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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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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광우 2000년 05월 219호
지난해 구월 삼일이, 출가한지 꼭 예순한 해가 된 날이다.
그 시절이 세속의 환갑에 해당하는 햇수이니 참으로 적지 않은 세월을 출가사문으로 살아온 나날이었다.
그간 포교와 후학 교육에 뜻을 두고 노력한다고 했으나 돌이켜보면 금쪽같은 시간을 참으로 헛되게 보낸 세월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초발심 때의 그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었던가, 하루하루가 환희로움으로 충만된 시간들이었는가, 또한 부처님법을 온전히 내 삶에 용해시켰던 아름다운 세월이었던가, 그 물음에 마주하고 있노라면 요즘들어 부쩍 참괴심이 들곤 한다. 그러나 늘 새로운 ‘오늘’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을 무언가 보람있게 보내리라 다짐하지만 만족하게 되지 않는다. 그럴 때면 신심으로 불퇴전하리라 다짐하던, 저 초발심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일제 말엽,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선방. 이제 막 초등학교를 마친 소녀의 눈에 비친 선방의 풍경은 의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제히 벽을 향해 가부좌를 틀고 그림처럼 앉아 있던 스님들, 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그곳 관음선원 조실스님인 혜봉 스님께 물었다.
“저 스님들은 왜 저렇게 벽을 보고 돌아앉아 있습니까”
대답대신 조실스님께서 따뜻한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광우야”
“예”
“대답하는 그 놈이 무엇이냐”
전혀 예기치 못했던 조실스님의 질문, ‘글쎄 무엇일까’ 말문이 막혀 있는 내게 조실스님께서 물으셨다.
“모르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이윽고 조실스님께선 나즈막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저 스님들은 바로 ‘대답하는 이 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단다.”
그날로 상급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절에서 공부하려던 생각을 접었다. 집에서 매일 예불을 드렸고, 금강경을 사경하는 시간을 가졌다고는 하나 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어렴풋했는데도, 조실스님의 그 말씀에 저 스님들처럼 앉아서 그 의문을 풀어보리라 마음을 내었던 걸 보면 불연이 깊었던 모양이다. 해서 선방 하판에 자리 하나를 마련해 앉았다.
‘의심을 가지고 궁구하면 대답하는 그 놈을 찾을 수 있다’는 조실스님의 말씀에 왜 그 놈을 찾아야 하는지, 그것이 불법을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지, 또한 그 의문이 우리의 삶에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으나 어쩐지 어렵지 않게 그 의문에 몰입되는 것이었다. 새벽예불 뒤 푸른 새벽 여명의 새벽기운을 느끼며 앉아 있는 것이 낯설지 않았고, 한낮 창호지로 넘어와 비치는 은은한 햇살 아래서 가지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그 물음을 대하고 있노라면 그것이 하나의 놀이처럼 즐거운 일이었다.
‘대답하는 이 놈이 무엇인가,
무엇일까.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해도 지루한 줄 모르게 진실하게 의심이 되었고 다른 일이라고는 생각나지 않을 만큼 그 의문에 깊숙히 들어가 있었다. 그런 내가 기특했던지 입승스님께서 수수께끼같은 것을 물으셨는데, 그 물음에 내 나름대로 대답을 하면 스님께선 미소지으며 ‘참선할 근기로구나’ 하시곤 했다.
사미승이 외우는 ‘천수경’ 소리가 듣기 좋아 따라서 외우다 보니 이틀에 외워질만큼 무엇이든 마음가는 일에 몰입되는 맑고 순수한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조실스님께서 ‘아미타경’을 내놓으시며 그 뜻을 새겨주셨는데, 그때 ‘아미타경’의 세계를 만나면서 느꼈던 그 벅찬 감동을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세상에 이런 세계가 다 있구나’ 그 극락의 장엄한 세계가 가슴 하나가득 차오르며 얼마나 좋던지 차오르는 환희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수행자가 되어 공부 열심히 하면 이런 세계에 가게 된다’는 말씀에 귀가 번쩍 뜨였던 그날 비로소 출가할 마음을 내었다. 그간 조실스님께서는 내게 공부를 가르치며 각별한 정성을 쏟으셨으나 출가자가 되라는 말씀은 없었다.후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말없이 출가할 인연을 만들어 주신 게 아닌가 싶다.
내 속세의 아버님 이전에 그분은 내 출가수행길의 평생 길잡이가 되어 주신 선지식이요 스승이었다.
스님은 내게 차근차근 수행자가 되는 공부를 시키셨는데, 종성을 배울 때 게송 하나가 마음에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으니 지금도 그 떨림이 생생하다.

