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백제 초기 미륵신앙의 성격
앞에서 살펴본대로 백제 미륵신앙은 실천적이고 현실위주적인 백제불교사상의 맥락에서 수용되고 발전되었다. 그런데 실제적인 미륵신앙의 신앙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문헌자료와 유물 유적 및 미륵 경전등의 극히 한정된 자료에 의하여 삼국시대 백제 미륵 신앙에는 미륵신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종말론적 구세주의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여기서는 백제초기 미륵신앙의 성격을 고찰해 봄으로써 구세주의적 요소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백제미륵 신앙의 성격을 살펴보면 첫째, 백제미륵 신앙은 전체적으로 국가주도적이며 귀족 중심적이다. 백제 사원 유적의 분포상황을 보면 공주, 부여, 익산 등 지역적으로 당시 왕도(王都)의 주변부에 국한되고 있어서, 백제불교의 수용자 층이 중앙귀족에 한하였고, 지방 호족이나 일반민중에 까지 불교가 침투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백제 왕권구조나 정치체제와 관련된 것으로서 국가가 주도가 되어 지배이념으로서 적극 수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백제불교의 국가 주도적 성격은 백제사원의 대다수가 엄청난 기간과 인력 및 비용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가람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익산 미륵사는 14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서 가히 세계적이라 할 수 있는 가람규모이며, 그 근방 산악에는 그와 같은 규모의 가람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있다. 둘째, 백제미륵 신앙은 극히 개인적인 귀의신앙의 성격을 띠고있다. 백제시대의 미륵상은 거의 대부분 미륵반가사유상인데, 그것도 80센치 미만의 소형으로서 불당을 세워 안치할 규모가 아닌 재가용(在家用)이다. 미륵반가사유상은 부처상이 아닌 보살상으로서, 인간세계에 하생한 미륵이 용화삼회의 미륵부처가 되기 전에 집에서 출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따라서 비록 이 땅에 하생한 미륵이지만 용화세계를 주도할 미륵부처상은 아닌 것이다. 하생한 미륵이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제하기를 발원하는 미륵하생 신앙의 형태를 띠면서도, 그것이 아직은 집단적으로 신앙되지 못했다는 점이 백제미륵 신앙의 개인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신라의 경우와 비교될 수 있는데, 신라의 미륵반가상은 불당을 조성하여 집단적으로 신앙할 수 있을 만큼 대형이다. 신라는 이 같은 미륵신앙을 통해 화랑집단을 형성하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민족적인 힘을 결집시킨 것으로 보인다. 백제미륵신앙의 세번째 성격은 개인의 미륵하생 신앙을 백제사회 전체의 민중적 신앙으로 넓혀가려는 지배체제의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다는데 있다. 그것은 국민적 결속이 약해서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권체제를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국력의 열세를 보여 왔던 당시 백제의 시대적 요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백제 미륵신앙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익산 미륵사의 창건이다. 익산 미륵사 창건의 의의는 비록 그것이 국가 주도적이긴 하지만 백제의 땅에 이상세계인 미륵하생 용화세계를 건설하려는 미륵하생 불국사상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신라의 미륵신앙이 미륵현신성불鷹動現身成佛)이라는 인격적 구현을 통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전개된 것보다 더 한층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신앙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백제의 미륵신앙은 미륵사 창건에 이르러서야 그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으며, 하생성불한 미륵신앙도 이때서야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백제는 초기의 귀족적이고 개인적인 신앙형태에서 국민적인 미륵하생 불국신앙으로 발전시킴으로써 국가적 중흥을 꾀하는 역사적, 발전전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으며, 여기에 백제의 미륵신앙은 지배체제의 국민적 교화이념으로써 그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백제는 미륵사 창건(634년)이후 미륵하생 불국신앙의 기틀이 마련되기도 전에 멸망함으로써, 백제 땅에 용화세계를 구현하려는 백제 미륵신앙의 염원은 후세의 과제로 남겨두고 말았다. 반면 신라는 중생구원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는 성불 이전의 하생한 미륵으로 현신 되기를 발원하는 화랑집단을 근간으로 하여 국가체제를 강화하고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백제 미륵신앙의 성격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백제 미륵신앙의 전개과정 속에서 집단적이고 역사 변혁적인 미륵신앙의 모습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한 종말론적 구세주의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국가의 흥망을 건 전쟁기간 중에 어느 정도의 위기의식이 싹텄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그러나 익산 미륵사 창건에 나타난 백제 미륵신앙에는 미륵신앙의 본래적 신앙구조가 그대로 담겨 있으며, 미륵하생 불국 신앙적 백제 민중의 염원을 찾아 볼 수 있다. 백제 미륵하생 불국신앙에 나타난 미륵신앙의 구조 계속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2. 백제 미륵하생 불국신앙의 구조
(1)미륵사 창건에 나타난 미륵하생 불국신앙
계율주의적이며 귀족적인 성격을 띤 백제 초기 불교의 미륵신앙은 무왕(武王)시대에 이르러 사회적 요구에 의한 미륵하생 볼국신앙의 전개를 가져오게 되었으며, 억산 미륵사 창건은 그에 따른 소산이라고 활 수있다. 따라서 무왕시대의 백제 불교는 개인적, 귀족적인 신앙 양태로부터 대중적 확산 내지는 토착화를 기하게 되었고, 기울어져가는 국력의 신장을 도모할 수있게 되었다. 이처럼 귀족적인 백제 초기 불교가 백제 민중들 속에 수용될 수 있었던 계기는 익산지역을 근간으로 신앙되어 왔던 전통 민간신앙인 “미리”(용)신앙과 융합시켜려는 국가적 의도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제 익산 미륵사 창건 연기셜화(緣起說話)의 내용과 그 역사성을 고찰해 봄으로써 백제 미륵하생 불국신앙의 구조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무왕조(武王條)에 수록되어 있는 미륵사 창건에 얽힌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제 제30대 무왕은 그 이름이 장鷹)이고 훌어머니가 연못 속의 용(龍)과 교통(交通)하여 낳았는데, 그가 항상 마를 캐다가 그것을 팔아서 생활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서동(훌童)이라 불렀다.
