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화엄의 가르침을 제시해야 하는 임무가 불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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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0년 05월 219호
지난 4월 10일 우리 정부의 박재규 통일부 장관과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발표한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세계가 놀라는 소식이었다. 각국의 통신사와 언론들은 이 소식을 긴급 뉴스로 타전하고 톱뉴스로 장식하며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의 배경과 이후를 전망했다. 첨예한 군사적 대치 상태를 50여 년 동안 유지해온 분쟁지역에서 정상들이 만나 화해를 모색한다는 것은 놀랍고 반가운 소식임에 분명하다.
두 박 장관의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대중 대통령이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이뤄지는 평양 방문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역사적인 상봉이 있게 되며,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 3월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남북 당국자간 첫 접촉을 가 이래 베이징에서 수차례 비공개 협의를 가진 결과 4월 8일 남북의 특사 자격으로 우리쪽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쪽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송호경 부위원장 사이에 최종적인 합의서 조인이 이뤄졌다. 쌍방은 가까운 4월중에 절차문제 협의를 위한 준비접촉을 하기로 했다. 남북 분단 이후 오는 6월 최초로 개최될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간 협력 및 민족의 장래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결의 냉전질서를 종식시키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가는 출발점이 됨으로써 분단사에 획을 그을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주의적 사안과 경제협력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협력할 문제 등을 허심탄회하게, 폭넓게 협의할 것이다. 남북 직통전화 접촉을 통해 공개적으로 이뤄질 준비접촉에서 의제와 절차를 논의하기로 했다.
같은 시각 북한의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중앙텔레비전 등 관영매체에서도 같은 내용을 ‘특별 중대방송’을 통해 발표했다. 북한의 언론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또 중대방송을 하기 전 몇 차례 예고방송을 해가며 발표한 것도 이례적인 것이었다. 북한에서도 그만큼 큰 관심을 나타냈다. 당시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북한주민들로부터 들었으며, 그들은 이 회담을 통해 남북의 화해와 경제협력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우리 정부는 18일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22일 평양에서 만나자고 제안했으며, 북한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출발부터 순조로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인 94년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회담이 무산된 적이 있었다. 당시 김일성은 회담을 앞두고 남북 직통육로의 개설을 지시하기도 해 남북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음이 알려지고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두고 북한이 왜 응했느냐는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 이 의문의 해소는 정상회담의 성과와 이후의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으로 가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어서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한 신문은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미국의 셀리그 해리슨(우드로 윌슨센터 수석연구원)의 말을 통해 의문을 풀고 있다. 셀리그 해리슨은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서 별로 얻을 게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며, 정상회담이 남북의 경제협력, 특히 북한이 절박하게 필요한 에너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북한은 지금까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대남·대일 교섭의 길을 터줄 것으로 계산하고 대미 교섭을 우선시 해왔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일본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대한 남북대화의 중심적 위치’를 줄곧 강조해왔다. 이렇게 되니 당연히 북한 경제의 재건은 남한과의 협력에 달려 있을 수 밖에 없음을 북한 당국이 알았고, 남한과의 대화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매우 절박한 수준에 있다는 것은 국제기구의 통계로 확인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 국제농업개발기금 등의 집계에 따르면, 북한의 비료 생산량은 지난 해 성분량 기준 6만4천톤으로 실제소요량의 10%만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며, 에너지난 등으로 인해 공장 가동률은 5%를 밑돌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국제개발협회(IDA),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북한을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해서 빈곤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북한경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90년대 들어 북한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어 1인당 국민소득이 남한의 5분의 1 수준(91년)에서 12분의 1 수준(98년)으로 떨어졌다가, 지난 해부터 농업과 건설 부문을 중심으로 점차 활성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또 그동안 줄곧 하락해왔던 북한경제가 ‘김정일식 개혁’과 함께 지난 해 10년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98년 9월 김정일 체제가 공식 출범한 지 1년이 지나면서 북한 경제가 오랜 침체를 벗고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샐리그 해리슨과 국제기구, 한국은행의 분석을 바탕으로 보면, 북한 경제는 최악의 상황이며, 북한의 고위층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대외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으며, 특히 김정일 체제 이후 나아지는 경제 상황을 가속화하기 위해 남한과의 대화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에 바탕한다면, 남북정상회담의 전망은 밝다고 보인다. 북한의 경제가 최소한 주민들이 먹고 살 정도로 활력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이에 따라 남한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 정부도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정상회담이 바로 통일로 이어진다는 판단은 현실보다는 희망이 반영된 바람이다.
50년 동안의 적대감과 이질화된 생활을 좁히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또 남북간의 차이를 좁히기 위한 돈도 필요하다. 따라서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시기를 조절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통일의 시기를 앞당기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종교와 문화, 특히 불교와 전통문화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오래도록 남북의 주민이 함께 익숙하게 접해왔던 불교와 선조들의 가르침과 생활을 담고 있는 전통문화의 역할과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전통문화를 아우르고 있는 불교는, 그래서 통일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의 언급은 불교계의 역할과 남북불교교류와 관련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10일 남북정상회담 합의 발표 직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나온 얘기이다.
“아직까지 문화재에 관한 남북교류가 없었던 데다 북한 문화유적의 보존 상태가 매우 부실한 만큼 이 분야에 대한 협력에 무게를 싣겠다. 지금까지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과 의약품 지원 등 활발한 교류가 이뤄져온 종교분야에서도 많은 진전이 있을 것이다.” 다음의 두 스님의 지적은 통일 과정과 통일 시대를 잘 살기 위해 불교에 던지는 화두에 다름 아니다.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공동회장 법타 스님은 “불교야말로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경험한 가장 뿌리깊은 종교이며, 민족 동질성을 확인시켜주는 기반이다. 그동안 통일운동에 기여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고 불교계의 의지와 원력을 모아야 한다.” 종단협의회 사무국장 법현 스님은 “통일에 대한 희망과 함께 걱정도 큰 것이 국민들의 심정일 것이다.
남북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서로 제 역할을 다할 때 상생을 이룰 수 있다는 화엄의 가르침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하는 임무가 불교에 있다.”
통일로 가는 길, 하나가 되는 길에 불교인의 포용성과 자비심 그리고 불교적 이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