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진감선사 부도탑을 찾던 길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성보여화 - 정영호
2000년 05월 219호
강의 시간에 신라하대下代의 문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4산비四山碑가 유명하다는 내용을 감명 깊이 들어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기에 기회만 있으면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가 있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에, 만수산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朗慧和尙百月光塔碑가 있는 충청남도 보령군 미사면 성주사터에, 초월산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가 있는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면의 숭복사터에, 희양산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가 있는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 봉암사에 가려고 하였었다. 이 가운데서 최치원이 글을 짓고 또한 비문을 직접 쓴 것으로 유명한 진감선사대공탑비가 특히 견학하고 싶었었는데 그것은 중국 당나라에까지 그 이름이 떨쳤던 대학자 최치원의 글씨까지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들 4기의 석비문찬술과 건립연대에 있어서도 진감선사비문은 신라 정강왕의 명을 받아 정강왕 원년(886)에 찬술되어 다음해인 887년에 석비가 건립되었으므로 4산비 가운데서 가장 먼저 세워졌으니 이 석비부터 찾아보려고 쌍계사를 찾게 된 것이다. 4산비의 건립순서는 진감선사비 다음에 성주사 낭혜화상탑비로 진성여왕 3년(889)에 찬술되어 석비는 다음해인 890년에 건립되었다. 대숭복사비문은 889년에 찬술이 끝났으며 석비는 진성여왕 10년(896)에 건립되었으며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는 진성여왕 7년(893)에 비문이 완성되었고 경명왕 8년(924)에 세워졌다.
쌍계사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위치하는 바 이곳은 지리산의 산맥이 남쪽으로 흘러내린 한갈래의 남쪽 기슭이어서 「지리산 쌍계사」라 일컫고 있다. 쌍계사에는 진감선사탑비를 비롯하여 대웅전, 석조유물 등 많은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고 가람 주변의 풍치가 계절따라 가경을 이루어서 학자들의 답사와 많은 탐승객들의 방문으로 사계절 인적이 끊일 사이 없다.
필자가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학교 졸업 후 군복무시였는데 당시 대학에 다니고 있던 후배 김광수金光洙(현재 서울대학교 교수)군과 함께였다. 김교수는 내가 졸업한 후에도 학과연구실에 자주 드나들면서 눈여겨보아 이 방면 공부를 권했을 때 선뜻 선배님을 따르겠다고 하였었다.
쌍계사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우선 야간 열차 편으로 전라선의 「구례구」역에서 내려 새벽 해장국을 먹었는데 안개가 걷히면서 펼쳐진 섬진강의 정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친절한 오막살이 해장국집 주인 아주머니께 쌍계사 가는 길을 물어 모았으나 시원한 대답은 없었고 구례 시내에 가서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시내까지는 20리 길이라는데 한 시간반쯤 걸어 교육청을 찾았다. 서울을 떠나올 때 쌍계사 지역의 답사를 실시하겠다고 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니… 하시며 명함에 몇 자 글을 써주셨다. 교육청 담당자에게 명함을 보였더니 「황수영黃壽永」씨가 뭐하는 사람이요? 국회의원이요? 하고 묻길래 우리의 지도교수님이십니다. 우리 나라 역사, 문화재 연구의 제1인자인데 모르십니까? 하였더니 그 명함을 과장급되는 상사에게 가지고 갔다. 잠시 후에 돌아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친절하게 지도까지 펼치고 안내해 주는데 그러한 지도는 나도 가지고 있었으나 내놓지 않았다. 우리가 필요했던 것은 쌍계사까지 가는 차편 혹은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때마침 미제 웨곤자동차 한 대가 오고 있어 손을 들었더니 자동차가 섰다. 운전석에는 파이프담배를 문, 코가 유난히도 큰 신사가 있어 순간적으로 외국인인 줄 알고 ‘헬로’ 하였더니 ‘왜 그러시요, 나 한국사람이요’ 하는 것이었다. 고맙고도 친절한 그분의 뒷자리에 앉아 편히 그리고 빨리 화개장터까지 갈 수 있었으며 우리는 그곳에서 쌍계사까지 30리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쌍계사에서는 윤尹주지스님께 선생님의 명함을 보였더니 깜짝 놀라면서 이분은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라고 하며 반갑게 맞아 꿀물도 타주고 공양도 맛있게 해주어 하루를 편하게 쉴 수 있었다. 현 대웅전 앞마당에 진감선사탑비가 서 있는데 원위치이며 큼직한 거북돌 위에 비좌를 마련하고 비신을 세웠으며 개석을 올려놓은 신라 이래의 전형적인 석비 양식이다.
애써 쌍계사를 찾았던 것은 이 석비가 최치원의 글이며 특히 글씨까지 썼기에 대문장가의 글씨를 살펴보려는 의도에서 였다. 석비 앞에 서서 대학자의 글을 또박또박 읽으며 글씨 한자한자를 살피는데 세련되고도 힘찬 선비의 글씨에 탄복만을 연발하였었다. 이때 주지스님도 자리를 함께 하였는데 이 석비가 「진감선사대공탑비」이면 진감선사의 「탑」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주지스님은 선뜻 저 언덕 위에 있는데 모두 관심이 없어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즉시 주지스님과 함께 부도탑이 있다는 산쪽으로 올라갔다.
이 부도는 대웅전에서 약100m 북서쪽으로 바라보이는 산봉우리 위에 위치하였으나 주위에 숲이 우거지고 나무가 울창하여 한눈에 찾기가 어려웠다. 봉우리 능선을 사방 7m 정도의 넓이로 평평히 닦아 석축을 쌓고 그 중앙에 부도를 건립하였는데 현재의 위치가 원위치이다. 부도는 기단, 탑신, 상륜의 3부분으로 이루어진 전체높이 2.05m의 8각탑이다. 하대석은 8각기대 위에 8엽 복판의 복련을 돌리고 8각기대의 측면에는 아무런 조각도 없다. 중대석은 8면에 원형에 가까운 안상을 유려하게 새겨놓았다. 상대석은 단엽의 앙련8판을 돌리고 그 위에 높직한 괴임대석을 놓았는데 측면에는 굵은 구름문양을 조각하였다. 괴임대 위에 8각 탑신석을 안치하였는데 각 면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다. 8각옥개석에는 귀퉁이 마다 귀꽃문이 조각 되었으며 낙수면에 기와골은 없다. 정상에는 8각보개를 올렸는데 여기에도 귀퉁이마다 귀꽃이 장식되었다. 보개 위에 보주를 올렸는데 비교적 높은 편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보존이 양호하며 각 부분의 조각이 간소하고 연판의 유려한 작풍과 아담한 전체균형 및 안상의 아름다운 수법 등으로 보아 신라하대의 건조로 추측되었다.
이 부도는 이후 「쌍계사부도」라는 명칭으로 국보 제567호로 지정되었다가 1963년도에 문화재보호법 개정에 따라 현재 보물 제380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진감선사탑비와 이 부도는 건조연대와 위치상 모든 문제에서 직접 연관되어 진감선사부도가 분명한 바 앞으로 지정명칭 문제도 심사숙고하여 바른 이름으로 호칭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