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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출가상/- 성을 넘어서 출가하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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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최대종 2000년 05월 219호
잠 못 드는 이에게 밤은 길어라.
피곤한 사람에게 길은 멀어라.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아아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법구경 우암품>

성문을 나서는 싯달타의 맘 또한 이러 했으리라. 생사의 끝을 알 수 없으니 그 길은 멀 것이며, 또한 알 수 없는 두려움 또한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여러 언설을 빌리지 않고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참 진리의 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고민을 했으리라.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성문을 나서는 태자는 과연 무엇을 찾으려 부와 명예 마저 버렸을까?
성문을 나서는 싯달타 태자의 맘은 어떠했을까?
알 수 없는 생사 발길의 끝은 어디일까?
여러 고민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싯달타의 맘에는 혼돈이 없었을까?

성을 나선 태자는 날이 새기까지 사백팔십 리를 나아가서 아노마국에 이르렀다. 태자는 말에서 내려 보배 옷과 영락·보배관을 벗어서 모두 찬타카에게 주며 말하였다. ‘너는 말을 끌고 돌아가서 대왕과 신하에게 나의 출가한 사실을 알리도록 하라’고 하자. 찬타카는 말하였다.
‘저는 떠나지 않고 곁에서 도와드릴 것입니다.’ 하며 눈물을 흘렸다.
떠나지 않으므로 태자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몸이 강하여도 병이 들면 꺾이고
기운이 왕성해도 늙음이 오면
쇠하며
죽어지면 살아서 이별하거늘
어찌하여 세간을 즐기겠느냐

찬타카를 떠나 보낸 태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천천히 수행자의 길을 걷는다.

붇다의 출가행이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 그냥 단순히 진리를 찾기 위한 출가행을 보이려 경에서는 이렇게 서술한 것일까? 이 내용을 접하며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본다.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며 지고의 가치를 나에게서, 이 땅에서 찾고 실현하려는 대승행자. 이런 진정한 인간다운 마음으로 우리네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사윤회와 생사해탈의 분별의 끝은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나의 콧구멍으로 숨이 오고 가는 즉금이 된다. 숨을 쉬지 않는 그곳이 바로 삶의 끝, 죽음이라고.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한다. 나는 삶을 얼마나 열심히 받아들이며 살고 있을까!
지금의 내 삶이 바로 내일이라도 끝이라면 아마 난 내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민을 하지 않을까. 아니 죽기 싫어 발버둥이라도 치지 않을까. 수의囚衣에는 주머니가 없고, 그 누구도 저승길까지 동행할 자 없다는데 이런 자세의 삶이라면 과연 지금의 부와 명예가 우리에게 중요할까.
야밤에 성을 넘어 출가하신 싯달타 태자가 중생들에게 보여주신 수행의 길은 진리를 위한 행이라는 의미부여보다는 온 중생의 삶을 받아 안는 자세가 아닐까.
부처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유리된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진리가 아니라 만 생명을 하나같이 자신의 화신으로 온전히 받아 안으려는 삼계도사, 사생자부로서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하나가 되는 시時·공空에는 만상萬相이 일상一相으로 수렴하고, 일상은 만상으로 확장된다.

바른 도를 즐기는 사람은
이익을 위해 다투지 않나니
이익이 있거나 이익이 없거나
욕심이 없어 미혹하지 않는다.
<법구경 주법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