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봄날 오신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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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암 이야기 - 법장
2000년 06월 220호
봄가뭄이 너무 심하다. 비가 올 듯 몸과 마음만 휘둘러놓고 겨우 쥐오줌만큼 뿌리다 만다.
그것도 어쩌다 한번. 골짜기에 물도 거의 말랐다.
몸살이 크게 났어도 몸져 누워있을 형편이 아니다. 날씨도 화창해서지만 할 일이 많아서이다. 밭고랑을 옮겨다니며 물주는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시들거리던 열무가 싱싱해지며 쑥쑥 올라오는듯 해 눈길이 각별해 진다. 한나절은 쑥 캐느라 거의 보내진다. 곳곳에 지천으로 쑥인데도 그대로 쇠어져가는 것이 아깝다. 연한잎부터 봄내 뜯었더니 검은진이 아무리 씻어도 가시질 않는다. 가마솥에 삶으며 맡아지는 쑥향은 그대로 산골 봄내음이다. 틈틈이 산허리를 오르내리며 나물 뜯는 일은 산골만의 즐거운 일과이다. 숲이 찍찍 우거져 흔전만전 깔려있진 않고 이따금 하나씩 솟아있다. 하나씩 모아지는 그게 여간 소중하다.
나무꾼의 자취가 사라진지 오래다, 낙엽들은 긴 세월 쌓이고 등성이는 가팔라서 길이 보통 힘든게 아니다. 까딱하면 미끄러지기 일쑤이고, 봄이어도 산골의 적막은 마찬가지, 온산을 거칠 것 없이 헤집고 다니며 바구니 가득 나물을 채워 내려오는 길에 느닷없이 뻐꾸기란 놈이 적막을 깨트려 화들짝 놀라면 다람쥐 녀석이 덩달아 놀래 쏜살같이 내빼고. 하긴 인적없는 산골에 한동안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두 번이나 이어진 잔치 때문이었다. 한 번은 이 산골에서 내내 함께 사실 부처님 모셔오던 날이었고, 그 부처님 모시고 처음 맞은 사월 초파일이 두 번째 잔치였다. 집이 다 지어지고 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였다.
애당초 허허벌판에 터를 닦았던 곳이라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 워낙 많고 큰 일을 치루기는 무리라 망설여지기는 했었다. 그러나 저번 겨울을 살아보니, 외진 산골에서 혼자로는 너무 외로웠다. 더욱 외롭자고 시작한 생활은 자칫 병이 되지않을까 우려되었다. 그래 서둘렀다. 봄을 넘기면 여름 지나 가을이나 되어야 일을 치루게 될 것같아 어느날 갑자기 맘먹고 부랴부랴 준비에 들어갔다. 모든 것이 처음인지라 하나하나를 다 장만해야하고, 아무리 조촐하게 차린다해도 이 골짝에서 다시 얻기 어려운 큰 법석임에랴. 더군다나 집을 짓고 낙성까지 겸한 것인데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여태껏 본 것은 많았어도 직접 해보려니 손에 잡히든 않고 엄벙덤벙대기만했다. 날짜는 흘러가고 무엇을 어찌해야 잘했다 할까 적막강산에 누구를 붙잡고 의논하나. 그렇다고 건너산 나무를 향해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준비할 것은 적지 않았다. 왜, 그리 긴장만 잔뜩 되던지.
다 아는 얼굴에 한두 번 치룬 일이 아니건만 문득문득 긴장에 빠져 곤혹스러웠다.
모두들 그래도 와주었다. 힘들여 차린 잔치에 썰렁하면 어쩌나했는데, 특히 아랫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참석하고 축하해 주었다. 마을에서는 관심이 상당했던가 보다. 날씨도 이 골짝에 부처님 오시던 날 크게 부조해주고. 아침나절 비가 조금 와 크게 걱정들 했단다. 처음부터 지켜봤던 보살은 잔치를 망칠까봐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하고, 참 많이들 걱정하고 함께 애썼다. 그만큼 잔치도 성대하고 원만했으며, 오신 부처님도 단아하고 기품있어 보였다. 복 많을 부처님 같다. 이제 좀덜 외로우려나.
숨돌릴 틈도 없이 다가온 사월 초파일은 그야말로 조촐한 잔치였다. 동네에 두 군데나 초상이 났고, 전날 비가 조금 내려 일도 바쁜 철이라 김이 좀 빠지긴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 산골에서 처음 맞는 초파일을 동네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려던 마음이 아쉽긴해도 드문드문 올라오는 발길이 하루내 이어졌다. 처음 등을 내거는 아침, 어른들 틈에서 승록인 살판이 났다. 지 등도 하나 달겠다며 졸라댄다. 주름등을 욕심내서 지 손으로 직접 이름 쓰고 소원까지 크게 써서 걸었다. 무엇을 알고 저러는지, 때론 부처님 앞에서 열심인 모습은 신통하다.
다시 혼자 남았다. 다 떠난날 저녁부터 몸살이 났다. 오래 버티기는 했다. 올봄에는 산나물도 맘먹고 더 말리려는데, 밭일도 많고 몸살도 걱정이다. 봄도 거의 지나가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