그는 신라 진명왕의 세째공주 선화(善花)가 절세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신라 서울에 잠입해가서 아이들을 이용하여 공주를 비방하는 노래(薯童謠)를 지어 퍼뜨렸고, 그래서 공주는 궁궐에서 쫓겨나게 된다. 공주는 모친이 준 순금을 가지고 귀양살이를 가는 도 중에 서동을 만나 노래의 영험 있음을 알고 백제로 돌아와 결혼한다. 생계를 위하여 금을 내놓으니 서동은 마케던 산에 쌓였던 것이 금(金)인 것을 알았고, 그 금을 지명법사(知命法師)의 신통력으로 신라 궁궐에 보낸다. 그후 서동은 인심을 얻고 백제 무왕이 된다. 어느 날 무왕이 부인과 함께 지명법사를 만나러 사자사(師子寺)로 가는 도중에 연못에서 미륵삼존불(彌勒三尊佛)이 출현한다. 부인이 원하매 지명법사의 신통력으로 못을 메우고 그곳에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이상이 미륵사 창건 연기설화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이 설화의 주인공은 서동이었던 무왕이이지만, 이 이야기는 결국 미륵사 창건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귀결되고 잇다. 이 설화의 내용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들 수 있다. 미륵사를 창건한 무왕의 출신 배경에는 당시 민간신앙의 대상인 용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과, 신라공주 출신인 무왕의 부인이 미륵사 창건을 발원(發願)했다는 것, 그리고 미륵사를 세운 자리인 못에서 미륵 삼존불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 설화의 핵심을 이루는 이상의 3가지 점은 설화내용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성격을 그래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곧 미륵사 창건의 역사성이기도 하다. 그 역사적 성격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륵사 창건 연기설화는 백제 미륵신앙의 민중토착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즉 당시 귀족 중심적이었던 미륵신앙을 민간신앙인 용신앙과의 습합을 통해 민중속에 대중화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엿보인다. 민간신앙을 불교화하려는 데에는 민간에 널리 회자됐던 용신앙을 불교의 미륵신앙으로 변형 전개시켜서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적인 율령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전국토를 불국토(佛國土)로 건설하려는 이념화에 정책적인 미륵신앙의 전교(傳敎)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용(龍)신앙은 순수한 우리말 표기로 \"미리신앙\" 또는 \"미르신앙\"으로 불리는 민간신앙이며, 당시 익산 지역에 용신앙이 성행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용은 물속에 사는 동물에서 갑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둔갑하는 상상의 동물이며, 그 둔갑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짓부수고 비약하여 갑자기 천하의 빛이 되고 심판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유교나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 동이(東夷) 민족이 신앙해온 토착종교의 상징인 것이며, 일종의 종말론적 개벽신앙이다.
용의 아들 서동이 무왕이 되었고, 그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것은 용의 아들이 미륵사를 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민중에 의해 미륵사가 창건되었다는 의미는 설화의 내용속에 상징적으로 담겨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간신앙으로 미륵신앙의 미륵불교적 전개는 용어상의 유사성과 함께 미리신앙이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메시야니즘과 결합을 의미하며, 백제에서 미륵신앙은 종말론적 메시야니즘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게 되었던 것이다.
