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논의 본격화, 21세기 한국불교사의 가장 큰 이정표로 기록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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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0년 04월 218호
1월 8일 종정 혜암스님이 사면과 관련해 유시를 내렸다.
“지난 2년 동안 종단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혼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종헌·종법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면 문제도 종헌·종법에 의지해서 풀어가야 한다. 부처님 법이 있는 만큼 하루속히 대중들과 논의해서 종단 화합 방안을 마련해 주길 당부한다.”종정 스님의 유시가 있은 지 두 달이 채 안 된 3월 4일 총무원 집행부에서 사면 실시를 위한 종헌 개정안을 중앙종회에 제출함으로써 사면 논의가 본격화됐다. 현행의 종헌에 부칙을 신설하는 형식으로 마련된 종헌 개정안은 사면 대상자에 멸빈자를 포함하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 핵심이다. 또 범위를 1994년 종단 개혁, 1998년 종단 사태 관련자는 물론 1962년 통합종단 출범 이후로부터의 징계자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종헌 개정안은 지난 3월 14~18일 열린 146회 임시중앙종회에서 안건으로 상정했으며, 종헌·종법 제·개정특별위원회에서 심의해 다음 종회에서 다루기로 했다. 총무원장 정대스님이 부처님 오신 날 이전에 사면을 실시하기 위해 임시종회 소집을 종회의장단에게 요청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이 달 안에 임시종회가 열릴 가능성이 많다.
지난해 11월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취임한 정대스님은 줄곧 종단의 대화합을 종단 운영의 첫째 과제로 제시했다. 정대스님의 발언을 보면 종단화합을 위한 한 방법으로서 사면 실시가 선언용만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사면은 1단계 조치로서 반목과 갈등으로 분리된 종단을 봉합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11월 24일 총무원장 당선 뒤에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뜻을 비쳤다.
“과거의 역사에서 나라가 외침을 당하여 조정의 대신들이 주전론과 주화론으로 갈리고 서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돌아서서는 서로 나라를 위한 충정의 발로임을 인정하고 위로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종단에서도 과거의 잘못으로 무거운 징계를 받았더라도 출가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참회 자숙하는 사람을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징계자에 대한 사면을 통해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읽히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정대스님은 “이제 막 출가한 예비승려에서부터 원로 대덕스님에 이르기까지 위계질서가 철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 동안 종단 운영에서 소외되었던 원로 스님들의 뜻을 받들고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과 중진 스님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종단 운영의 폭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종단 운영의 궁극은 정대스님의 지적처럼 종도들의 폭넓은 참여에 있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의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서로 다르던 의견들도 종단 운영의 에너지로 작용한다. 위계의 확립과 폭넓은 의견이 표출될 때 정상적인 종단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단 운영의 틀이 만들어지려면 통과해야 할 사안이 사면이라는 것이 정대스님의 인식이다. 그래서 사면은 피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첫째 단계에 해당한다.
정대스님의 이 같은 인식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과거 징계자들을 중심으로 언제 다시 종단을 불안으로 몰고 갈지 모른다는 인식이다. 1994년과 1998년의 종단 사태 모두 징계자들의 참여로 가열됐다는 점이 이 같은 인식을 뒷받침한다. 물론 “징계자들을 풀어주면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하는 의견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조계종 50년의 현대사를 보면, 징계자 그룹들의 ‘한탕주의’가 언제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현실이 이와 같다면, 징계자들을 제어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그들을 기득권에서 더욱 철저히 차단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대참회 없이는 불교 집안에서 제대로 살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징계자들을 중앙종무 기관소임이나 교구 본·사 주지 소임만 살 수 없게 했을 뿐이지 그들을 절 밖으로 쫓아내지는 못했다. 징계자들도 엄연히 스님으로 살아왔고, 종단의 혼란기가 되면 그들의 움직임에 늘 예민하게 반응해 왔다.
또 하나의 방법은, 사면이다.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 아니라, 징계자들이 더 이상 징계를 빌미로 불만을 갖고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는 토대를 없애자는 의미에서의 사면이다. 사실 그 동안 종단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정적政敵’을 몰아내거나 묶어두는 식의 징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뒤로 하고 많은 징계자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1962년 통합종단 출범 이후 지금까지 제적·멸빈의 징계자는 250여 명에 이르며, 사망·환속했거나 다른 종단으로 승적을 옮긴 경우를 제외하면 제적·멸빈자 가운데 사면 대상자는 60에서 70명 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법부는 사면 대상자의 신상 등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호법부장 종지스님은 지난 18일 중앙종회 종책 질의 답변에서 “기존에는 사면·복권 심사를 집행부에서 실시하여 왔으나, 이번의 경우 엄정한 심사 기준을 정하여 호계원 호계위원과 중앙종회의원, 기타 등으로 가칭 ‘사면·복권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객관적인 심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사면을 통해 종단 안정의 기초를 다지겠다는 현 집행부의 뜻을 확인해 주었다.
사면과 관련, 이번 종회에서 결의한 통도사의 총림 재지정, 통도사 말사인 문수사 해남사 관룡사의 직영 사찰 지정 해제는 사면으로 가는 예비단계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영축총림 해제와 세 개 사찰의 직영 사찰 지정은 1998, 1999년 종단사태 때 정화개혁회의의 중심 사찰이었던 통도사를 총림에서 해제하고, 자금줄 역할을 했던 세 개 사찰을 직영 사찰로 지정한 것은 정화개혁회의를 압박하기 위해 취해진 조처였다. 6개월여 만에 압박을 푼 것이다.
정화개혁회의와 통도사를 분리해서 볼 만큼 사태가 진정되었다는 뜻도 있지만, 화합을 구현하겠다는 총무원의 의지가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 것이다.
1998, 1999년 종단사태의 당사자인 정화개혁회의의 반응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총무원의 한 부장 스님의 다음과 같은 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 집행부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뿐이다. 그들의 반응에 따라 속도와 내용을 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명분상으로 정화개혁회의보다 절대적인 우위에 서겠다는 것이다. 사면을 실시하면 응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정화개혁회의에서 화답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종회의 입장은 신중하다.
통도사 총림 재지정과 세 개 사찰의 직영 사찰 해제를 만장일치로 결의하며 벌어진 중앙종회의 토론 내용을 보면 “통도사에서 국민과 종도들에게 충분한 사과가 있어야 하며, 종무행정에 적극 협조한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통도사 ― 물론 통도사의 일부 스님을 가리킨다 ― 와 정화개혁회의를 보는 절대 다수 종도들의 뜻을 담은 말로 들어야 한다.
아직도 사면은 논의중이다. 현 집행부의 사면 실시 의지는 확연히 드러났지만, 중앙종회의 결의 여부는 짐작하기 어렵다. 4월 중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종회에서 종헌 개정안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관건으로 남아 있다. 다만, 종정 스님까지 사면을 실시하라고 당부한 상황이어서 어떤 형태이든 부처님 오신 날 이전에 결론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사면은 21세기 조계종 역사, 나아가 한국 불교 역사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