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보살의 원력으로
-진양 두방사 탐방기-
봄은 언제나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어느날 갑자기 무슨 도도한 함성과도 같이 밀려온다. 봄의 전령사(傳令使) 산수유가 그 노오란 꽃망울을 터트리는가 하면 개나리, 진달래, 목련, 복사꽃, 살구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양지 바른 언덕에는 작은 오랑캐꽃들, 실버들은 연록색 눈을 뜨고 봄바람에 가지를 일러인다. 봄은 마치 황량했던 긴 겨울에 복수라도 하는 양 연일(連日) 풍성한 꽃잔치를 벌리는 것이다. 대구에서 진주로 가는 가로에는 이제 4월의 향기로 가득하다, 봄길을 따라 진양 두방사를 찾아나선 것이다.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해서 그런지 변덕이 좀 심하다. 대구를 떠날 무렵의 화창하던 날씨가 진주에 도착하니 잔뜩 찌푸린 시어머니 얼굴처럼 곧 한줄기 비라도 내릴 것 같다. 오후시간이라 진주에서 택시를 타고 문산리로 온 시간은 좀 늦은 오후였다. 초행길이라 택시기사에게 두방사까지 데려다줄 것을 약속 받고 차를 탔기 때문에 문산리에 와서 두방사를 찾으니 산으로 4km는 더 가야 한다고 한다. 두방사를 어디인지도 모르고 온 운전기사는 더 이상은 가지 못하겠다고 한다. 나는 유치원이 있는 곳인데 산에 두방사가 있을 까닭이 없다고 싱갱이를 하다 보니 스님 한 분이 걸어 오셨다.「저 분에게 물어 봅시다」하고 반갑게 두방사를 물었더니 그 분이 다름 아닌 유치원 원감으로 계신 효정(曉頂)스님이었다. 두방사는 산에 있지만 유치원은 문산리 시내에 있으며 문산리는 한 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면소재지만한 곳이라고 일러 주었다. 우선 지옥에서 지장보살을 만난 듯 효정스님의 안내로 도착한 두방사 유치원은「두방사 부설 반야유치원」이라는 현판에 어울리게 아담한 교사(敎舍)와 함께 두개의 교실과 두 분의 여선생님께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한편에는 원감 효정스님이 거처하는 요사와 함께 양호실을 겸하고 있었다. 당초에 이 터는 신도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두방사에 부임해 오신 성범(性梵)스님께서는 거의 허물어져 가는 청곡사의 산내 암자였던 두방사를 두 번에 걸쳐 신축을 마치고 지역사회 포교를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실질적으로 할 것인가 염려하다가 여러 신도들의 의견을 따라 어린이 포교의 시급함을 우선 절감하여 이곳에 사설 유치원을 개설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그렇게 의욕만 가지고 되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서류접수에서 유치원 짓는 자금도 모자라서 농혐의 융자를 받는 등 산중에서 수도만 하던 스님으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좀더 낫은 유치원을 개설하기 위해 그 당시 기존 유치원 가운데 시설이 좋은 유치원을 견학하기도 하고 시간만 나면 유치원에 대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83년에 시작한 유치원은 84년에 새 교사를 짓고 처음에 원아들을 받았는데 처음으로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무서워하면서 울어버리는 아이들도 있어 여간 난감하지 않았노라고 이야기하였다. 간혹 골목에서라도 스님이 지나가면 놀리기도 하고 킥킥 거리던 아이들이 유치원을 개설하고나서는 곧잘 합장을 하게 되었고, 무서워 울던 아이들이 두방사 법당에 엄마들과 함께 큰절을 흉내내면 그것이 그렇게 흐뭇할 수 없다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이 반야유치원은 진양군에서는 유일한 불교유치원이다. 본래 진양을 비롯한 서부 경남지역에는 불심이 어느 지역보다도 그 전통의 뿌리가 깊고 킴은 만큼 신심도 대단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통불교의 뿌리가 깊다는 것이지 미래의 불교에 대하여는 결코 낙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미래의 불교의 씨앗은 우리들이 뿌리지 않으면 안 된다. 불교의 가장 기본 되는 교리가 인과(因果)가 아니던가. 봄에 뿌리지 않은 자가 가을에 거둘 수 없듯이 자꾸 척박해지는 불교의 땅에 새로운 씨앗을 정성스럽게 뿌리고 가꾸어야 하리라고 주지 성범스님은 자신의 소신을 힘있게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작은 토굴 삼아 두방사에서 고요히 앉아 면벽이나 하며 관심묵좌(觀心默座) 하려고 하였으나 이 시대가 이첸 우리를 그렇게 두지도 않지만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스님은 두방사의 경제 사정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을 하고는 후회도 했지만, 오로지 우리 스님 네가 이 시대적 사회적 요청에 함께 동참해야겠다는 사명감과 유아교육에 대한 의욕으로 시작한 유아원은 아직도 넘어야 할 문제가 많이 산재(散在)해 있었다.
