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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당시의 인도사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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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정병조 1986년 04월 50호
1. 신을 위한 인간의 삶
기원전 6세기 중엽 인도대륙에는 많은 도시 국가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화폐경제의 발달, 물질적 풍요가 두드러진 시대였다. 그들은 주로 갠지스의 유역을 따라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이미 베다나 우파니샤드의 사상경향을 경험한 아리얀들은 정신적으로도 괄목할만한 지적(知的) 축적을 쌓아 가고 있었다. 유일신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구(論究)가 있는가 하면 소피스트를 방불케 하는 궤변론도 있었다. 철학적 모색에 관한 한 인도인들은 인류의 어느 시대에도 이루지 못했던 풍부한 성찰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번영은 필연적으로 도덕적 퇴폐를 가져온다. 하나의 아이러니일 수 있으나 인간의 가치지향적 정신세계와 물질적 풍요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부(富)를 가진 자가 겸손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이가 비굴하지 않는 것도 힘든 일이다. 대체로 인간의 탐욕심은 물질과 비례하기 마련이다. 없는 자는 가지려 하고,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한다. 엄청난 것을 가진 자는 행기지 않으려 한다. 그 삼독이 불길이 꺼지는 것을 다만 「죽음」일 따름이다. 죽음이 그의 「가진 것」을 명어 갈때까지도 그 가지기 경쟁은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선가(輝家)에서는 지족(知足)올 가르친다. 물 마시고 팔베게로 누워도 편안한 마음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가지기 위해 각축을 벌일 때면 그 야수성은 동물의 세계를 방불케 한다. 힘과 권모술수와 교묘한 트릭이 오직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한 한가지 목적에 사용된다. 인도에는 지금 그 죽고 죽이는 살육의 서곡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의 사회적 정세변화는 필연적으로 사상적 혼란을 가져온다. 흔히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불리는 부처님시대의 여섯 사상가는 사실 혼란기에 생겨나는 독버섯과 같은 흐름들이었다. 감각적 쾌락론, 유물론, 회의론(懷疑識), 극도의 고행주의(苦行主義)동은 언제나 인간과 함께 하는 악마의 손짓이다. 또 그것은 물질적 번 영 에 가리 워 진 어 두운 그림 자이 기 도하다.
그러나 사상적으로 보면 이 같은 경향은 신중심적(神中心的)인 사고에 대한 반발일수도 있다. 인도사회는 계급사회였다. 가혹한 캐스트의 굴레는 인간을 속박시키는 열쇠 없는 굴레였다. 태어날 때의 신분으로 이미 나의 운명이 결정되어 버리는 기막힌 사슬이었다. 캐스트는 신을 위한 사제(司奈)그룹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신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재한다. 따라서 신에게 예배드릴 때 인간의 행복은 보장된다. 그런데 신과의 교섭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다‘ 오직 예지를 지닌, 다시 말해서 초월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지자(善知者)에게만 그 특권이 부여된다. 따라서 브라흐만 계급은 신성하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오직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신에게 예배드리고 경건하게 봉사하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 질식할 것 같은 사상의 분위기 속에서 유물론을 비롯한 감각적 경험론들이 대두되는 것이다. 여기에 첨가해야 될 점은 사제족(司奈族)의 횡포와 타락이다. 그들은 신에게도 통하는 유일한 교통로라는 자부심을 악용한다. 즉 신에게 제사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브라흐만을 용직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은 이제 경건한 봉사자로서가 아니라, 딸아 있는 신」으로서 인간 위에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2. 고행(苦行)은 미덕일까?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힘을 경험하면서부터 어떤「신성함」에 머리 숙이는 것은 고대사회에 있어서 공통된 일이었다. 