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지는 82년 3월 해인사에서 태어나 그동안 대구유학, 서울유학까지 마치고 이제 20살(통권 220호) 정도의 성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다. 편집실 이전으로 성년식을 해인사에서 올렸다 생각하니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귀소본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점으로 보아 인연이 보통이 아닌 듯 싶다. 이쯤에서 해인리포트 지면을 빌어 간략하나마 해인지의 작은 역사, 해인지 이력을 정리해보았다.
통권 1호. 1982년 3월 창간호. 표지 포함 8면으로, 매월 15일 발행
해인강원 포교부(불교학생회 지도반)에서 발행(36개월), 지도법사 현장 스님
통권 25호. 1984년 3월 대구지사 둠. 인쇄: 대구 새한정밀인쇄소
통권 26호. 1984년 4월 법인으로 해인출판부 등록[등록번호,611-98-33064 대표자 신성경(무관 스님)]
통권 37호. 1985년 3월 해인지 문공부 등록[등록번호 라-2996 김사의(일타 스님)], 32면 증면하여 재 창간 주간:향적 / 편집장:시명(18개월). 연경당(서점)문을 열다
통권 45호. 1985년 11월 주간:여연 / 편집장:시명 / 편집위원:원택, 종림, 향적
통권 53호. 1986년 7월 주간:여연 / 편집장:시명 / 편집위원:원택, 종림, 향적, 법연, 해진
통권 55호. 1986년 9월 주간:여연 / 편집장:법연(17개월) / 편집위원:원택, 종림, 향적, 시명, 해진
통권 57호. 1986년 11월 편집디자인은 서울 끄레로 옮김.
통권 61호. 1987년 3월 주간:여연 / 편집장:법연 / 편집위원:원택, 종림, 향적, 해진
※영업부장:종본 / 사무장:해진 / 화주:종묵. 원통
통권 70호. 1987년 12월 인쇄를 대구에서 서울 문성인쇄로 옮김
통권 71호. 1988년 1월 월간해인 정관 만듬
통권 72호. 1988년 2월 주간:송월 / 편집장:종림(23개월) / 편집위원:정원, 종성, 선용, 보행, 원택, 여 연, 향적, 현응, 법연, 종묵 해인회계:심적 / 사무간사:해진 / 화주:종묵, 원통
통권 78호. 1988년 8월 편집실을 대구에서 서울 북아현동으로 옮김
통권 93호. 1989년 11월 부산지사(김동활). 대구지사(홍무흠) 설치
통권 98호. 1990년 4월 주간:여연 / 편집장:시명(17개월) / 출판부장:법연 / 편집위원:원택, 종림, 현응, 해진 해인회계:법우 / 화주:심적
통권 101호. 1990년 7월 편집디자인 불지사로 옮김
통권 105호. 1990년 11월 주간:여연 / 편집장:시명 / 출판부장:법연 / 편집위원:원택, 종림, 현응, 원영, 일관, 도각 해인회계:범산 / 화주:법우
통권 112호. 1991년 6월 주간:여연 / 편집장:도각(36개월) / 출판부장:법연 / 편집위원:원택, 종림, 현응, 원영, 일관, 시명 해인회계:능도 / 화주:법우
통권 117호. 1991년 11월 편집디자인 다시 끄레로 옮김
통권 134호. 1993년 4월 주간:현응 / 편집장:도각 / 출판부장:법연 편집위원:만우, 원철, 진각, 본해 / 해 인회계:능도 / 화주:법우
통권 137호. 1993년 7월 주간:현응 / 편집장:도각 / 출판부장:법연 / 자문위원:원택, 종림, 여연, 시명 편집위원:만우, 원철, 진각, 본해 / 해인회계:능도 / 화주:법우
통권 143호. 1994년 1월 월간해인 정관개정
통권 148호. 1994년 6월 주간:현응 / 편집장:진각(25개월) / 출판부장:법연 / 자문위원:원택, 종림, 여연, 시명 편집위원:도각, 만우, 원철, 본해 / 해인회계:종오 / 화주:능도
