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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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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일운 2000년 06월 220호
설산에 사는 야차가 부처님께 물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인해 생겨났으며, 무엇으로 인해 사랑하게 됩니까. 그리고 무엇에 집착하고 있으며, 또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세상사람들이 괴로워한다는 그 집착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산에 사는 자여 여섯(눈, 귀, 코, 혀, 몸, 뜻) 가지 것으로 인해 세상은 생겨났고, 여섯 가지 것으로 인해 사랑하게 되고, 사람들은 이 여섯 가지에 집착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다섯(형태, 소리, 향기, 맛, 감촉-오관의 대상-) 가지 욕망의 대상이 있고 의지의 대상은 그 여섯 번째다. 그런 것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난다면 곧 괴로움에서 벗어나리라.”야차가 또 물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사나운 물을 헤치고 건너갑니까? 이 세상에서 누가 대해大海를 건너갑니까? 의지할 곳 없는 깊은 바다에 들어가도 누가 갈아 앉지 않습니까?”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언제나 계율을 지키며, 지혜가 있고 마음을 통일하여 스스로 보살피며, 생각하는 바가 있는 자는 건너기 어려운 사나운 물결을 건널 수 있다. 애욕에 대한 생각을 떠나 온갖 집착의 매듭을 초월하여 환락을 소멸시키는 자, 그는 깊은 바다 속에 갈아 앉지 않는다.” 그리고 “신앙을 가지고 집에서 생활할지라도 성실, 진리, 견고, 보시 이 네 가지 덕이 있으면 내세에서도 걱정이 없다.”이것은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부처님과 야차의 대화 내용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갖 번뇌에 싸여서 살아간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안을 들여다보면 남모르는 고민거리가 반드시 있다. 좋은 일에 어려움이 따르고, 궂은 일 뒤엔 좋은 일이 따르는게 세상사가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일에 경박하게 환호작약하거나, 조금 나쁜 일에 낙담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열반경> 성행품에는 이런 설화가 적혀 있다. 얼굴이 예쁘고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이 어느 집 문 앞에 서 있다. 주인이 “당신은 뉘시오?” 하면서 반갑게 물었다. 저는 “공덕천이예요. 가는 곳마다 그 집에 복을 주지요.” 하고 말했다. 주인은 반갑게 집으로 들여서 꽃과 향으로 공양 올렸다. 잠시 후 추한 얼굴에 누더기를 걸친 여인이 밖에 서 있기에 주인은 퉁명스럽게 “누구요?” 하고 물었다. 여인은 쉰 목소리로 “저는 흑암천이라고 합니다. 가는 곳마다 그 집에 재앙을 뿌리지요.” 하고 말했다. 주인은 재수 없다며 누더기 여인을 쫓아 버렸다. 그러자 먼저 온 예쁜 여인이 “그 분은 저의 언니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다녀야 합니다.”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복과 재앙은 붙어 다닌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 빛과 그림자는 함께 있을 수 밖에 없다.
세상에 번뇌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해의 바다를 헤쳐 가는 것이 삶이고 보면 번뇌를 번뇌로만 여기고 고통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극복해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도 이런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이다. 지혜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 수행자는 물론, 재가불자들도 항상 기도하고 정진하는 생활을 통해서만 지혜는 얻어진다. 하루아침에 깨달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생활과 기도가 하나되어 정법에 따라 청정하게 수행함으로써 모든 번뇌를 스스로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욕망과 혐오, 굶주림과 목마름, 애착과 권태와 잠, 공포와 의혹, 허영과 고집 등 그릇된 수단으로 얻은 이익과 명성, 자기를 추켜세우고 남을 경멸하는 이 모든 악마의 병력을 용기 있게 물리칠 때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부정적인 모든 것에 대한 집착과 애욕을 버릴 때 고통과 번민은 사라지게 된다.
흔히 사회인들은 힘든 일을 당하고 견디기 어려울 때 “삭발출가나 할까.”라고 말하는 일이 가끔 있다. 그러나 수행자라고 모두 노력 없이 생로병사의 고통을 벗어 날 수 없고 번뇌 망상에서 해탈 할 수는 없다. 수행자이든 아니든 누구나 기도와 수행을 통해서만이 번뇌를 끊고 생사의 고뇌에서 벗어나 바다 속 깊은 곳처럼 잔잔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을 것이다.
나 자신도 한 때는 모든 것이 다 귀찮을 만큼 수행생활 중 번뇌에 끄달린 일이 있다. 그 갈등과 고통에서 잠시 방황하다가 결국은 전보다 더 열심히 기도 정진하기로 마음을 바꾸어 노력한 끝에 자신의 조그만 도량을 갖추고 최근에 봉불 점안법회를 가졌다. 한 달에 한 번씩 신도들과 성지 순례를 다니고 그 중 여러 번은 철야기도를 한다. 사찰까지 오고가는 도중 내내 차 안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하는데 어떤 거사는 “평생 할 기도를 오늘 하루에 다했다. 목에 쥐가 날 것 같다.”고 해서 모두 웃은 일도 있다. 보통 성지 순례길에 차 안에서는 노래를 부르지만 우리 신도들에게는 노래 대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수천 번 염송하게 한다. 잡념으로 기도하기가 여의치 않을 때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하라고 신도들에게 자주 얘기하고 있다. 관세음보살님이 천수천안으로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보시고 구제하시기 위해 나투었으니, 이 다라니 보다 더 좋은 기도가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도는 요행심을 자극하거나 이기적인 욕심을 충족하는 도구가 아니다. 기도는 자신의 가치관이 변하고 이를 실천하는 대승행자로서 일깨움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인생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기도로 극복하면, 부처님 말씀처럼 고난이 곧 복 덩이가 아닐 수 없지 않는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살지 아무도 모른다. 그 불확실한 수명조차 고뇌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다고 슬퍼하고 울기만 할 수는 없다. 항상 기도하고 불법을 익히고 닦음으로써 생사의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항상 말을 조심하고,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 집착을 버리는 평범한 일상의 지혜도 기도로써 변화된다. 불운을 피하려하거나 비관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도와 올바른 마음으로 수행할 때 불운은 극복되고, 항상 마음 속엔 다음과 같은 야보선사 <금강경 송>의 게송처럼 평화로운 마음의 꽃을 피울 것이다.

대 그림자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이 물밑을 뚫어도
물 위에 흔적조차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