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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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미소 - 편집실
2002년 07월 245호
진리를 향하는 이는 그 발걸음을 두고 뒤돌아 보지 않으며, 또한 앞길을 가늠하지도 않는다.
여래의 발걸음이 한결같고, 중생을 살피는 손길 또한 언제나 다름이 없는 것은 진리를 향한 발걸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중생을 향한 마음을 두고 공덕이라 여기지 않는 자유로움 이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언행에는 지극함이 있을 뿐 그것에 집착執着을 두지 않는다.
여래의 깨달음에는 이와 같은 자유가 있으나, 중생의 발걸음은 아직도 한 걸음 한 걸음에 담긴 지극함을 방편으로 한다. 중생이 여래의 자취를 가지고 탑을 조성한 것도 그 지극함을 방편으로 삼고자 함일 것이므로, 저 쿠시나가르 사라 쌍수 아래 석가모니의 열반 이후 조성 된 수많은 탑 역시 지극한 공덕을 통해 진리의 길로 다가서려고 한 것과 다름 아니다.
해인사 원당암 앞 마당에 있는 다층석탑도 중생의 원願을 담은 공덕의 산물이다. 흔히 보던 화강암질의 탑과는 달리 청석靑石을 켜켜로 쌓아 만든 이 다층의 탑은 통일신라 9세기 이후 해인사 창건 이래 천여 년 그 긴 여정을 가야산과 함께 화엄의 세계를 지켜왔다.
여러 겹을 쌓아 올린 옥개屋蓋는 청석靑石의 매끄러움을 미덕으로 삼았으나, 그 옥개를 쌓아 올린 기단만큼은 천년의 비바람을 감당할 만한 든든한 화강암으로 받치고 있으니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를 만큼 긴 법등法燈을 이 곳 가야산에서 잇고자 하는 중생의 바램이 그와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탑 앞에 모셔진 석등은 진리의 세계를 영원히 밝히기를 바라는 중생의 공덕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중생은 여래의 깨달음을 자신의 빛으로 삼고자 그 육신의 자취를 가지고 탑을 조성하였으나, 여래의 깨달음은 그 탑이 오랜 세월에 바래고, 비바람에 허물어진 것을 두고 안타까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생의 마음은 탑을 두고 진리를 찾으며, 그 탑 안에 마음을 담는다.
이제 해인사 성보박물관이 문을 열고, 지나간 가야산의 역사를 보인다. 박물관에 모셔진 성보를 두고서야만이 가야산의 지난 세월과 법등을 알 수 있을까마는, 스러져가는 자취만으로는 그 지혜의 불빛을 알아채지 못하는 중새의 어리석음을 탓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