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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의 봄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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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암 이야기 - 법장 2000년 05월 219호
소쩍새가 운다. 봄이 왔다. 때가 되어 봄이 오는 것도 당연하긴한데, 마냥 춥다고 따습지도 않은 방에서 웅크리고만 있었는데, 봄은 어느새 성큼 다가서 있었다. 조금은 당혹스러워지고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준비도 없이 농사철이 되어버린 까닭이다. 올해는 농사를 본때 있게 한 번 지어보려는데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으니 맨날 마음만이면 어쩌나, 옛부터 일년농사는 정초에 설계한다는데 방이 추우니 아직도 봄이 먼 것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래, 마루 그득한 봄볕은 참 넉넉하다. 해바라기한다고 앉아보니 겨울이 언제였나싶게 따뜻하다. 마음이 한없이 바쁜데, 건너 산을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행복한 미소까지 떠올라진다. 왜냐고, 꽃피는 산골을 아시는가, 여기는 정말 꽃피는 산골이란다. 어디라 할 것 없이 봄이 오는 산골은 싱그럽고도 활기차다. 그래서 온갖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해 주지 않던가. 이 골짝에 앞다투어 피어내는 꽃들의 화사함은 때론 말을 잊게 한다. 여지껏 산수유꽃인 줄만 알았던 노란꽃이 생강나무라던데.
맨먼저 화사하게 피우더니 수명이 다해가고 등성이 등성이마다 눈길 따라가보면 진달래가 한창이다. 저 아래로는 삶아 널은 옥양목만큼 조팝꽃도 눈부시게 더뎅이져 있다. 또 봐라, 그 옆 능선을 눈여겨 보면 아직 이르긴하지만 산벚꽃 한 나무가 온통 망울을 맺어 놓았다.
볕 잘드는 아래 능선부터 차츰 꽃망울 터뜨리며 올라올 참이다 그리되면 이 골짝은 그야말로 꽃피는 산골로 명성을 떨친다. 그 때 사방에 산을 거느린 이 자그만 집은 마치 꽃바다에 떠있는 자태로 절경을 이뤄놓고. 꽃이 봄에만 피는건 절대 아니더라. 봄의 꽃잔치가 다 끝나고 더위가 시작될 무렵, 이골짝 가득 군락을 이룬 자귀수들은 화려하고도 점잖게 분홍빛으로 꽃을 피워내고 가을이 끝날쯤까지 감국 등이 지천으로 주변을 장식한다. 그래도 꽃은 봄이라야 보는 것 같다.
이렇듯 산골짝의 생기 발랄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은 복에 겨운 일이다. 그러니 혼자서 괜히 미소도 떠올려보고 그러지.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 자꾸 생기려 든다. 먼지와 냄새로 뒤덮힌 도시에서 치열하게 삶을 잇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좋은데 혼자만 즐기며 산다는 게 죄스러운 일이 아니려나, 각자가 살아야될 방법 때문에 그렇게 살고는 있어도 누군들 이런 골짝이 그립지 않으리.
얼마전 여러 일들을 뭉뚱거려 미루고 서울나들이를 하였다. 언제든 쉽지는 않았지만 이번은 너무 힘들었다. 이골짝을 처음 벗어난 나들이라서 그랬는지, 누구를 기다리며 찻집에 그냥 앉아있는데 멀미가 다 났다.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라 다 작파하고 내려오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안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지만 말이다. 봄날이란게 속없이 유유자적 산천만 바라보고 있을 때는 결코 아니다. 일하는 틈틈히 곁눈으로 보며 속으로 좋아해야지 씨라도 뿌릴라치면 서둘지 않아서는 잠깐에 시기를 놓치기 딱 알맞다. 봄을 늦게 맞았기에 좀더 부지런을 떨어야했다. 아직 본격적인 파종기는 아니어도 아랫마을보단 무엇이든 이르게 심어야한다. 그런데 날이 너무 가문다. 큰 일이다. 그래도 독촉하여 밭부터 갈기로 했다. 밭갈러온 트랙터에 이웃 할머니가 퇴비랑 싣고 오셔 손수 뿌려주신다. 저번 기도 때 아들 축원을 잘해주었다고 부처님 덕을 톡톡히 본다. 요새 이양반 신이 났다. 모종도 나중에 골고루 나눠 준단다. 날이 가물어도 일단 채소부터 씨를 넣기로 하였다. 부지런한 ㅁ거사가 하루 동안 많이 해냈다. 진작부터 호박구덩이엔 인분까지 부어놓긴했지만, 올해는 각오를 다져보는데 글쎄, 그건 그렇고 산벚꽃이 만발했을 때 쑥 한 소쿠리 캐서 떡이나 해놓고, 먼저 퇴비 넣어준 할머니랑, 읍내서 탁발승인줄 알았다며 손짓으로 불러놓고 요모저모 뜯어보다 차비나 하라며 2000원이나 손에 쥐어주던 그 순박할 할머니랑 오시라해서 걸판지게 떡잔치나 한 번 해볼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