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예불 뒤엔 지장정근을 해야겠다. 낮에 노인 복지관에서 만난 노인의 모습이 온종일 가슴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이 그 곳에 온 첫날인듯 조심스럽게 구석 자리에 앉아 계시는 조용한 그 할머니의 모습이 돌아가신 내 할머니 모습과 너무나 비슷했다. 좁은 어깨의 가냘픈 몸매, 단정하고 얌전한 자태, 전형적 미를 지닌 갸름한 얼굴….
쉰 고개를 넘은 지금도 길을 가다가 우연히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과 닮은 어르신을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멍하니 서서 한없이 그림움에 젖어들곤 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빈 젖꼭지를 두고 팔 남매가 쟁탈을 벌이고, 저녁이면 서로 자기 쪽으로 얼굴을 돌아보라고 아우성을 치던 그런 할머니의 정은 아직까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 보지 못했다. 아직까지 힘들고 어려울 때면 소리 없이 힘을 주시고, 그른 일을 할라치면 마음으로 꾸중을 하시는 의지처가 되기도 한다.
32년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던 날 ! 그 날의 슬픔은 말로 다할 수가 없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나의 인생관이 바뀌어질 정도였으니까.
일자무식이던 우리 할머니! 그래도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슴 밑바탕에 살아 있는 사랑의 힘을 지니신 분이었다. 지금 살아 계시다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드리고 싶은 할머니.
도대체 무엇이 할머니와 나를 이토록 강하게 묶어 놓았을까?밤이 깊어 오지만 낮에 본 노인의 모습과 겹쳐진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부디 극락 세계 왕생하여 보살도를 이루소서. “나무대원본존지장보살마하살.”이렇게도 그립고 보고 싶은 할머니건만, 요즘 젊은 여성의 대부분이 시부모와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연히 아이들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정을 모르는 채 자란다.
급속한 과학의 발달과 물질 위주의 가치 속에 전통의 가치관은 무너지고, 노인들은 소외 당하며, 컴퓨터도, 운전도, 무선 전화도, 텔레비전도 조작할 줄 모르는 무능력하고 쓸모 없는 존재로 전락되어 버렸다.
공인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은 74.9세, 2020년에는 78.0세. 머지않아 전체 인구의 13퍼센트 이상이 노인 인구의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 것이라고 한다.
예순살부터 노인이라고 친다면 적어도 이십 년 이상은 노인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 과연 그 긴 시간을 노인들은 어디서 어떤 보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국가나 사회는 이에 대한 보장이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단 말인가? 노인 복지에서 내세우는 금전 지원이나 혜택으로는 해결될 수가 없다. 노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범국민적인 의식 전환이 없이는 해결될 수가 없으리라.
다행히 유엔에서는 노인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지난 1990년을 세계 노인의 해로 정하여 전 세계적으로 노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촉구하는 한편 노인에 대한 의식 전환을 위한 각종 행사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인”이라는 명칭을 “어르신”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권장하고 어르신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를 가졌다.
노인 문제는 가정 문제에서 확산되어 사회나 국가 차원의 문제로 해결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 시절부터 개인 스스로가 자기의 노년기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하며, 어린 시절부터 노인들과 함께 더불어 생활하고, 어린이가 자라면 어른이 되고 노인들도 젊은 시절에 훌륭한 일꾼들이었으며,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발전되었음을 인식시키고 노인을 공경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야 한다.
지난 봄 “노인과 함께 하는 물놀이” 프로그램을 실시한 적이 있다.
요즘 도시의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은 자연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여 주변의 자연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적다. 그에 견주어 노인들은 거의 대부분의 젊은 시절 농촌 생활의 경험이 풍부하다.
동네 노인장에서 심심하게 소일을 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야산에 나가 나무와 풀 이름을 알아보고 먹을 수 있는 나물을 캐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린이 두 명이 한조가 되어 나물도 캐고, 옛날 그 시절에 많이 하던 비석치기, 자치기, 고누두기 ― 지방에 따라 꼬누. 꼬니. 권. 꼰 등으로 불리며 호박고누, 우물고누, 줄고누, 팔꼰자 등의 종류가 있는 민속놀이 ―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물로 놀이도 하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나물 한 포기라도 더 캐려고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의 신바람 난 모습이나 “스승님!”, “어르신!”을 연발하며 졸졸 따라 돌아오면서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 어린이들만이라도 어른을 공경하고 따르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기대하는 것일까?
어린 시절부터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게 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 주려는 교육은 많이 하지만, 노인이 될 준비나 노후의 꿈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노인과 함께 하고 자기도 하면서 자라면 어른이 되고 끝내는 노인이 되며, 노인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낼 것인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준비해야 노인이 되었을 때도 당당하고 계획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풍요롭고 가치 있는 노후의 삶을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범국민적으로 준비하고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늦기 전에 너도 나의 노년기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