거친 자연환경속에 내던져진 나약한 자기 존재를 돌이켜 볼 때 인간은 겸손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세월은 짧지만 뜨고 지는 해는 영원하다. 속을 알 수 없는 푸른 물속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끝없는 상념은 오직 한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즉 내 힘을 초월한 어떤 절대적 힘이 있으리라는 점이다. 그 자연의 섭리 질서 속에 나라는 개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국사람들은 그것을 도(道)라고 불러 보았다. 인도사람들은 그것을 범(梵)이라고 이름붙여 보았다. 그것에 인격화의 작업을 시도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래서 그들은 신을 상정한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예수가 출현하지 천여년 전부터 이미 이 유일자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있었다. 막스·뭘리(Max Miiller)가 주장했던 베다의 신란(神亂)은 확실히 음미해 볼 가치를 지닌다.“다신교(多神敎)에서 교체신교를 거쳐 유일신교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그의 분석은 명쾌한 지적이었다. 인도인들은 자연의 외경심리(猥敬心理)를 통해 절대자를 인정한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는 신들 상호간의 위계질서가 문제된다. 그래서 신중의 신 유일자를 상정하기에 이르른다. 희란야 가르브하(Hirsnya garbha), 타드·에캄(Tad Ekam), 푸루샤(Purusha) 등은 모두 그 유일자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그러나 우파니샤드의 사상가들은 이 유일신에 대한 모색과 다른 각도에서 이 점을 보고자 한다. 즉 그들의 관심 대상은 보이지 않는「신」이 아니라 보이는「인간」이었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라는 근원적 질문이 제기된다. 이것은 불교에도 깊은 영향을 주는 것이지만 이 진지한 인간탐구의 발자취야말로 인간철학의 핵심적 과제였다. 아마도 세계의 철학사조 가운데 인도철학만큼 인간의 문제에 침착한 사상은 흔치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관념의 세계 행위의 인과율(因果律)에서부터 마음의 실체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훌륭한 탐구의 발자취를 보여 준다. 그 결과 인간에 내재된 영원한 자아(自我)를 인정하기에 이르른다. 그것을 아트만(Atman)이라고 한다. 인간마음의 근원 사물을 파악하는 절대적 예지, 그리고 주객(主客)의 합일(合一)을 가늠하게 하는 힘으로서 아트만을 발견한 것이다. 아트만을 아는 자는 해탈할 자이다. 아트만을 회복한자는 성인이라는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아트만은 보이지 않는「그 무엇」이다. 만질수도 없고 들을수도 없다. 그는 만져지는 것의 내재자(內在者), 들리는 것을 들리게 하는 자이다. 불행히도 이 아트만은 육체라는 불완전한 성(城)에 얽매어 있다. 만약 아트만이 이 육신의 결박에서 자유로울수만 있다면 인간은 완전한 열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조된 것이 고행(苦行)이다. 고행은 이를테면 아트만을 감싸고 있는 육신이라는 결박을 푸는 수행인 것이다. 요가의 어원(語源)은 유즈(Yuj)이다. 이 말은「…을 연결한다」는 뜻이다. 즉 완전한 아트만과 불완전한 육신을 적절히 연결한다는 뜻이다. 당시의 종교인들은 예외없이 요가를 닦았다. 또 가장 존경받는 요기(Yogi,요가의 수행자)는 철저한 고행주의 금욕주의자였다. 이와같은 일반적 경향은 요사이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줄 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습관이 있다. 더구나 그 일의 목적이 세속적이지 않은 일이라면 그 존경의 도는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고행이 정녕 미덕일까? 세속의 향락에 탐닉하는 것이 속물(俗物)근성의 표본이라면, 고행만이 수도(修道)라는 생각도 금물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행을 통한 육신의 학대는 종교적 사치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의 고행을 뽐내고 그렇지 못한 이웃을 비웃는다면, 그것은 돈많은 이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깔보는 것과 무엇이 다를 수 있겠는가? 부처님 당시의 인도사상계는 이렇게 하게 명확한 몇가지 조류를 낳게 된다. 첫째는 신만이 지상(至上)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바라문지상주의, 둘째는 감각적 쾌락만이 삶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유물적 쾌락론, 셋째는 고행을 통한 출세간주의가 제일이라고 믿는 고행주의 등이다. 부처님은 이 사상의 혼란속에서 출현 하신다. 그 분께는 이 바람직스럽지 못한 경향들을 올바로 정립시켜야 한다는 사상사적 숙제가 운명처럼 놓여 있는 것이다.