우선 제일 안타까운 일은 신도임 스스로가 유치원 설립을 원했으면서도 다른 유아원에 돈이 싸다는 이유 하나로 딴 유아원에 다니고 있을 때 가슴이 아프다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우리 문산에는 4개의 유아원이 있어요. 천주교계통의 소화유치원과 우리 반야유치원은 각기 종교계에서 하는 사립 유치원이고 국가의 지원을 받는 유아원과 국민학교 병설 유아원이었습니다. 사립으로 하는 곳은 아무래도 지원이 없으므로 다소 돈올 조금 더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사정입니다. 그러나 도시에 비하면 반값도 안되지요. 나는 처음부터 포교의 목적으로 한만큼 더 많은 수의 원아를 가르치고 싶지만 불교신자의 아이들이 돈 때문에 저희 유치원 오지 못할 때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그 밖에 어려옴이 없느냐고 묻자 「어려움이 많은 만큼 그 어려옴으로 보살 행하라고 수행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기회임을 알아서 보왕삼매론의 말씀처럼 무엇이던지 쉽게 이루어지면 교만심이 생기고 자만심이 생기기 쉬우므로, 어려운 역경 속에서 일을 하겠다」는 성법스님과 효정스님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 와서 스님네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어렵게 살지 않으려는데 불교의 발전에 큰 저해요인이 된다고 본다. 어디를 가든지 스님네가 굶지는 않으니 뭐 그렇게 아둥바둥하면서 신경쓰며 살 것이 무언가. 그렇게 사는 스님은 속물이고 아무 책임없이 훌렁훌렁 사방팔방으로 휘젓고 다니는 스님은 속탈하고 도인인 척하는 풍조로 인하여 책임 없는 불교, 소극적이고 이기적인 불교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때마다 어렵게 일선에 서서 포교하시는 스님네가 반갑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효정스님에게 어떻게 여기 오시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성범스님과 오누이 관계라고 말씀하셨다.
「체계화된 유아용 교재가 없는 것이 획 어려워요 기독교 계통에는 연구진이 많아 여름 ·겨울방학에 쓸 교재를 구입하다 보면 노래에서 지도안까지 모조리 기독교 일색이라 팩 속이 상할 때가 있다」고 유아교육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하루빨리 체계화된 유아용 교재가 나왔으면 좋겠고 동화책도 그립이 잘된 큰 것으로 하나 해인 편집실에서 만들어 보면 어떠냐고 말했다.
이곳 문산리는 시골이어서 아직은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가 낮아 유치원에 보내는 숫자가 적다고 한다. 이웃 도시 진주에 비해 이곳에서는 한달 회비가 만원인데도 그 돈을 깍자고 할때는 퍽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유치원을 해서 경제적인 도움이 된 척은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용사일 뿐입니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보면서 그런 이해타산을 어떻게 할 수 있겠읍니까. 오히려 맑고 밝은 웃음이야말로 스님들이 아이들에게는 받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하는 효정스님의 웃음이 천진스러웠다.
봄이 오면 2충 공사를 하여 법당을 신설하고 이곳 주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와서 신행할 수 있는 장소로 유치원을 포교당화할 것이라고 한다.
유치원 말고도 중·고등학생회와 일반 청년회와 신도회를 올해에는 보다 활성화하겠다는 스님들의 의욕에 차 있는 얼굴 표정을 보며 필자는 새로운 용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둑해지는 남강물은 옛같이 흐르고 실버들 빛이 더욱 푸르른 진주 땅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영원하도록 기원해 본다.
-편집 ·대담 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