력과 초라한 몰골, 노탐으로 얼룩진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의미했다. 최근 와서 이런 생각에 조금 혼란은 있었지만 아직도 나에겐 늙음의 의미는 아름다운 것이다. 은사 스님의 연세가 많으셔서 가끔 찾아오시는 도반 스님들도 장로 비구니 스님들이시다. 출가 초부터 그 분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렇게 아름다운 노년을 맞을 수 있을까 궁금해 하곤 했다. 희랑 스님의 조상은 나에게 새롭게 노년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한다. 어떤 권위나 과시가 전혀 없는 이 말없이 담담한 수행자상 앞에서 수행의 깊이와 고매한 정신을 헤아리며 일체 상을 떠난 무상의 아름다움을 배운다.
이제 박물관이라는 새 부대에 옛 술을 담으니 이것 또한 변화를 따르며 근본을 지키려는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옛 작품 하나 하나에 배어 있는 깊은 불심이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이 시대의 전통예술과 서구를 동경하여 스스로 변방예술로 격하하는 현대예술에 대하여 주체성을 회복하라는 죽비가 되고, 표류하는 시대의 정신에 대해서는 근본을 찾게 하는 지남指南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