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설〉
오온설(五蘊說)은 불타 근본교설에 있어서 존재의 실상(實相)을 해명해 주는 가장 근간이 되는 법체계입니다. 즉 연기(緣起)라는 생명의 보편적인 생성원리를 구체적으로 들어내 보여주는 교설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살아 계시던 당시는, 중산계층인 상공업자들의 새로운 대두와 도시국가의 형성으로 바라문(Br hmana)의 절대적인 교권이 약화되면서 사회질서가 재 개편되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서로 용인되지 않는 여러 사상들이 극렬하게 항쟁하였던 사상적 혼돈기였습니다. 베다(Veda)의 신성과 권위를 추종하고 있던 브라마니즘(Br hman m)은, 우주생명이 보편적 일자(一者, Tad Ekam)인 브라만(Br hman)의 전변(轉變)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신흥 사상가들(沙門. ramana)들은 신적인 일자(一者)를 부정하는 대신, 여러가지 근본적인 요소(要素)들의 적취(積聚)에 의해서 존재가 구성되어 진다고 이야기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브라마니즘’은 인간의 창조적인 행위와 자유의지를 강조하기 보다는 신에 대한 제사와 기도, 그리고 ‘브라만’을 아는 것(j iana)이 진리의 파지(把持)이며 최고선 임을 이야기 하였읍니다. 반연 적취설(積聚說)을 주장하는 신흥사문들은 사물의 고유한 자성(自性)을 인정함으로써, 도덕부정의 경향, 비윤리적인 고행주의(苦行主義)의 경향을 띄게 되었읍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온갖 것이 고유한 자성이 없이 (無自性, 空) 서로가 서로를 이루어주고 있다(相依相寶, 同時生起)는 연기(緣起)의 진리를 오온설(五蘊說)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인간의 창조적인 자유의지와 윤리적인 책임의 길을 제시하였읍니다.
이제 우리는 색,수,상,행,식으로 표시되어진 오온을 다시 의식(心法:수상,행,식)과 존재(色法:의식의 대응물로서의 色不相應行法)라는 말로 환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오온설에 의하면 우주생명은 어떤 선험적인 실재에 의해서 전변(轉變)된 것이 아니고, 의식과 존재의 무애연기(無 緣起)속에서 규정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취설처럼 의식과 존재에 고유한 자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은 존재와 본질적으로 관계되어진 의식이며 존재는 의식에 의해서 알려지고 있고 의식 안에 드러나고 있는(現像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식과 존재는 실체(實 )의 질곡 속에 닫혀진 것이 아니라 둘이 없는(不二) 해탈의 터천(不思議鮮脫法界)속에 무한히 열려져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온자체(緣起)가 끝없는 자기부정(空)과 자기긍정(空空, 假)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는 중도일의제(中道一義諸)인 것입니다.
그러am로 경천은 이러한 오온의 중도상(五蘊中道)을 보지 못하고 오온을 실체로 집착하는, 미흑의 상태를 오수음(五受陰:五取蘊)이라 하시었으니 이 오수음이야말로 일체개고(一切皆苦)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온 자체가 실체가 아닌 무아오온(無我五蘊)이므로. 오온의 행위적인 변화태로서의 업(業:Karma)과 윤회(輪廻:Samsara)도 또한 자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온설에서는 오온이 있음이 아니므로(非有) 생사에 머물지 않고(不住生死), 오온이 없음이 아니므로(非無)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不住涅槃), 참된 해탈(mok a)의 길이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화엄경은 오온의 현실 세간속(俗諦)에서 실재의식(有見)과 허무의식(空見), 절대주의(常見)와 상대주의(斷見)를 극복해낼 때 참된 삶의 자유(眞俗二諦不二中道)가 확보됨을 다음같이 설하고 계십니다.
因前五蘊故 後蘊相績起
於此性了知 見佛難思議
앞에 있는 오온으로 말미암아
뒤의 오온 서로 이어 얼어나네.
여기에서 오온의 성품 깨쳐 안다면
부처님의 부사의함을 볼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