통권 159호. 1995년 5월 주간:현응 / 편집장:진각 / 출판부장:법연 / 자문위원:원택, 종림, 여연, 시명, 향적 편집위원:도각, 만우, 원철, 진각, 본해, 현진, 성전, 오성 / 해인회계:종오 / 화주:능도
통권 168호. 1996년 2월 주간:도각 / 편집장:진각 / 출판부장:본해 / 자문위원:원택, 종림, 여연, 시명, 향적, 법연, 현응 편집위원: 만우, 원철, 진각, 현진, 성전, 오성 / 해인회계:동은 / 화주:능도
통권 173호. 1996년 7월 주간:도각 / 편집장:성전(30개월) / 출판부장:본해 / 자문위원:원택, 종림, 여연, 시명, 향적, 법연, 현응 편집위원: 만우, 능도, 원철, 진각, 현진, 오성 / 해인회 계:호산 / 화주:종오
통권 194호. 1998년 4월 주간:도각 / 편집장:성전 / 출판부장:호산 / 자문위원:원택, 종림, 여연, 시명, 향적, 법연, 현응 편집위원:선용, 수완, 도현, 만우, 능도, 원철, 진각, 현진, 오 성, 남일, 경암 / 해인회계:호산
통권 199호. 1998년 9월 주간:수완 / 편집장:성전 / 편집위원:원타, 길상, 경성, 심우 / 해인회계:수인
통권 203호. 1999년 1월 주간:수완 / 편집장:길상(3개월) 편집위원:원택, 수진, 원타, 경성, 지효, 원철, 심우 / 해인회계:정오
통권 206호. 1999년 4월 주간:수완 / 편집장:동은(10개월) 편집위원:원타, 길상, 경성, 심우, 원철, 관암, 현진, 성전, 주경, 오성 / 해인회계:정오
통권 216호. 2000년 2월 주간:종월 / 편집장:관암(현재~)
편집위원:선용, 성일, 경성, 심우, 원철, 동은, 현진, 성전, 주경, 오성 / 해인회 계:정오
통권 218호. 2000년 4월 월간해인 편집실을 서울에서 해인사로 이전.
해인지는 82년 3월 해인불교학생회(81년 창립)를 지도하는 해인강원 포교부 스님들에 의해 기획되어 8면 양장 칼라로 매월15일 발행하였다. 창간호에 해인지의 모토로 되어있는 “우리의 다짐” 『배우고 실천하자. 도와주고 사랑하자. 노력하고 책임지자.』와, 지도법사 현장 스님의 “해인지 창간에 부쳐” 그리고 지도교사인 황희연 선생님의 “당부의 글”에 나타나 있듯이, 처음 통권1호, 통권2호는 학생회 법회자료 및 회보의 성격으로 기획되었다가 통권3호 이후부터는 해인강원 포교부에서 만드는 전국적인 유가지有價紙. 순수 포교지로서 빠르게 발돋음 했다. 그리고 2년 뒤인 84년 3월에는 대구지사를 설치하고 해인출판부를 등록하여 출판업에도 관심을 가졌었고, 다시 1년 뒤 85년 3월 통권 37호부터 그 당시 종무소 소임자들과 의식있는 스님들에 의해 해인지를 월간 간행물로 정식으로 문공부에 등록하고 주간, 편집장, 편집위원등 명실상부 공인된 간행물로서 행정적인 절차와 조직의 내실을 갖추었고, 지면도 32면으로 증면, 매월초에 발행하고 영구회원 제도를 두는 등 발전을 위한 틀을 마련하였다.(현재는 표지 포함 44면). 이는 당시 불교계의 문서포교 실정이나 의식정도, 그리고 불교 출판업에서 볼 때 스님들이 나선 일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런 의식과 토대 위에서 위의 이력에서 간단히 소개되었듯이 해인지는 대구로, 서울로 거쳐 이제 성년이 되어 해인사로 돌아왔다. 지금과 같은 해인지의 위상과 수준을 위해 그동안 해인지를 위해 애써주신 분은 한두 분이 아니다. 물론 지난 세월이야 평가하기 따라서 달리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애써주신 그 분들의 노력이 잘 이어갈 수 있도록 정진하고 또 정진 할 따름이다. 더 자세한 해인지의 야사野史는 후일담으로 미루기로 하고 해인지 발전을 위해 많은 격려와 편달을 부탁드리는 바이다. □월간해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