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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맑고 향기로운 삶을 위해 계율을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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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찾지말라 - 혜능 2000년 06월 220호
“뱀이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그 성품이 비록 꾸불꾸불 가게 되어 있으나 대나무관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스스로 곧바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생도 이와 같아서 아주 오랜 옛적부터 삿된 뜻을 익혀 옴으로 말미암아 바르지 못한 성품이 있다 하여도 만약 저 ‘삼취계’라는 대나무관 속으로 들어가면 스스로 정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원효 [범망경 보살계본사기]

우리가 현재 일상생활에서 당면하고 있는 폭력, 알콜 중독, 성적 학대, 환경 파괴 등의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 내부와 사회에 만연한 고통을 멈출 수 있는 길을 찾도록 촉구하고 있다.
살벌하고 혼란스러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평화를 실현하고 평정과 안온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절제하고 조복할 수 있는 대나무관과 같은 약간의 지침이 필요하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율은 바로 이러한 혼돈 속에서 평화롭고 건강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게 한다.
즉 계는 우리가 항상 윤리적 행동과 온전하고 균형 잡힌 자기 훈련을 수행하도록 일깨워 주기 때문에 행복한 생활의 윤리적 기반이 되는 것이다.
계율은 전통적으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에 비유된다. 뜨거운 사막의 태양과도 같은 감정적 갈등을 지나가는 순례자는, 그 계율의 나무 아래서 충동이나 강박적인 행동이 일으키는 불타는 폭풍에서 벗어날 안식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내면적인 것이나 외부적인 것의 모든 갈등의 마찰을 해소시키는 일은 계율로써 자신을 절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계율이라고 하는 것은 종교인이 준수해야 할 행동 규범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제시한 금지 조항으로 되어 있다. 불교의 계율에 대해서도 그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피상적인 이해로써는 불교에서 말하는 계율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불교에서 계율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외적인 면으로는 솔직함·정직·치유·비폭력·이타심·배려 등을 생활 방식으로 실천함으로써 보다 나은 세상에 기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내적인 면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진정 정직하고 진실한 존재가 되며 자기 기만·악의·이기적인 성향이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는 우리는 모두 본래부터 덕이 넘치는 고결한 존재임을 이해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계율의 정신이다.
우리는 생각 뿐만 아니라 언어와 행위를 통해서 저마다 자신의 세계와 업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계율이라는 자기 삶의 기준이 있게 되면 비록 거치른 세계와 업의 환경에서라도 자신의 본연의 도덕성과 진정한 가치를 지키고 실현해 갈 수 있게 되어 평화와 평정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중경찬잡비유경]에 다음과 같은 예화를 전하고 있다.
제타숲 밖 7리쯤에 술을 잘 마시는 어떤 노인이 있었다. 아난다는 그에게 가서 말했다.
“지금 부처님이 여기에 계십니다. 가서 뵈옵는 것이 좋겠습니다.”그러나 노인은 “나도 그 소리를 듣고 가서 뵈옵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다섯 가지 계율을 주시면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십니다. 내가 술을 못 마시게 되는 것은 어린애가 젖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곧 죽고 말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하고 또 가서 술을 마셨다.
그는 술에 취하여 저문 날에 돌아오다가 다리가 나무에 걸려 땅에 쓰러졌다 마치 큰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아서 온 몸이 모두 아파왔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이 아픔이 과연 유쾌한 것인가. 그러나 아난다가 항상 ‘부처님께 가라’라고 말해 왔으나 그 말을 따르려 하지 않았더니, 지금 이 고통은 말할 수 없구나”
하고 집안에 이르고는 부처님께 나아갔다.
때에 아난다는 그 노인이 온 것을 보고 기뻐하여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타숲 밖에 사는 노인이 와서 문 밖에 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 노인은 혼자 올 수 없다. 오백 마리 코끼리와 함께 온 것이다.”아난다는 말하였다.
“오백 마리 코끼리가 없이 혼자 왔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오백 마리 코끼리는 그의 몸 속에 있느니라.”
이에 아난다는 그 노인을 불렀다. 그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사뢰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부처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나이다. 그러나 미련한 소치로 일찍 와서 뵈옵지 못하였나이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내 죄를 없애주소서.”부처님은 그에게 물으셨다.
“오백 대 수레의 섶나무를 땅에 쌓고 모두 태워버리려고 하는데 몇 수레의 불이라야 다 태울 수 있는가.”그는 사뢰었다.
“많은 불이 필요없나이다. 콩알만한 불로 태우면 잠깐 사이에 모두 없어질 것입니다.”부처님은 또 물으셨다.
“그대는 그 옷을 얼마 동안이나 입었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이 옷을 입은 지는 일년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또 물으셨다.
“그 옷의 때를 빨려면 몇 해나 걸리겠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순잿물 한 말로 빨면 잠깐 동안에 깨끗해질 것입니다.”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대의 쌓은 죄는 오백 대 수레의 섶나무와 같고 또 일년 입은 옷의 때와 같다. 노인은 여래를 쫓아 다섯 가지 계율을 받들어 가져라.”
이 예화는 참회를 하면 어떤 공능이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난 날 진리를 알지 못한 채 미망에 휩싸여 지은 자신의 죄업 때문에 자포자기하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부처님의 사랑과 지혜가 담뿍 담겨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든 계율에 준거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며 절제하지 않으면 우리의 업은 끝간데 없이 혼란스러워져 오백 대 수레의 섶나무만이 아니라 태산같은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계율을 지키는 맑은 삶은 한 순간에 태산같은 악업의 섶을 태워버리고 천 년 묵은 업보의 때를 맑끔히 씻어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법구경]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전해지고 있다.
“산 목숨을 죽이고 거짓을 말하고 주지 않은 것을 취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곡식이나 과일로 빚은 술에 빠져 버린 사람은 바로 이 세상에서 그 자신의 뿌리를 파고 있는 것과 같다. 사람들아, 이와 같이 알아 두라 자제할 줄 모름은 악덕惡德이라고. 탐욕과 부정으로 인해 오랜 괴로움을 받지 말라.”(246-2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