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그 싱싱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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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86년 04월 50호
초록 물결이 출렁이는 바닷가 모래 언덕에 어미 게 한 마리가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따사로운 봄볕에 잠깐 잠이 들어 졸다가 문득 깨어보니 하늘은 터질 듯 푸르게 잉잉거리고 충일하게 살아있는 바다의 햇살들이 온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사이의 넓은 모래 언덕엔 한가로이 새끼 게들이 노닐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어미 게의 눈속에 비친 정경 속에는 새끼 게들이 바르게 걷지 못하고 몸뚱아리를 옆으로 하고 삐딱하게 걷고 있지 않은가. 어미 게는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어린 게들을 모아 놓고 바르게 걷는 법을 가르치려고 그는 의젓한 폼으로 걸으며 이렇게 나처럼 바르게 걸어야 한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러나 어린 게들은 엄마도 우리처럼 옆으로 삐딱하게 걷지 않느냐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도 어미 게는 자신은 바르게 걷고 새끼 게들이 잘못 걷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이것은 어는 동화속에 나오는 우화이다. 모든 우화가 그렇듯이 이 이야기도 단순히 웃어 넘길 수 만은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미 게와 같은 넌센스를 부리면서도 당연히 그것이 정도(正道)임을 고집하고 심지어 타인에게 강요하가까지 한다. 자기는 비뚤게 걸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바르게 사는 양 남에게 강요하는 아전인수의 세상, 그런 사람일수록 기침, 헛소리 잘하고 목청 또한 크다. 참으로 말해야 할 곳 말해야 할 때 그들의 입은 모로 삐딱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자신을 과시하고 으시댈 때의 입은 그 누구보다도 크고 바르다. 이것으로 세태는 오늘날 지식인의 현실 상황속에 넘쳐서 이제 당연한 모습인 양 인식되고 있다. 오히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살고 처세에 능한 것처럼 삶의 가치가 뒤바꿨다. 바르게 걷는다는 것은 투철한 진리의 일이다. 진리의 길, 그것은 입을 크게 벌리며 악취를 풍기는 헛기침이 아니고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여 프로메티우스의 형벌을 받는 일이다. 신으로부터 인간에게 자유의 지혜, 말의 진리를 건네주고 시짚프스동산에서 독수리에게 생간을 뜯기우는 그 험난한 자유의 형벌, 그것들의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진리의 길이며 참다운 지성이 가져야 할, 말하자면 생명존재의 책무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산고를 치룬 케네디 대통령은 어느 대학의 도서관 기념연설에서 학생들에게 말했다.“나와 더불어 우리의 정치가들이 선민을 향해서, 즉 소수의 권력자들이 다수(민중, 대중이 요구하는 생명의 몫으로서의 자유)의 부재(不在)를 강요할 때, 그 강요에 따르는 권력의 오만, 힘의 횡포, 한계성을 지적해 주고 고통스럽게 고발해 주는 것이 여러분 학생들의 일입니다”이것은 참다운 정치인이 민중의 자유앞에 정치적 양심을 들어내 보이는 당당한 존재에의 용기이며 그대로 진리의 모습인 것이다. 헌데 오늘 용기를 잃은 채 도사리기만 하는 우리의 이웃들, 서민들이야 그들의 삶의 구조상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땅에서 가장 많이 혜택받고, 자유와 풍요의 햇빛을 무한히 누리면서도 눈치만 보며 아부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은 어떻게 된 일인가. 그들은 왜 권력의 강물 속에서 혹은 안락의 들판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며칠전 양심선언을 한 어느 대학교수의 참다운 지성의 목소리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통쾌한 소낙비가 되어 온 산천을 뒤덮은 듯 했다. 그는‘보통사람이 보통사람이 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체제’를 통탄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고,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을 괴로워하며 사도(師道)의 길을 포기하였다. 그가 고뇌 한 오늘의 현실의 일부분은 사회의 체제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진리를 외면하고 말해야 할 때 침묵을 지키는 지식인들의 나약함이다. 이로 인해 빚어진 사회의 현실은 결국 통제일변도의 페쇄적 체제에로의 질주일 것이다. 이러한 때에 바른 길을 걷는 지식인의 목소리는 제자리를 찾는 양심과 진실의 위대한 힘이다. 이렇게 청정한 목소리를 가진 지식인이‘양심선언’의 형태가 아닌 일상의 대화로서도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이러한 힘이 모아질 때 가능한 것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공동 일거리임을 지식인들에게 천명해 주고 싶다. 4월은 나무를 심는 달이다. 이 땅의 피폐한 지성의 뜰에 줏대없는 종교인 가슴에 싱싱한 양심의 나무를 심어 자유의 산소를 온 하늘에 드리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