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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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암 이야기 - 법장
2000년 04월 218호
밤하늘 별들이 금방이라도 숲 속으로 내려와 앉을 것만 같다.왜 세상사 시름 많은 것을 밤하늘의 별만큼이라고 했을까. 아직 봄이라기엔 일러 하늘은 차가워도 별빛은 저리도 아름답고 저리도 맑게 반짝거리건만. 하긴 세상살이에 일이 많기는 하다. 오늘 한 걱정을 덜어 놓으면, 내일 더 큰 시름이 밀어닥친다. 살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데서 복병이 출현하기도 한다. 더구나 믿었던 곳에서 꼭 엉뚱하게 터져 어처구니 없게 만든다.
이번에도 그랬다. 날씨가 조금씩 풀리고 겨우내 얼었던 물이 터져 줘 이제 살만 하겠다고 한숨 돌리려는데 바로 다음날 발전기가 고장 나버렸다.
이럴 수가. 어쩌라고 자꾸 이럴까.
이 산골에 그나마 없으면 참 막막해진다. 하루 몇 시간 지극히 필요한 것만이라도 쓸 수 있었는데 모든 것이 중단된 상태다. 하나가 괜찮으면 하나가 속 썩이고 그렇게 사는갑다. 사는 것이 어디서건 당연히 그래야 할 테지만 끊임없이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산골 생활이 느긋할 것만 같아도 정작 그렇지가 않다.
이런 문명 시대에 워낙 갖춰진 것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느긋하려면 지금보다 더 문명을 포기하면 차라리 그럴 수도 있겠다. 어설프게 문명을 들여 놓은 상태라 늘 점검이 필요한데 괜찮겠지 하며 마음을 놓다 보면 꼭 사고는 생긴다. 그런데 있지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법칙들이 딱 들어 맞는지 신통할 지경이다. 저번에 가장 기온이 강하하여 어지간한 난방에도 견디기 어려울 때 보일러가 멈췄다. 이참엔 한겨울은 아니라도 늦추위가 갑자기 닥친 날, 때맞춰 광주에서 방학한 아이들도 온다는데 하필 이런 때 사고가 난 것이다. 이번 경우는 너무 믿었던 데다 발등을 찍힌 사례이다. 정초기도할 무렵 원광스님이 들어왔다. 가끔씩 와서 벗도 돼 주고 이것저것 부족한 일도 챙기다 가는데, 스님은 손솜씨가 좋아서 무슨 일이든 뒷손 갈일 없게 만들어 놓는다.
일머리라는 게 뛰어나 적절하게 생각도 잘해낸다. 그런 스님이 나무에서 떨어질 수도 있나 보다.
믿는 스님이 손본 기계라 그냥 썼었다.
엔진오일은 한번 갈아 주면 평소 한 달 여는 까딱없었다. 무슨 착각을 했던지 기름도 없이 기계만 계속
작동시킨 셈이었다. 부속이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 대수롭잖은 고장이 아니었다. 수리 기간이 오래 걸려 불편함도 그만큼 길어졌다. 사실 이런 곳에 살려면 웬만한 것은 자기 손으로 할 수 있어야 했다. 고장 나는 연장쯤 손볼 줄 알아야 하고. 제법 익히고 준비하여 들어왔어면 됐었다.
그러했어도 거리가 멀어 불편할 텐데 아무 것도 못하니 속수무책이고 조그만 고장에도 안절부절이다. 하다못해 물만 안 나와도 제대로 고쳐본 일이 없다. 하도 답답하니 어떻게 해볼까 하며 수원지로 올라가 보긴 한다. 몇 번씩 힘든 길을 오르락 내리락만 할 뿐 되지는 않는다.
가르쳐준 데로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데 웬일일까 안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른 이들이 와서 손보면 금방 된다. 무슨 조화람.
이 손은 왜 이리 재주 없고 쓸모도 없는고. 맨날 이러다 보니 일에 진전이 없다. 혼자서는 어떤 일이건 손댈 엄두가 안 난다. 땅 파고 풀 베는 등 단순한 것말고는. 그러니 끊임없이 일은 발생하는데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인적이 드물어서 더 그렇다.
얼마전 왔던 처사는 대단히 못마땅한지중얼중얼하며 ‘저런 스님이 어떻게 이런 집을 짓고 혼자 살 생각을 했을꼬’ 그런다. 맞긴 맞는 말이다. 그런들 어쩔 것인가. 갑자기 알아지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배워가며 익힐 수밖에 없쟎은가. 다행히 지금까지는 기계만능인 이 사장이란 이가 달려와 주어 견딜 수 있었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는가. 전혀 느긋할 수가 없다.
여전히 전전긍긍하며 사는데, 잘하든 못하든 자신이 해야 된다.
그래야 편하다. 어차피 지일이고 그렇게 계속 혼자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