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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찾은 밀양 만어사萬魚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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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정영호 2000년 06월 220호
1960년대 이전에는 일제의 민족문화 탄압시대인 1933년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호령」에 의하여 모든 문화유산이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로 분류 지정되고 있었다. 8.15광복 이후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보물을 국보로 개칭하였을 뿐 문화재를 보존하는 기구 자체는 변하지 않았었으며 1960년대에 들어서 「문화재 위원회」가 발족되고 전문위원제도를 두어 필자가 첫 전문위원으로 위촉되면서 나의 문화재 실태조사는 전국적으로 확대 활발하게 진행하게 되었었다.
62년 겨울, 경상남도 일대의 유적지를 답사하고 부산에서 열차편으로 귀경할 때의 일이다.
당시 삼랑진 역은 교통의 요충으로 경부선은 물론 마산 경유 진주로 향하는 열차가 삼랑진 역에서 갈라지게 되는 삼거리 역이었다. 열차에서 잠깐 내려 주변을 돌아보는데 동쪽 멀리에 높은 산이 눈에 띄었다. 때마침 망치 하나를 든 검차원이 지나가기에 저 큰 산 이름이 무었이냐고 물었으나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뒤쪽에 있던 삼랑진역 조역에게 물어보았다. 대답이 시원하지는 않았으나 “「만어산」이라 하던가…… 무슨 이름이 있긴한데……” 하기에 혹시 그 산에 옛날 절이나 유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은 모르나 간혹 종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고 하였다. 더 이상 물어볼 내용도 없었으나 파란 깃발을 흔드는 조역의 출발신호에 필자도 허둥지둥 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만어사, 만어사…」라고 몇 번이고 마음 속으로 대뇌이며 기억을 더듬는데 어디서 본듯한 절 이름이었으나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하기까지의 몇 시간 동안 계속 이 생각이 떠나지 않고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저녁때 집에 도착하자마자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들추어 보았다. 삼국유사 탑상塔像 제4 「어산불영魚山佛影」조에 「古記云 萬魚寺者之慈成山也 又阿耶斯山」 … 「萬魚山有五羅刹女」 … 「故東海魚龍遂化爲滿洞之石 各有鐘磬之聲 己上古記又接 大定十二年更子 郎明宗十一年也 始創萬魚寺 棟梁寶林狀奏所稱山中奇異之述」라 있어 깜짝 놀랐다.
「만어사」라는 절 이름이 분명하며 기사내용도 짐작이 가는 일이어서 그날 밤 야간 열차편으로 삼랑진을 다시 찾았었다. 나의 복장과 배낭 등 모든 모습은 전날 그대로였고 다만 삼국유사 책 한 권만이 배낭 속에 더 들어 있었다.
겨울철 새벽6시는 아주 어두운 때이다. 역에 내려서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니 어제 낮에 만났던 조역이 난로 가에 앉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반갑게 인사를 하였으나 의아해하기에 어제 산 이름을 물어보았던 승객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기억이 나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런데 어제 서울로 가지 않았느냐’고 하기에 갔다가 다시 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도대체 무엇을 하는 분이냐고 물어오기에 문화재를 조사하는 문화재 전문위원이라고 하면서 가지고 갔던 삼국유사를 펼쳐 보이며 여기에 만어사 절 이름이 보이어 이 절을 찾으러 왔다고 하였다. 그 조역은 상당히 흥미를 느꼈던지 내가 근무만 아니면 같이 갈 수도 있을 텐데… 하였다.
역전에서 막걸리 한 사발과 해장국을 먹고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산 쪽으로 걸어 나섰다.
20리 길을 걸어 올라가니 거의 상봉 가까이 한 작은 마을에 다다를수 있었다. 이장里長을 찾아 인사를 하고 이곳 주소가 밀양군 삼랑진면 용전리龍田里 임을 알 수 있었고 현재 조금 떨어진 상봉 가까이에 만어사가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장의 안내로 만어사를 찾게 되었는데 이곳에 3층석탑 1기가 건립되어 있어 역시 옛날 사찰임을 알 수 있었다. 옛 절터는 현재의 사찰 위치와 다소 떨어져 있으나 석탑 뒷편에 건물자리로 보이는 대지가 있어 이곳이 본래의 법당지로 생각되며 석탑도 본래의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석탑은 전체의 높이가 3.7m이며 단층11단인데 4매로 구성된 지대석 위에 2단의 각형 괴임을 마련하고 그위에 탑을 받고 있다. 기단면석은 4매로서 짜임은 통식通式 이며 폭 20∼22cm의 우주가 각출되었다. 갑석은 2매이며 부연이 있고 상면에 2단의 각형괴임으로서 탑신부를 받고 있다. 각 탑신에는 우주가 있으며 옥개석은 받침이 3단씩이고 1,2층은 상면에 1단괴임으로 그 위에 탑신을 받고 있는데 3층은 2단의 괴임이 있다. 노반 등 상륜부는 없으며 현재는 별개의 석재를 얹고 보주를 놓았으나 파손이 심하다. 각 옥개의 낙수면은 경사가 급한 편이나 전각의 반전으로 끝부분에서는 평탄해졌다. 탑신과 개석이 약간의 파손이 있으나 전체적인 구조와 수법으로 보아 균정한 고려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라 할 것이다.
한편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았을 때 대정大定 12년은 금金 세종世宗 12년으로 고려 명종2년 임진壬辰(1172)이며 명종11년은 대정21년 신축辛丑인데 경자庚子년은 대정20년 명종 10년이므로 대정12년과 경자, 명종11년의 삼자三者는 맞지 않다. 그러나 경자가 대정20년인데 이것은 12년의 오기誤記가 아닐까 생각됨에서 삼자를 부합시킬 때의 연대인 1180년을 만어사 시창始創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석탑도 그 양식수법으로 보아 같은 시대의 건립으로 추정된다.
현재 사찰 경내에는 석탑 이외의 건물 등 유물이 없으나 석탑 앞쪽에 길이 40m의 옛날 석축이 남아있어 주목된다. 법당 건물로는 약80년 전에 건립하였다는 대웅전과 미륵전이 있는데 미륵전 안에는 거대한 자연석을 「미륵존불彌勒尊佛」이라 칭하면서 신앙하며 태극도인, 무극도인들이 출입한다고 한다. 답사 여행 중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유적지를 찾고 처음으로 유물들을 대하는 경우가 많다. 지나가는 말로 물어본 것이 들어맞아 새로운 유적 유물이 발견 조사될 때도 많다. 만어사의 경우도 그러한데 이곳에서 절대연대를 알 수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을 조사할 수 있었음을 무엇보다도 큰 수확이라 하겠다.
이 석탑은 그후 보물 제466호로 지정되어 현재 귀중하게 보존되고 있으며 특히 고려시대 석탑을 연구하는데 건립연대가 정확한 (제19대 명종 10년, 1180) 석탑으로서 하나의 기준이 되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현재도 서향한 만어사 주변에는 마치 고기떼와도 같은 형태의 석재들이 가득히 널려있어 동적動的인 어석魚石의 석동石洞임을 느끼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