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時空을 넘는 因果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신태용 2000년 06월 220호
이른 아침에 가까운 그린(골프장)에 나가 삿을 날렸는데, 감각이 좋아 공은 멋지게 포물선을 그리더니 그대로 홀인 되었다. 확률이야 복권보다야 훨씬 높지만 기분이 날듯하다. 감격해서 손을 흔드는데… 꿈이었다. 요즈음 그린에 자주 나가게 되어 아내에게 늘 미안했는데 꿈속 홀인으로 잠꼬대하는 나를 보았더라면…, 부처님께서도 집착을 제일로 경계했는데… 아무튼 오늘은 일진이 좋으려나 보다. 복권이나 한 번 싸볼까…? 나는 역시 한국인인가 봐, 좋은 꿈을 꾸면 무의식적으로 해몽에 바쁘고 복권 사는 일에 머리가 먼저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하지만 요행은 없다. 모두가 인연의 소치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삼세 인과는 시공을 넘어 언제나 엄존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밴쿠버에서 사랑하는 나의 가족, 아내와 큰 애(토론토에서 공부 중이다), 작은애를 떠올리며 집 근처 MOONDY PARK의 새벽 안개 속을 산책하고 있다. 지난 날을 돌이켜 글을 쓰려니 나의 마음은 한바탕 연극을 마친 사람처럼 아쉬움과 허전함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가족의 평안과 정착을 위해 앞 뒤 안보고 달려와 이제 조금 한숨쉬며 느긋한 마음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고 작은 일에 크게 만족하며, 거칠어졌지만 언제나 따스한 아내의 손을 잡고, 대견스럽게 커 가는 자식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한고비의 인생은 지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제 가까이 계시는 달마사 큰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며 자신의 내면을 다지고 정화해서 성불을 향한 정진을 계속하면서, 난관이 있을 때마다 힘을 주시고 가피를 내려주신 불·보살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도 있지 않을 것이다. 성불을 향한 깨닫음의 세계로, 신기루 같은 유토피아 세계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안정과 행복을 위한 집념의 노력은 “등 따시고 배부를 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난세는 영웅을 내고, 중생이 있어야 성인(부처)이 출현하고, 진흙 밭에서 연꽃은 돋아나고, 어려운 난관에 부딪쳐야만 정신을 차리고, 마장이 있어야 공부가 익어가고 인생이 가치롭고 풍성해지는 이치는 육도세계 중 이 인간계의 한계이자 진리인 것 같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고苦가 복福덩이요, 복덩이가 곧 고인 줄 알아야 인생을 바로 본다 했으리라.
88년 봄 우리 부부는 유치원에 다니는 7살 큰 애와 엄마 곁을 떠나면 늘 찡찡거리는 3살 작은 애를 하나씩 안고 막연한 행복을 향해 그러나 각오만은 대단하게 태평양을 건너 대륙을 반쯤 횡단하여 낯설고 연고도 없는 카나다 토론토에 이민을 왔지만 반기는 것이라곤 키만큼 오는 눈과 고향에 대한 향수 그리고 이질적인 문화였다. 그러나 조선인의 아줌마는 대단했다. 나보다 아내는 빨리 적응해 나갔지만 나는 이국 땅에서의 정착은 체통과 뒷짐지고 “어흠” 하는 한국인의 양반 기질과, 남자입네 하는 남존男尊사상이 무의식적으로 베여서인지 일상 인간관계에서 자존심 상하는 일에서부터, 빨리빨리 정착해야겠다는 조바심으로 인해서 많은 고생을 했다. 그리고 같은 한국인은 정착을 위해 격려도 하며 의지와 도움도 되지만 이들로 인해서 봉변을 당하다 보면 “집에서 새는 바가지 어디 간들 온전하랴” 대뇌이며 민족성을 탓하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누워서 침을 뱉는 꼴이 아니겠는가.
