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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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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 정호승 2000년 04월 218호
이름없는 한 그루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의 소원은 자기만의 이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이름이 있는데 왜 자기만 이름이 없는지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유독 왜 나는 이름이 없는 것일까. 내가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일까.
그는 누가 자기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소원해도 그에게 이름을 붙여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군. 내가 붙이는 수밖에!’
그는 자기 스스로 ‘하늘나무’니 ‘별나무’니 하고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이름이란 다른 이들이 다정히 불러 줄 때만이 진정한 이름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들쥐 한 마리가 그에게 다가와 추위에 떠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난 잠들 곳이 없단다. 날 좀 재워 줄 수 있겠니?”
“그럼, 재워 주지”
그는 이제 막 돋은 부드러운 가지를 벌려 들쥐를 편안하게 재워 주었습니다.
“배가 고프다. 뭐, 먹을 거 좀 없을까?”
아침이 되자 들쥐가 슬슬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글쎄, 아무 것도 먹을 게 없는데, 어떡하지?”
그는 하는 수 없이 무척 아팠지만 자기 몸의 일부인 푸른 잎사귀를 조금 떼어 주었습니다.
들쥐는 무척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나무에게 먹을 것을 얻어먹어 보았지만 자신의 잎사귀를 떼어 주는 나무는 아직 한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고맙구나, 넌 이름이 뭐니?”
들쥐는 푸른 잎사귀를 다 먹고 나자 그의 이름이 궁금했습니다.
“난 이름이 없단다.”
“이름이 없다니? 이름없는 나무가 어디 있어?”
“정말이야. 난 이름이 없어. 이름을 갖는 게 내 소원이야.”나무는 나무들 중에 자기만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슬펐습니다.
“슬퍼하지 마. 내가 좋은 이름 하나 지어 줄게.”
들쥐는 나뭇가지를 툭툭 치면서 슬퍼하는 나무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들쥐는 매일같이 나무의 품에 안겨 잠을 잤습니다. 잠들 때마다 나무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무엇일까 하고 곰곰 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몇 날 며칠 그렇게 궁리를 해 보았으나 마땅히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왜 내 이름을 안 지어 주는 거지? 약속을 지키도록 해”나무가 재촉할 때마다 들쥐는 나무에게 꼭 알맞는 이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날 듯 생각날 듯하면서도 나무에게 꼭 알맞는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빨리 안 지어 주면 널 안 재워 줄 거야.”
나무는 기다리다 못해 가끔 그런 말을 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무는 들쥐를 품에 안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름 따위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들쥐가 찾아와 품속을 파고들며 새근새근 잠이 들면 좋았습니다.
들쥐도 나무의 품에 안기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나무의 품에 안겨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과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들쥐가 나무의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배고픈 고양이 한 마리가 들쥐를 향해 살금살금 발걸음을 죽이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나무는 온몸을 흔들어 들쥐를 깨웠습니다.
“위험해, 일어나! 고양이야!”
들쥐는 번쩍 눈을 떴습니다. 잽싸게 몸을 날려 나무 꼭대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었습니다. 고양이가 나무 위로 뛰어올라 들쥐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것은 참으로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나무는 들쥐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부르르 몸을 떨었습니다. 나무의 몸에 들쥐의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물에 들쥐의 피가 벌겋게 씻겨 내려갔습니다.
나무는 들쥐의 시체를 안고 밤새 울었습니다.
들쥐는 썩어 나무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자 나무의 몸에 새 움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습니다. 처음에는 열매가 진초록빛을 띠더니 차차 흑갈색의 빛을 띠다가 나중에는 새까만 빛을 띠었습니다. 그 모양이 마치 쥐똥 같았습니다.
한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나무 앞을 지나가다가 소리쳤습니다.
“엄마, 이것 좀 봐, 꼭 쥐똥 같애!”
“그래, 맞아. 어쩜 이렇게 쥐동하고 똑같이 생겼니, 쥐똥나무인가 봐.”그 때부터 나무는 쥐똥나무라고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원하던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하, 허구 많은 이름 중에 쥐똥이 뭐니, 쥐똥이!”
다른 나무들이 다들 우습다고 놀려대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들쥐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 이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