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海印」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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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관암
2000년 05월 219호
서울 북아현동 골목 길 계단 위 허름한 감나무 집 “서울 해인 편집실”을 마감하면서 월간 해인의 이력을 정리하고 그리고 해인지가 걸어 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을 확인하기 위해 82년 3월(창간 제1호)부터 현재 218호까지 내용을 점검해본 결과 그 동안 다양하고 많은 편집인과 필진들의 면면에도 불구하고 해인지 기저基底에 흐르는 사상은 화엄의 바다요, 추구해온 정신은 한마디로 말해서 “일깨움” 이었다. 즉 중생과 만물을 일깨우는 새벽정신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해인 칼럼에서 출발한 “죽비의 소리”와 “해인 리포트”가 그러했고 큰스님의 상당법문을 통한 선풍과 호계삼소에 내재된 다양한 부처의 길과 그리고 자등명 법등명을 내세우되 아집과 법집에서 벗어나 자신을 바로 보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주옥같은 글들은 모두 새벽정신으로 쓰여졌다.
해인지가 걸어 왔고 그리고 앞으로 걸어 가야할 새벽정신은 어떠한 길인가?
먼저 해인지의 새벽정신은 깨침의 정신이었다.
불교에서 모든 수행의 길과 포교의 길 즉 삶의 길은 우리 모두 더불어 부처가 되는 깨닫음의 길이며 궁극적으로 이 길로 이끌어야 한다. 허나 절 집이나 세간이나 부처 되는 길은 안중에도 없고 돈 벌고 명예와 직책을 따는 길에 부처님 운운하고 절 집을 드나든다. 요즈음 MBC 드라마 “허준”의 인기로 인해서 이 드라마의 사회적 계몽과 감명은 대단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드라마 속의 허준은 인간이 가야할 마땅한 길을 가고 있고 그리고 그의 업(의사)이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이 시대 우리들에게 이렇게 감명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한 길이지만 살아보면 그 길은 쉬운 일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그 길을 못 가고 있다는 자책에서 나오는 감명일게다. 모든 분야에서 드라마 허준과 같은 대승 행자로 일깨우는 것이 해인지가 추구하는 정신이다.
둘째로 해인지의 새벽정신은 앞서가는 정신이었다.
앞서간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인 표현으로 대변될 수 있다. 온갖 문명의 이기利器 속에서 인간이면 가야 할 지고의 가치는 어디서부터 가능한가? 해인은 최첨단의 사회에서 최첨단을 걷는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온갖 것을 다 털어 버리고 삿갓쓰고 산으로 향하는 수행자의 뒷모습을 그리고 있다. 해인은 공멸 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의 살생의 경쟁을 지양하고, 병주고 약주는 창과 방패의 놀이에 피 말리는 인간의 우치와 탐욕 그리고 번뇌에서 벗어나 참다운 가치로 해탈과 정토를 실현하는 길을 제시하는 선지식의 정신이 살아 있다.
마지막으로 해인지의 새벽정신은 계율정신이며, 초발심을 잃지 않는 정신이었다.
개인이든 대중이든 율이 살아있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며, 율을 선양하는 것은 대중이 더불어 가는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합의가 무너지면 세간이건 절집이건 인간의 집단이 아니다. 그리고 율을 세우고 서원 할 때가 바로 초발심 때가 아닌가. 나이가 들어서 읽어도 마음이 숙연해지고 가슴 뭉클하며 머리가 맑아오는 것이 초발심자경문이라는 말이 이구동성임도 이 때문이다. 월간 해인이 추구해온 이러한 새벽정신은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처소가 바뀔지라도 꾸준히 이어져야 할 해인지의 생명임을 자각해 본다. 이것은 또한 해인 독자와 모든 사람들이 가꾸어 나가고 실천해야 할 정신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