나는 토론토에서는 정착에 실패했다. 기후 마저 추우니 희망과 봄을 향한 나의 마음은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졌다. 봄! 환경적으로도 파란 새싹과 꽃들이 만개한 봄의 동산이 그리웠고, 더 늦기전에 인생에서도 희망의 새봄을 다시 꿈꾸고 있었다. 사계절이 있지만 언제나 흰 눈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 토론토를 떠나 새봄을 꿈꾸며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나의 머리 속에는 3년 전 처음 토론토로 이민 올 때 비행기에서 내려본 파란 숲과 푸른 들판이 보였던 카나다 태평양 연안 도시 밴쿠버를 생각했다. 3년 이민 생활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특별한 대책이나 기약도 없이 또다른 도전을 싫어하는 아내를 설득하여 봄과 희망을 찾아 밴큐버로 향했다. 가진 것 없이 카나다로 건너와 먹고 사느라 제대로 여행 한 번 못했기에 이삿짐은 화물로 부치고 우리 가족은 승용차로 카나다 대평원을 이리저리 관광하고 록키 설산의 비경을 감상하며 1주일간 정말 멋진 이사관광(?)을 하였다.
부처님의 종자를 심어 놓으면 언젠가는 싹이 튼다 했던가(믿음이 없는 이는 운運이라 하겠지만). 그래서 세상은 모두가 인연의 소치요, 부처님도 삼세 인과응보라 하지 않았던가! 이사하는 동안에 나는 부처님의 뭉중가피로 그동안 정말 잊고 지냈던 우리 집안의 불연佛緣을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밴쿠버로 가는 길은 부처님의 인도하심이었고 우리 조상이 심어 놓은 불심이 나에게 와 닿음을 느꼈다. 밴쿠버에 도착한 곳이 현몽한 그대로 맞았고 지금껏 이곳에서 생활의 터전을 일구었다. 맺어놓은 불연과 심어놓은 불佛 종자는 시時·공空을 초월하여 언젠가는 돋아난다는 인과의 법칙 앞에 부처님 가르침의 위대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는 부처님의 가피로 사업도 순조로와 새로 이주해오는 교민들에게 충고도 하고, 안내도 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도 생겼지만 우리 부부의 하루 일과는 언제나 새벽 5시에 시작하여 저녁 11시에야 끝이 나는 생활이다. 물론 교민들 중 국내에서 돈을 가져와 비즈니스도 없이 노는 것을 낙으로 삼는 이민자도 있지만 어디서나 교민 대부분은 우리처럼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나 환경이 좋고 노후와 애들 교육에 걱정이 없고 그리고 옷차림이나 자동차 배기량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직업에 귀천이 없어 상대적인 박탈감이 생기지 않으니 일하는 게 재미가 있다. 또한 다행히도 이민생활에 지치고 고국의 향수가 그리운 우리들에게 우리의 정서에 맞는 부처님을 봉안하고 매주 법문 하면서 나약하며 나태한 우리들의 마음을 추스려 주며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고 계시는 밴쿠버 코큐틀람에 있는 달마사 큰스님과의 인연을 무어라 형언할 길이 없다. 법회 때 같이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교민 생활에 필요한 정보도 나누는 달마사는 우리들의 신앙처이자 복덕방이다. 우리 부부는 아니 달마사 신도 모두는 달마사 큰스님을 언제나 부모 같은 스승으로 모시며 불심을 닦고자 노력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 실천에는 미흡해서 큰스님 앞에 서기가 늘 미안하기 그지없다. 이 지면을 빌어서 큰스님과의 인연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앞으로 아내와 가족에게 더욱 관심을 갖고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암울했던 시절에 부처님은 나에게 현몽하시어 살길을 인도했고 희망과 용기를 주셨다. 이것은 내가 지은 불연이라기 보다는 나의 조상들이 뿌려 놓은 은혜이니 지금 심은 공덕과 발심이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해서 선행에 소홀하거나 퇴굴심을 내어서는 안 되리라. 오랜 시간이 지나, 이 억만 리 카나다까지 미치고 있으니 부처님의 인연법과 일심법一心法은 시공이 따로 없는 것이다. 공간적으로 삼천대천세계의 넓은 공간과 시간적으로 백천만겁의 오랜 시간도 한마음(一心)의 열고 닫음에 있으니 부처님은 우리의 원을 못 듣고, 못 보는 일은 없는 것이다. 확신을 가지고 정진하고 선근善根 공덕을 쌓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