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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군을 벗삼아 정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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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지현 2000년 06월 220호
“수행하는데 마魔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誓願이 굳건해지지 못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 중의 말씀입니다. 세상살이나 수행생활이나 장애는 언제나 따르는가 봅니다. 원만하게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한결같은 바람이겠지만 한량없는 세월 전부터 익혀 온 나쁜 습관이 장애를 만들기 때문일 겁니다.
칼날 위를 걸어가는 것처럼, 얇은 얼음을 밟으며 걸어가는 것처럼, 두렵고 조심스러운 것이 요즘의 심정입니다. 자신감도 없고, 가끔은 미래에 대한 혹은 건강에 대한 불안감도 생기고, 막연한 비감悲感에 젖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걱정할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도 걱정도 하고 조바심도 내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자신의 무력감과 나약함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경전을 읽거나 부처님전에서 예배를 드려도 신심과 정성스러움이 부족하고 부끄럽고 죄스러움에 얼굴이 붉혀지고 공연히 눈물이 돌기도 합니다. 말로는 도인도 되고 성인도 될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늘 나의 의지는 욕심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 초라한 나의 실상입니다. 원을 세우고 맹세를 하면서 다잡고 다잡아도 흔들리고 퇴보하는 듯한 신행생활이 스스로 생각해 봐도 부끄럽고 싫어지는데 남을 위하고 중생을 제도한다고 법회도 하고 설법도
하는 것은 자신도 해치고 청중들도 해치는 짓거리라 여겨집니다.
오늘 나의 실상이 이러한데도 남의 눈에 보여지는 나는 무엇이든지 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모든 면에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니 세상은 참 요지경 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나는 나의 내면을 보면서 사는데 다른 이들은 나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다만 부처님의 옷을 빌려 입고 부처님의 집에 살고 있으니 부처님의 제자이겠거니 하는 관념으로만 보기 때문일 겁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으며 전보다 훨씬 더 부처님께 감사하고 고마워했습니다. 모자라고 못난 저를 거두어 주시고 바르게 살도록 갖가지 방편과 갖가지 지혜로 나쁜 길을 막아 주고 바른 길을 열어 주심을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고 부처님 품안에 살지 못했다면 나는 무량한 과거의 업력에 이끌려서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았겠습니까. 부처님이 한편으로는 방패가 되어 주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면이 되어 주셔서 모자라고 거짓된 제자도 바르고 원만하게 살도록 음으로 양으로 보살피시고 깨우쳐 주시는 자비가 조금씩 느껴지기 때문에 부처님을 외면하거나 달아날 수 없을 겁니다.
남들은 저의 삶을 보면서 복이 많다거나 혹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만 저의 삶을 돌아보면 늘 갈등이었고 고민이었고 또한 투쟁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쉬어가고 쉬어가라는 말들이 사치스런 말들이라고 여겨졌습니다(요즘은 조금씩 이해되지만…).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부처님이 지켜주고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확신을 느끼기에 그리고 부처님의 발자취는 저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기에 참고 견디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장애나 마군魔軍은 나의 서원력을 굳건하게 해주는 도반이고 또한 스승이기도 합니다. 한 번 큰 장애를 겪고 나면 조금은 철이 들기도 하고 자신감도 생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장애를 두려워하여 피하면 더 큰 장애가 내 앞길을 막습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마주하여 밀고 나가면 장애는 저절로 없어지고 오히려 장애가 도움이 되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요. 도고일장 마고십장道高一仗 魔高十仗이라는 글을 어떤 도반스님의 방에서 몇 년 전에 봤습니다. 참으로 맞는 말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도는 한 길도 못 자랐는데 마군은 열 길이나 자란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어떤 기업인의 기업철학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가 어릴 때 논에서 미꾸라지를 양식했는데 미꾸라지가 활기차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장마철에 메기가 미꾸라지를 양식하는 논으로 흘러들어 왔는데, 메기와 함께 살면서 미꾸라지는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느라 더 활기차게 살려는 것을 보고 다음부터는 미꾸라지와 메기를 같이 키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경쟁자가 없다면 삶은 무기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쟁자만 있다면 늘 불안하고 두려울 것입니다.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요. 칭찬과 격려는 무미건조한 삶에 활력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칭찬만 들으면 교만해지고, 꾸중만 들으면 열등감에 빠지고, 경쟁만하면 불안해하거나 오만해진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칭찬과 격려 그리고 꾸지람, 시기, 질투, 권모술수 등 갖가지의 경험을 직접 간접적으로 체험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가 가장 공부하기 좋은 곳이라 했는지도 모르지요. 작고 어린 나무는 쉽게 쓸려 내려갑니다. 뿌리가 깊고 넓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수백 년 된 큰 나무는 모진 태풍도 잘 견딥니다. 가지가 꺾어지고 잎이 떨어지지만 쉽게 넘어지지는 않습니다. 뿌리가 깊고 넓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들의 삶도 그와 같을 겁니다. 신심과 원력이 약하면 작은 장애나 마군에게도 쉽게 쓰러지거나 퇴굴하겠지만 중생을 다 건지고 중생계를 불국토로 장엄하겠다는 큰 서원과 이를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무슨 마군을 두려워하고 무슨 장애를 겁내겠습니까. 천군만마가 나를 에워싸고 죽이려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믿음은 도의 근원이고 공덕의 어머니”라고 화엄경에서는 말씀하십니다. 믿음과 원력이 마군을 물리치는 무기일 겁니다.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고행하실 때 내면으로 외형으로 얼마나 많은 마군이 공격했겠습니까. 역대전등 제대선지식 노화상들도 많은 장애와 마군을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고서 선지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수행은 장애의 극복이며, 마군을 항복받는 것임을 제불보살과 천하 선지식들이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과거에 깨달음을 이루신 분들이 마군 속에서 도를 이루셨듯이 오늘 저도 마군 속에서 마군을 달래고 꾸짖고 타이르며 항복 받아야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마군이 어찌 밖에서 오는 것이겠습니까. 수없이 오랜 세월 동안 익혀온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냉엄한 인과의 법칙이 아니겠습니까. 남을 탓하거나 원망해서 되는 일이겠습니까! 오직 바른 정신을 지키며 힘이 들어도 어려워도 내가 가야할 나의 길, 내가 해야 할 나의 일이니 남에게 미루거나 내일로 미루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을 착실하게 살아가는 수 밖에 없지요. 부처님과 선지식들이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 주심에 귀기울이고 그분들이 보여주신 바른 삶의 교훈을 내 삶으로 승화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라고 타이르시는 부처님의 유언遺言이 지금도 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