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하늘은 왜 잔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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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김영국
1986년 04월 50호
사월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저 사월이 되면 진달래가 피고 온 산천이 파릇파릇한 초록색으로 물들어 갔을 뿐이며 그 속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의 모습은 봄날의 노곤함을 더욱 더 가속시켜 주는 최면술이었을 뿐이었다.
젊은 국어 선생님이 평소의 그 장난기를 어디론가 감추어 놓고 무엇인가 잔뜩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듯이 붉은 입술을 들썩이며 우물거리다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마디만 내뱉을 때에도 우리의 가슴은 그저 그렇게 덤덤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지겨운 수업시간이 아직도 절반이상이 남았음을 칠판 위에 올라간 선생님의 손목에서 알았을 때 우리는 그제야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소리를 죽여가며 읊조렸고 다른 놈들도 그렇다고 맞장구치며 ‘킥킥’ 웃음을4월의 하늘로 보내버렸던 것이었다.
수학여행이다, 봄소풍이다 하여 행여 조그만 기대감에 부풀어 제앞날의 고통도 모르고 까불어 젖히는 여자애들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4월이야말로 여자애들에게 못된 바람만 집어놓고 흔들어 대는 바람둥이 사내와 같은 달이라고 혀를 차게 만들어 놓기만 했다.
차라리 가을에야 조용하고 무게 있는 느낌이라도 맛볼 수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때의 4월은 그 흔한 꽃샘추위도 없이 마냥 포근하여 깡충거리는 단발머리들의 움직임은 우리의 피곤함을 가중시켜 놓기만 하였다. 이렇게 우리에게 그다지 큰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한 4월, 아니 4월의 하늘이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의미로 다가와 급기야 건장한 사내들에게 눈물까지 흘리게 한 것은 소위 지옥 같다는 입시를 거치고 둘 (가족수+친척수)의 눈치작전을 거쳐 대학에 들어와 부모님 모시고 오리엔테이션까지 착실히 마쳐 대학생이 된 후 -아니 아직까지 진짜 대학생이 된 것이 아니라는 선배들의 훈시에 의해 맥주 잔에 소주와 고무신에 막걸리를
마시고 나서 진짜 대학생이 되었다고 선언된(?) 후였다.
그때의 사월은 마치 봄날에 흩날리는 꽃씨와도 같았다. 새하얀 솜털 같은 것들이 온통 하늘을 수놓았을 때 우리는 그것이 4월의 의미인지 아직도 깨달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살며시 내려와 우리의 얼굴을 뒤덮고 온갖 화학작용을 일으켜 눈물을 쏟아놓고야 말았을 때 우리는 4월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쓰라림 아픔 인내 눈물 분노로 이어지는 꽃씨(?)의 화학작용은 마침내 돌을 집어들게 하는 조건 반사적인 행동까지 유발하였다. 그 쩌은 다 큰 사내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단순한 거부 반응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의미는 가슴속 깊이 여태 잠자고 있었으며 어쩌면 우리의 형님, 부모님, 조상들도 이 의미를 가지고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확대해석을/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곳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리들은 당당하게 보도블록을 깨고 조각을 주워서 던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4월의 하늘을 돌멩이와 조각으로 수놓았던 우리들은 그 날 저녁 어느 술집에 마주앉아 자신의 느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4·19는 의거가 아니라 혁명이라고 하더라」
「그 때 185명이나 죽었다는데 묘지가 시내에 있었는데 수유리로 옮겼대더라」
「이 은 아주 나쁜 사람이더구만. 독재…」
「야 박 는 어떻구 우리는 그 사람이 아주 위대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유신헌법도 아주 나쁜 것이라며 그때는 뭐 선진국에서도 그런 법이 있다고 하더니」
「말도 바라. 게시판에 봤더니 박 는 일본군 출신이라더라」
「야. 조용히 해 누가 듣겠다」
「괜찮아. 게시판에 다 써놓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냐」
「그런데 4 ·19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된거지 그렇게 비난을 하니 말이야」
그리고 매년 4월이 되면 우리는 접동새의 울음소리를 찾아온 교정을 헤매게 되었다.
산다는 것이 꽃비내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