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치며
나타난 달이
흰 구름 따라 떠가는 것 아닐까.
새파란 냇가에
기파랑의 모습이 있어라
이로부터 냇가 조약돌에
낭郎의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따르렵니다.
아아, 잣가지 높아
서리 모르실 화랑이시여.
(찬기파랑가/ 신라 향가)
보살의 모습은 어디에고 있다. 보살은 모든 순간, 모든 곳에 나투신다. 보살은 아침 이슬처럼 사바세계로 내려앉기도 하며, 늘 푸른 잣나무 모습으로 중생 가운데 있기도 하다. 중생은 냇물에 씻기는 조약돌처럼, 혹은 하늘의 달을 좇는 흰 구름처럼 보살을 그리워하며, 보살을 닮기 원한다.
어찌하여 달이 흰 구름을 따라가게 되었을까. 차고 기우는 저 달은 무상無常한 것 같으나 원래는 의구하여 변함이 없거늘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무상한 구름을 의구한 달이 좇는다함은 보살이 중생을 따라 여러 방편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말이다.
중생은 어느 때라도 사바의 세상에서 보살을 만들어 봉안하고, 부처를 조성하는데 세간의 가장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찾아 조성하는 것으로 그 지극함을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고귀한 신분의 인물로 그 정신이 높으며 아름다움이 지극한 이를 찾아 보살의 모습으로 혹은 부처님의 모습으로 삼는 것이다.
신라의 아름다움은 화랑花郞의 정신과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옛 신라의 사람들은 화랑을 그들의 정신적인 의지처로 하고, 미래의 희망으로 여겼으므로 그들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 불렀던 것이다. 이것은 용화수 아래 미래의 부처님이신 미륵불이 중생을 위해 설법한다는 내용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이 금동보살상은 화랑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인 듯 소녀인지 혹은 소년인지 아직 앳된 모습을 버리지 못하였다. 미소년의 얼굴에 보이는 미소는 신라를 이끌어가고, 중생을 구원할 보살의 모습으로 화하였다. 미소 안에 간직한 기상氣相으로 신라와 불국토의 미래를 기원한 것이다.
수행의 길은 그 시작이 아름답다. 룸비니 동산 석가모니의 첫 일곱 발자국이 더없이 고귀한 것처럼 진리의 마음은 그 첫 마음을 내는 순간이 정각의 순간이다. 신라인들이 화랑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찾았듯, 미래의 불국토는 우리의 젊은 발자국에서 찾을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