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가 그것을 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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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심우
2000년 04월 218호
봉암사! 생각만 해도 수좌들에게는 도심道心으로 설레는 도량이다. 계곡과 산의 기상이 수려하지만 한국 사찰 중에 유일하게 관람객이 없는─스님들의 노력에 의해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그야말로 청정 수행도량으로 수좌들의 고향 같은 곳이 봉암사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해 여름에 봉암사 선원에 사미 수좌가 많이 입방하였다. 이제 막 수계를 받고 신심이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정진력으로 초발심 때 견성해야 한다며 수행 환경이 좋은 봉암사를 많이 찾는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워서 정진하는데 고생이 심했다. 엉덩이에 물집이 생기고 몸에 땀띠가 나는 스님, 더위를 먹은 스님 등등. 그러나 봉암사는 더위를 식히는 천혜의 계곡이 있다. 한여름 점심공양이 끝나자마자 관음상 계곡으로 달려가기 바빴다. 봉암사 계곡은 적당한 깊이와 차디찬 물을 담은 웅덩이와 넓은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고 더구나 관광객이 오지 않으니 완전 알몸으로 수영과 일광욕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다이빙할 수 있는 높이의 계곡에서 가끔 수영 자랑하다 머리를 부딪혀 이마에 혹을 붙이고 다니는 스님들도 있었지만 정말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젊은 수좌들의 놀이터였다. 반결제가 지난 무더운 어느 날 오후 자유 정진 시간에 구참 스님들은 마음껏 물놀이도 하고 바위 위에서 다이빙도 하고, 완전히 알몸으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이 어린 사미 스님이 놀라 소리를 지르며 물 밖으로 뛰어나오는데 우리는 영문을 몰라 모두 그 스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조금 뒤에 모두 배꼽을 잡고 소리내어 웃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스님 배꼽 밑 남자들만의 물건에 무엇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새끼 자라였다. 사람만 보면 숨어버리는 자라가 하필이면 그 사미 스님의 그것을 물고 놓아 주지 않다니…. 한 스님이 그 물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자라를 얼른 떼어서 물 속에 다시 돌려보내고 그 어린 스님에게는 괜찮다고 안심시키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웃어댔다.
그 날 저녁 지대방에서는 구참 스님들의 수준 높은 한담閑談이 이어졌다. “자라가 그것을 문 까닭을 아냐? 이것이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보다 더 어려운 화두인가…. 그 자라는 말이야 처녀 자라야. 전생에 너의 애인이었는데 함께 하고픈 애욕을 못 이겨 한눈팔다 도 닦는 공부를 등한시해서 자라로 태어났는데, 그래도 선근善根을 심은 인연이 있어 자라탕으로 가기 일보 직전 발견되어 지난해에 내가 안전한 봉암사 계곡에 놓아준 놈인데 이제 애인의 거시기도 맛보았으니(?) 그 놈은 조만간 미련 없이 애욕의 짐을 내려 놓고 다시 환생해서 봉암사에 동자승으로 입방하게 될 거야” 하며 그럴듯하게 자라와 그 스님의 전생설을 늘어놓으면서 침묵이 흐르자 말미에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말에 지대방은 이내 웃음으로 가득했다. 다른 스님도 질세라 사미 수좌에게 하는 말이 “저런! 자라 입으로 딱지 떼이고, 포경 수술도 할 뻔했구먼?” 격렬하게 자기와 싸우고 화두에 정력을 쏟다 보면 자연 날카로워지는 수행 분위기가 구참들의 지대방 한담으로 녹아난다.
아무튼 그해 여름 한철 내내 그 계곡에 가면 그 사미승 이름과 처녀 자라를 불러 대며 우리는 한없이 웃었다. 아! 정말 동심과 무심으로 정진하며 살던 때가 그립고 그 때 모여 함께 도를 닦던 모든 스님이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