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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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김형균
1986년 04월 50호
이른 봄꽃 그늘에 앉아 보는 4월의 하늘은 여름의 선명한 코발트블루와도, 가을의 눈시린 푸르름과도 다르게 찾아온다. 그 하늘을 보고 있으면 이미 사라져 버린 많은 사물(事物)들이 아지랑이로 가물가물 피어 오른다.
겨우내 인색한 양지녁을 찾아 해바라기하던 코흘리개들이 이제는 마음놓고 푸근한 햇살 아래 앉아 가위 바위 보를 하다가 손등으로 쓰윽 한번 콧물을 훔치기도 하고, 겨울 짧은 해에 구석방을 떠나지 못하던 노인들은 장죽을 물고 깨금발 뛰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졸며 깨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낙들은 두꺼운 겨울이불의 호청을 뜯어 한짐 머리에 이고 개울가로 모여, 눈이 풀려 한결 풍성해진 물살에 손 시린 줄 모르고 씻어 헹구다가 문득 허리를 펴고 일어설 때 눈에 가득차는, 항상 현재인 온르과 이미 지나간 어제와, 더러는 짐작하지 못할 두근거림으로 다가오게 하는 미지의 나날을 한꺼번에 떠오르게 하는 것이 바로 4월의 하늘이다.
녹음방초 우거지는 오뉴월에 보는 하늘은 우리에게, 흘려야 할 땀방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지만, 4월 5월의 활짝 핀 봄이 아닌 4월의 하늘을 연한 버드나무 이파리에서, 잎보다 먼저 꽃피우는 찬란한 개나리의 덤불에서, 이어질 듯 끊일 듯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련한 라일락의 향기 속에서 함께 다가온다.
그런 날에는 아지랑이 때문에 때로 바람이 불때면 부우옇게 일어나는 먼지 때문에 눈을 가늘게 찌푸리고 하늘을 보기도 한다. 이젠는 조금씩 나빠지는 시력(視力) 때문이라 자신에게 변명하며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노라면, 지난 겨울 음습한 생(生)의 길모퉁이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사양(斜陽)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가을 일컬어「여름이 다 타고 난 재(灰)와 함께 오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러기에 가을은 여름과 같이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디 가을에만 한한 이야기일까, 눈물마저 꽁꽁 얼어붙게 만들던 기나긴 삼동(三冬)에 숨어 꿈꾸던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그리움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r서, 그래서 겨울에도 항상 멀리 있지만은 않은 것이 4월이고 4월의 하늘이 아닐까.
겨울 무거운 눈의 무게에 겨워 투툭투툭 여린 가지들을 부러뜨린 고목에서 새 잎이 날 때쯤, 어느 골목 어귀를 들어서노라면 저녁 어스름 속에서 새어나오는 하나의 불빛, 장짓문 사이로 밭은 기침을 뱉어내던 이웃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조등(吊燈)을 보게 되기도 한다. 사람이 하나 죽으면 별이 하늘에 하나 더 켜진대 어릴 때 귀에서 귀로 전해지던 그 은밀한 소근거림으 기억하며 하늘을 쳐다보면 봄날의 볕은 여전히 멀고 아득해 보여 이 세상에는 알 수 있는 것, 확인할 수 있는 것보다 우리의 이해에 벗어나는 영역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알게 해주기도 한다.
짧은 꿈처럼, 그 꿈이 주느 긴 여울처럼 몽환적인 4월의 하늘은 순식간에 우리의 시계(視界)에서 사라져 버리고 우리는 그 봄날의 푸르름을 고향집 대청마루에 걸려있는, 누렇게 빛바랜 한 장의 흑백사진을 통해 들여다 본다.
이제는 저 사진 속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버짐핀 개구쟁이만한 그보다 훨씬 더 윤기흐르는 아이들을 거느리고 숨을 곳이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찍혀나오는 쳔연색 사진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누렇게 빛바갠 한 장의 흑백사진 속에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4월의 하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