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밭에서 피어나는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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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속의 벽화 - 편집실
1986년 04월 50호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연꽃은 그 뿌리가 진흙 속에 있지만 잎과 꽃은 한방울의 더러움도 용납하지 않음은 그 우아한 자태와 함께 아름다운 성품은 가히 꽃의 성인(聖A)이라고 할만하다.
고래(古來)로 시인들과 묵객(뚫客)들이 이러한 연꽃의 자태와 성품을 사랑하여 시로 그림으로 남겼거니와 불교에서는 일찌기 천년에 한번 핀다는 성불(成佛)의 꽃, 우담발화와 함께 연꽃을 그 상정으로 나타내었다.
곧 진흙은 중생을 나타냄이요, 꽃은 성불 즉 부처님을 나타냄이니, 불교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민중(民聚)의 삶 중생에게 있음을 뜻한다.
대승경전 유마경(維摩經)에도 높은 곳, 깨끗한 육지에 연꽃이 피지 않음은 그 자체가 곧 중생을 향한 끝없는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한다고 하였거니와, 중생이 없으면 부처 또한 없다는 불교의 극단적 자비사상을 한마디로 나타내어 주는 꽃이다.
일찌기 부처님께서는 모든 경經)을 설하시고 영축산에서 하루는 법좌에 올라 묵연히 앉아다가 대중에게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인다. 그럴 때 아무도 그 꽃든 소식을 몰랐지만 가섭만이 부처님의 그 뜻을 알고 피식 웃었다. 그래서 염화시중(站花示聚)의 미소(微笑)라는 화두(話頭)가 생겼다.
사설 참으로 성스러운 것은 따로 속진(洛塵)을 떠나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온갖 속진 속에서도 속진에 물들지 않고 고고함과 성스러움을 지키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이는 마치 고요함 속에서 고요함을 지키는 것은 쉽다. 그러나 번잡한 것 속에서 고요를 지키기란 어려움과 같이 펄펄 끓는 물속에서 청량수(淸밟水)를 얻음의 경지가 곧 불교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불교의 세계는 상대적인 독야청청을 자랑함이 아니다. 진흙 속에서 참으로 고귀한 연꽃이 나오는 이차를 가르치는 도리(道理)요 범상하고 더러움 속에 오히려 성스럽고 아름다운 세계가 나옴을 가르친다. 참 위대함이란 범속한 일상(日常)을 떠나 따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의 세계란 우리들이 도달할 수 없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 범부들이 한 생각 바꾸어 뜨거운 번뇌를 떠나면 바로 여래의 세계에 드는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불교미술의 대부분이 연꽃을 주제로 한 예술품이 많은데 부처님의 연좌대(運座台)와, 탱화속에서 보살들이 든 연꽃과 지붕에 올리는 연와(運互)와 단청의 아름다운 문양 속에서도 곧잘 표현되어져 온것이다.
그리고 송대(宋代) 도학(道字)의 조종(組宗) 주무숙(周英웠)은 특히 연꽃을 사랑하여 애련설(愛運說)이라는 글속에 연꽃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도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니 마치 군자(君子)가 주위의 악應)에 물들지 않음과 같으며 또 연꽃은 푸른 물결에 늘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은데 그것 역시 군자의 덕행(德行)과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
그 줄기의 속은 비어 통해 있는데 그 곁이 꽂꽂한것은 군자의 마음이 사리(事理)에 통달하고 그 행실이 사리에 맞아 꽂꽂한 것과 같다.
함부로 덩쿨지어 여기 저기를 번거롭게 하고 가지를 많이 치어 다른 것에 치근덕거리지 않은 연꽃의 상태 또한 군자의 조선(操身)의 담담한 것과 흡사하다. 그리고 그 꽃향기가 멀수록 더 맑은데 이 또한 군자의 덕이 멀리 미치는 것 같고 높이 우뚝 솟아 깨끗하게 서 있는 것을 멀리서나 바라볼 수 있지만 가까이 가서 버릇없이 희롱하기는 어려운데 이것 역시 군자의 품격에 위염이 있어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점과 비슷하다 이런 여러 가지 미덕을 가진 연꽃이야말로 군자요 성인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교의 꽃이라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