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미술의 세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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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강좌 - 취영
1984년 12월 34호
불교회화(佛敎繪 ) 선(禪)은 인간과 우주의 근본 실체를 깨달으려는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마음의 깨달음을 기본으로 수행 방법이다. 따라서 자성(自性)에 대한 직관적(直觀的) 자각(自覺)을 증득하려는 것으로써 불입문자(不入文字)와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바로 자신의 성품을 보는 일을 중요시해 왔다.
사실 우리의 자성은 어떤 체계적인 논리(論理)나 고도(高度)의 지성으로 깨달아지는 것도 아니요 또한 예술적인 직관(直觀)이나 거기에서 유발(誘發)된 감수성이나 정서로서 깨달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체험으로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선적(禪的) 체험, 즉 깨달은 마음을 선에서는 가장 중요시(重要規)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히 선화(禪畵)는 선적 체험에서 얻은 선열(禪悅)이나 깨달은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을 ‘일컫는 말이 된다. 그래서 심의화(心意畵)라고도 하는데 자연 필선(筆線) 하나 하나는 모든 생명력과 근원적인 삶의 모습을, 오도(悟道)의 경지를 표현하는 만큼 그만큼 선(線)을 아끼고 보다 더 적은 선으로 더 많은 마음의 뜻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그림이다. 그러으로 담담(淡淡)하면서도 그 격(格)이 높으며 문인화(文人畵) 에서 엿볼 수 있는 서권기(書卷氣)와 같은 청아(淸雅) 한 수행 의 기운이 그림 속에 용해(溶解)되어 있어야 한다.
선의 역사는 보편적으로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대중에게 꽃을 들어 보이자 대중은 다 그 뜻을 몰랐으나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꽃 든 이유를 알고 빙긋 웃었다는 일화(逸話)에서 온 염화미소(拈花徵笑)로부터 치지만 선화의 역사가 이룩된 시기는 대체로 인도에서 보리달마(菩提達摩) 스님이 중국에 와서 최초로 심인(心印)을 전하고 난 이후 6조(六朝) 혜능스님께서 남종선을 열무렵까지를 선화의 발생연대로 삼고 있으며 그 이후 남종화(南宗畵)와 함께 그 이론(理論)이나 기법(技法)은 서로 주고 받으면서 격조높은 수묵(水墨)으로 조사(祖師)의 그림인 달마도(達摩圖)나 간단한 마음의 그림이나 글씨등이 여기 포함되는데 선종(禪宗)에서도 마음과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방법으로 법을 전했기 때문에 스승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나 그 사상이나 오도송(悟道頌)을 글씨로 전해 받는 일이 퍽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마음의 깨달음을 기본으로 삼는 선종도 차츰 이론의 밍받침이 될만한 소의경전(所 依經典)을 기본으로 삼기도 했는데 유가파(瑜伽派)나 중관파(中觀派)의 이론적인 근거를 중심으로 한 마음에 대한 도상(圖相)이나 남종(南宗)과 북종에서 금강경이나 능가경(楞伽經)을 지송(持頌)하기도 하고 대승경전 인 화엄경과 아미타경 같은 경전의 주존을 모시고 그 사상을 그 이론의 바탕으로 삼기도 하였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여러 조사스님들의 글씨와 그림들이 선종화의 대표적인 예(例)이며 당(曺)의 왕유(王維)의 고상하고 격 높은 그림들은 가히 문인화의 격을 넘어 선화라고 해야 좋을 그림들이 여렷 있으며 송대(宋代)의 고승들과 문인 화가들의 그림들과 양주팔괴(楊州八怪)를 비롯한 청대(淸代)의 여러 화가가 그 정신을 계승하여 속탈(俗脫)하고 고졸(古拙)한 화풍(畵風)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역대 선승들의 그림뿐 아니라 연담(連潭) 김영국과 같은 화가의 그림과 추사(秋史)를 비롯한 문인화가의 그림 속에서 그러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주로 그림의 소채로는 달마도와 한산습득도(寒山拾得圖) 나한도(羅漢圖)와 같은 정신이 살아 숨쉬는 산수화나 화조도에 이르기까지 선기(禪氣)가 번뜩이는 작품이면 모두 선화(禪畵)가 된다 하겠다. 여기에서 이왕 선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사족(巳足)으로 한마디 하고싶은 말이 있다.
요즘 근년에 들어서 한국에서는 너무 선서화전(禪書畵農)이 흔한 것 같다. 스님이 그린 그림이면 무조건 선화가 되는 괴변(怪變)과 스님이 쓰면 무조건 선서(禪書)가 되고 있는 일이다. 선화는 누가 그렸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그럼 속에 수도정신과 깊은 선열(禪悅)의 세계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아직 기본기(基本技)도 익히지 않은 괴상망칙한 그림들이 스님들이 그렸다고 해서 무조건 선서화가 되는 괴변은 진정한 선서화를 아끼는 분들을 위해 앞으로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한 그림의 양산(量産)이 곧 진정한 선서화를 죽이고, 불교미술의 질적인 저하(低下)는 물론 본인을 포함한 불교미술에 대한 일반의 인식마저 나빠질까 저으기 두렵기까지 하다. 더 격조 높은 선서화를 그리기 위하여 우리는 더욱 높은 수행 정신을 고인(古人)들에게 본받아야 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