“圓覺山中生一樹
開花天地未分前
非靑非白亦非黑
不在春風不在天
원각산 중에 난 한 그루의 나무가
천지가 생기기 전에 꽃은 이미 피었네
푸르지도 않고 희지도 않고 또한
검지도 않은 것이
봄바람에 있지도 않고 하늘에도
있지 않네.”

스님께서 가르쳐주셨던 쇳송 하나 하나가 이렇듯 ‘선禪’의 세계였으니 그렇게 ‘선禪’이라는 불법이 가슴 속에 싹을 틔웠던 시간들이었다. 그 시절 배운 ‘초발심자경문’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걸 보면 공부에 온전히 몰입해 있던 아름다운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던 어느날, 관음선원에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들르셨는데 그때 비로소 비구니스님을 처음보며 여자도 스님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조실스님께 출가의 뜻을 여쭈었더니, 스님께서 그러셨다.
“네가 그런 복이 있을까”
내나이 열다섯 되던 해 구월 사흩날 아침 삭발하고 계를 받으며 수행자 되는 복을 누렸다. 직지사 성문 스님께서 내 은사가 되어 주셨다. 조실스님 방 앞에서 삭발하면 큰 중이 된다 하여 남장사 관음선원 조실스님 방 앞에서 삭발을 했다. 긴 머리칼을 세 번에 걸쳐 자르고 삭발 스님께서 삭도를 대려 하는데 조실스님의 ‘멈추라’는 말씀이 계셨다.
‘네가 지금 이 마음을 성불할 때까지 불퇴전할 수 있겠느냐.’ 고 다짐하셨다.
‘절대 퇴전하지 않겠다’는 내 답이 있고 나서 삭발이 끝났다.
삭발하고 거울을 보니 내 모습이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글쎄, 그때의 심정을 ‘참으로 기뻤다’는 표현으론 턱없이 부족할 것 같다.

보통 행자시절에 견주어보면 사실 내 행자시절은 계를 받고 은사스님을 따라 직지사와 동화사에서 보낸 몇 해에 해당할 것이다. 공양주며 채공, 또 나무도 하고 청솔가지로 불을 지펴 밥을 짓던 일, 겨울에 뼈속까지 시려오는 계곡물에 걸레를 빨아 마루를 닦던 일, 예참을 익히고 배울 때 서너시간 자며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을 따라 탁자 밑에 앉아 참선 하던 시간들, 비구니 강원이 없었던 시절 큰절을 오르내리며 사미니 과정을 배우고, 하루 두 끼 먹고도 배고픔과 고된 줄 모르고 사문이 된 긍지로 빛나던 그 시절일 것이다. 그러나 내겐 계를 받기 전 선의 세계에 눈을 뜨며 초발심을 내었던 그 시간들이 진정한 행자시절이 아니었나 싶어 그 시절을 돌이켜보았다.
요즘 후학들이나 신도들에게 하는 법문 끝에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너 자신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내게는 누군가에게 하는 법문이 곧 나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이다. 법문 끝에 나 또한 온전히 실천하지 못함을 얘기하지 않으면 미안한 마음에 이렇게 고백한다. ‘부처님 말씀을 대신 전하기는 해도 저 역시 다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우리 모두 정진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봄이 오니 뜰앞의 나무들이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있다.
저렇듯 커다란 우주의 순환, 인연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늘 새롭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충만된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