미륵사 창건 연기설화에 나타난 두 번째의 역사적 성격은 그것이 사랑과 평화와 화합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즉 마를 캐던 소년이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하고 황금을 처의 왕궁에 보내고 백제의 왕이 미륵사를 창건하려하니 신라의 왕이 백제에 기술자를 파견하는 것 등은 당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하나의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미움과 불화, 전쟁을 초월하여 사랑과 평화와 화합을 실현하고자 하는 백제 민중의 갈망이 강하게 담겨 있다고 하겠다.
세 번째로, 미륵사 창건 연기설화의 역사성은 백제의 미륵하생 불국사상을 보여주는데 있다. 용화산 아래에 미륵삼존불이 출현하였다는 것은 백제가 미륵하생의 불국토라는 것을 보인 것이다. 그곳에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그곳에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것은 용화세계에 펼쳐진 미륵하생 불국의 이상을 나타내보인 것이다. 그곳에 미륵사가 창건되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백제적인 미륵하생 불국신앙의 집약적 발현(發顯)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익산 미륵사 창건 연기설화의 내용과 그 역사성을 통해 볼 때 백제불교는 미륵사 창건이라는 대사업을 계기로 백제 미륵신앙의 새로운 전갤르 이룩했으며, 그 배경에는 백제 미륵신앙의 민중토착화, 사랑과 평화와 화합의 이상세계 구현, 그리고 미륵하생 불국토의 백제적 구현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 미륵하생 불국신앙의 구세주의
미륵사 창건에 나타난 백제 미륵하생 불국신앙은 백제 땅위에 미륵불의 용화세계를 실현하려는 천년 왕국적 불교 구세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미륵하생에 따른 용화세계의 실현은 불의한 현세적 모순에 대한 메시야의 종말론적 승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당시 신라와 고구려의 침략으로 인해 왕성(王城)을 옮겨 다녀야 했던 백제 민중의 고통이 극복되는 사랑과 평화와 화합의 이상세계 구현의지가 백제 미륵신앙의 새로운 전개와 더불어 승화된 것으로보여진다. 여기에서 당시 농경사회의 수호신앙이었던 재래 미리(용) 신앙의 초자연적 개벽성이 미륵신앙의 구세주의와 융합되어 나타나는 이른바 백제 미륵신앙의 민중토착화를 볼 수 있다. 우리 동이족의 토착신앙인 용신앙은 불교와 유교가 지배자의 정치이념으로 정착되면서 민중 속으로 피신하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과거의 전통적인 상충문화가 밑바닥으로 전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신라는 토착종교인 용신앙을 불교나 유교적인 정치이념과 융합시켜 지배자의 통치이념으로 만들었으며, 신라의 설화에도 용신사상(龍神思想)의 불교적, 유교적 전개가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용의 출현은 인간사회에 머지않아 도래할 개벽적인 미래 사건을 예시(驚示)해 주는 하나의 전조(前%)로 간주되었으며, 용의 우리말인 “미리”의 용어적 유사성이 미륵신앙과 쉽게 융합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백제의 미륵신앙이 민중 속으로 스며든 민간신앙인 용신앙을 수렴하여 미륵하생 불국신앙으로 전개시킨 점에서 백제 미륵신앙의 구세주의적 성격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백제의 미륵신앙이 국가 주도적인 성향과 미륵신앙의 민중토착화 이전에 백제왕조가 멸망함으로써 백제 미륵신앙의 민중 구세주의적 전개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륵사 창건을 중심으로 한 백제 미륵하생 불국신앙은 백제 왕권의 정치적 구세주의에 머물고 만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백제왕조의 멸망은 쇠퇴하는 국운(國運)을 중흥하여 백제 땅에 미륵하생 불국을 건설하려 했던 백제 왕권의 정치적 구세주의가 실패한 것을 의미하며, 아울러 명화와 사랑의 이상세계를 갈망했던 백제 민중의 염원이 좌절되고만 것을 가리킨다.
한편 백제의 멸망으로 인한 백제 미륵하생 불국신앙의 화절은 백제 미륵신앙의 민중 구세주의적 전개를 위한 발판이 되었다는 또 다른 의의를 나타낸다.
백제의 미륵신앙은 왕조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신라의 하층천민으로 전락하여 억압과 굴욕의 삶을 영위해야 했던 백제 유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되살아났다.
그것은 신라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억압과 고통이 없는 미륵하생 용화세계를 백제의 옛땅에 건설하고야 말겠다는 것이며, 곧 백제 미륵하생 불국신앙의 민중 메시야니즘적 전개로 연결되었다.
결과적으로 백제 미륵신앙의 정치적 구세주의가 백제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백제 유민들 속으로 피신하게되었고, 백제 유민의 굴욕과 한(恨)과 어울러져 자연스럽게 민중토착화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백제 유민의 미륵신앙을 통하여 민중 구세주의적인 백제 미륵신앙은 그 꽃을 피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