석존출현의 사상사적 의미
우리는 불교사상의 위대성을 강조할 때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에서의 세심한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인도철학과의 관련이다. 그 분은 인도철학과 정반대의 가르침을 편 적도 있고, 또 어느 부분도 상당히 흡사한 가르침도 있다. 본질적으로 보면 불교는 인도사상에서의 이단이다. 그러나 무엇이 같고, 다르냐는 명백히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는 인도사상의 아류로 보거나, 아니면 불교사상만을 제일이라고 내세우는 우물안 개구리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역사적 맥락에서 본 인간 석가의 발자취이다. 위대한 인격은 시대정신의 소산이면서도 이 시대를 뛰어 넘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다시 말해서 그의 사상은 전혀 새로운 어떤「경이」(驚異)를 수반한다. 그 점이 무엇이냐를 보아야 한다. 그 때 우리는 인간 석가를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셋째는 불교사상의 현대적 의의를 살피는 일이다. 사제팔 정도가 공장의 근로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공과 연기(緣起)가 전장터에서는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느냐를 살펴야 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우리의 근본교리에 대한 재해석이 시도되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여태까지 없었던 어떤 교리를 새롭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그 원리가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어야 하나를 진지하게 모색하라는 뭇이다.
만약 이 기본적 테두리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는 진공(質空)상태에서 헤매 이는 시대의 낙오자가 될 따름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석가의 발자취는 여러 가지 암시를 우리에게 준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그 분은 인도적 전통을 충실하게 섭렵하고 흡수하였다. 그러면 서 그 한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새로운 철학을 수립하였다. 근본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는 바로 그 사상성의 핵심이었다. 상의상자라는 아이디어는 유일신을 부정하는 불교의 논리이다. 또 연기이기 때문에 무자성(無自性)이며 공(空)일수 있다. 공이기 때문에 중도(中道)의 예지가 가능하다.
만약 진실로 연기를 이해하는 이라면 그는 사물의 인과를 통달한 현인(賢人)일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사물의 평등성을 인정할 수 있다. 불교의 자비가 생물뿐 아니라 무생물에까지 이를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가르침을 남기셨다. “연기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중도적(中道的) 실천론이다. 여기에 중도는 극단의 중앙이라는 어설픈 「가운데」가 아니다. 양 극단을 벗어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용수(龍樹)가 말하는 공(空), 가(假),중(中)의 중이다. 향락에도 얽매이지 않지만, 고행에도 머물지 않는다. 이끄는 첫번째 단계이다. 그러나 향락도 고행도 본질에 있어서 공(空)임을 체득하게 되면 그것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두번째 단계이다. 마지막의 단계는 그 둘을 다 초월해 버린다. 도대체 향락이, 고행이 그것 아니게끔 되어 버린다. 이때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 중도의 지혜가 인도철학의 입장에서는 절충주의로 비판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한 편견일 따름이다. 진실로 인간이 중도에 투철해질때, 그는 중도마저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끝으로 지적하려는 것은 인간 가능성의 확인이라는 면이다. 물론 인도철학의 주류도 인간의 가능성에 관한 연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아트만을 불교에서는 실체(寶體)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명(無明)을 실제로 착각하는 것이 무명이다. 각(覺)과 무명이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이 병일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자아(自我)는 「무아(無我)의 자패일 수밖에 없다. 부처님은 집요한 계급의식과 신 중심적 사고를 배격한 분이다. 「나」를 떠나 「나」를 실현하려는 어리석음을 경계한 분이다. 여기에 불교적 휴머니즘의 원리가 있다. 세계의 위대한 종교사 가운데 불교만이 종교전쟁과 종교심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토대 위에서, 인간을 문제 삼았다는 면에서 보면 불교는 인간학이라고 이름 붙여야 옳으리라. 그 점은 또한 불교사상이 가진 현대적 의미이기도 하다. 고뇌하는 삶의 여로에 희망을 심어주는 예지의 빛이 바로 불교였다. 우리는 이 시대를 흘러가는 방황하는 넋들에게 그 생명의 소리를 심어야할 필연이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보살행이며, 우리의 화두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