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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스님의 종단 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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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홍사성 1999년 02월 204호
지난해 종단분규가 한창일 때 노스님 한 분아 전화를 했다. 불교 신문에 쓴 칼럼을 보고 그 따위 당연한 설교보다는 근본을 뜯어고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래서 스님에게는 무슨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당신의 의견을 얘기하는데 주목할 만한 내용이었다. 다음은 이날 그 노스님과 통화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우리니라 불교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스님이 주지가 되려고 하는 데 있다. 좀 심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머리 깎고 수계하는 순간부터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는 어느 절 주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주지가 되어 반드시 나쁠 것은 없다. 소임을 맡아 대중을 잘 외호하고 불사를 일으키며, 널리 교화활동을 편다면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원력 때문에 주지를 맡으려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세속적인 까닭 때문아라는 데 있다. 그들은 고단한 수행이나 포교는 적당히 흉내만 내거나 아예 남에게 맡겨 버린다. 시주돈을 내 돈처럼 쓰며, 그저 고급승용차나 타고 부자처럼 거드름만 피우면 된다. 그래도 존경은 존경대로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마 이런 호사가 없다면 굳이 주지를 하겠다고 머리를 내밀고 싸울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요즘 한국불교의 모든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출가자가 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스님들에 대한 모욕이 되겠지만, 대부분의 스님이 오직 여기에만 관심이 있다. 주기적으로 싸움이 일어나는 것도 무슨 사상 논쟁이 생겨서가 아니다. 그런 싸움은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요즘 종단싸움은 명분이야 내세우지만 그것을 세속적 탐욕을 위장하기 위한 구호일 뿐이다. 출가자가 돈이니 명예니 하는 세속적 가치를 우습게 생각한다는 말이 만담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나는 스님의 얘기를 한참 듣다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여쭈었다.
“오늘의 불교를 바로 세우려면 본질적이고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물론 그 동안 ‘비상종단’이니 ‘개혁회의’니 하는 간판을 내걸고 개혁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는 모두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개혁이라는 미명아래 종단 구조를 차츰 더 세속화하는 데 몰두해 왔다. 예를 들어 보자. 불교종단이 있는 까닭은 오직 ‘수행과 포교’에 있다. 승려도 사찰도 행정 기구도 이것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개혁 추진은 다분히 종단의 권력 중심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행정개혁’에만 관심을 쏟아 왔다. 종단운영을 종정중심제로 할 것인지 총무원장 중심제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인사권이나 행정권을 중앙 집중적으로 할 것인지 지방분권적으로 할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 같은 내용이 개혁의 핵심 내용이다 보니 출가승단의 가장 중요한 사명인 수행과 포교가 부차적인 것이 되고, 인사나 행정 같은 것이 다른 것보다 먼저 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권력 다툼, 자리다툼이 그칠 날이 없는 것은 이 같은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돌이켜 보면 그 동안 종단은 모든 제도를 세속적 행정 중심의 구조를 강화하는 장치로 이용해 왔다. 출가 승단의 존재 이유인 수행과 포교는 뒷전이고, 명리가 보장되는 종단의 요직이나 중요사찰의 주지직에 누가 취임하며, 자격은 어떻게 제한하는 지가 최대의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뛰어도 종단의 주요 직책이라는 게 공사찰 주지 천이백 개, 중앙종회의원 여든 개, 총무원과 몇 개 법인의 간부 스무 개 등 많아야 천삼백 개쯤의 자리밖에 없다. 이에 견주어 그 자리를 넘보는 사람은 열 다섯 배가 훨씬 넘는다. 여기에서 싸움이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종단 내분의 원인이 잿밥싸움에 있으므로 재정 운용의 투명성 확보가 종단 개혁의 핵심 주제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방법의 하나로 모든 종무는 재가자가 맡고 출가자는 수행과 포교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하지만 출가승단의 공동체적 운영을 공동체 밖의 재가자가 관여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도덕적 감시 차원을 넘어 재가자가 직접 관리하다 보면 출가와 재가의 갈등을 불러오거나, 출가가 재가에 종속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더욱 확실한 대안은 출가승단의 구조와 운용 방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면 무엇이 근본 물줄기를 바로 잡는 것인가. 그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지 않는 사람은 종단 안에 발 붙일 수 없도록 종단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모든 승니는 수계득도 뒤 평생 동안 반드시 수행과 포교에 종사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이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규제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종단의 모든 제도와 조직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구조로 뜯어고쳐야 한다. 포교와 수행에 대한의무가 없는 출가 생활을 그냥 놔두니 승강이 무너지고 엉뚱한 짓들만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스님이 출가해서 입적할 때까지 어떻게 중노릇을 해야 한다는 시간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예를 틀어 수계를 하기 전에 최소한 사 년 동안은 엄격한 수행과 교육 과정을 거친 뒤에 고시를 통해 자질을 검증받고 출가를 해야 한다. 또 출가 득도한 뒤에는 오 년 단위로 끊어서 수행과 포교, 행정직을 평생에 걸쳐 되풀이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한 번 주지를 하고 다시 하려면 십 년 뒤라야 된다. 그러다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기로원 같은 곳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도록 하면 된다. 요즘처럼 한 번 주지가 되면 늙어 죽을 때까지 주지만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렇게 모두가 계속해서 수행하고 포교하면서 때가 되면 종단행정직에도 참여토록 한다면 승려의 자질도 높아지고 싸움도 사리질 것이다. 총무원은 바로 이런 제도를 관리하고 운용하는 종단행정의 서비스기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계종은 지금까지 제도 개혁을 논의하면서 이와 같은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보다는 삼권분립이니 선거니 하는 세속법만 모방해 왔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교묘하게 제도의 형식만 조금씩 바꿔 왔다. 그러니 세속적인 싸움이 생기는 것이다.”
통화가 끝나 갈 무렵 스님의 법명을 여쭈었더니 “그런 것은 일려고 하지 말고 내 말에 공감하면 이 얘기를 글로 써 달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스님이 왜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당신의 생각이 늘 기득권자나 말로만 출가 정신을 들먹이는 사람들 때문에 묵살되자 차라리 이해 관계가 없는 재가자에게 의견을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님의 말씀 가운데 ‘행정 중심이 아닌 수행과 포교중심의 승단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특히 공감했다. 그래서 그 노스님의 의견을 이렇게 대신 글로 옮겨 승단 안에서 공론화를 기대하기로 했다.


*노스님.
약속대로로 글을 썼으니 다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불교가 스님의 획기적 제안을 수용할 저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토론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