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공경하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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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상덕
2000년 04월 218호
자신을 세상에 존재하게 하고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부모·스승, 이하 모든 어른을 공경恭敬하는 윤리는 예로부터 인간의 정신 함양을 위한 실천 덕목이 되어 왔다. 그리고 그 은혜에 대한 보은報恩의 공경이야말로 불교인의 지성을 대변하는 가치 척도가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 어른을 공경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흐려지고 오히려 고리타분하다고 취급하게 된 데에는 기독교적인 편견이 한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불교 교단에서의 승가僧伽는 사자상승師資相承, 즉 스승과 제자 사이의 계승으로써 전통을 삼는 화상和尙 제도가 제정되어 있는데, 이러한 제도가 생겨나게 된 것은 당시 승가교단이 커지면서 부처님 혼자만으로는 모든 비구를 지도하고 교육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율장에는 화상을 은사恩師 또는 친교사親敎師라고 하여 스승과 제자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보고 있다. 화상은 제자에게 비구 생활에 필요한 의복·발우 등을 준비해 주고 불교 지식 및 제반 교양을 교육하기 위하여 제자와 머무르면서 완전한 비구로 교육시키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제자는 화상에게 극도의 존경심과 참괴심 그리고 외경심으로써 섬긴다. 새벽에 화상의 방에 들어가서 경법經法을 배우고 이치를 물으며 세숫물과 좌구 등을 준비하고 화상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좌구 등을 거둔다. 화상께 걸식할 마을을 여쭈어 걸식을 해 오며 화상이 직접 가신다고 하면, 발우를 챙겨 앞에서 독충毒蟲 등은 없나 잘 살피면서 모시고 다녀온다.
공양하실 때에는 곁에서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 드리며 거처를 청소할 때는 의발·좌구 등을 정돈하고 목욕도 시켜 드리며 날마다 세 차례의 문안을 올렸다. 화상의 방과 집을 수리하며 의복을 빨고 깁는 일은 제자로서는 사양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화상이 법다이 시키는 모든 일을 받들어 행하고, 화상의 허락 없이는 발우 등 승물僧物을 함부로 타인에게 줄 수 없으며 또한 받아서도 안 된다. 병환이 나면 가까이 모시면서 쾌유를 기다리고, 화상께 아뢰지 않고는 마을 등 밖에 나가지 못하며, 잘못을 저질렀으면 호궤합장으로써 날마다 세 차례의 참회를 드린다. 화상이 참회를 받지 아니하면 뜻을 더욱 낮추어 참회해야 한다. 이런 깊은 인연과 함께 격의 없는 만남을 이루어 가는 과정은 수행의 하나라고 여겼다.
전진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승가의 아름다운 가풍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사회나 절집안에서도 오직 자신의 성취 욕구와 개성만이 가치 있다는 독단과 이기심 때문에 주위를 돌아볼 여유는 없어지고, 어른을 섬겨 시봉하는 모습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넉넉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어른을 공경하고 섬기는 이를 만나면 외계에서 온 사람은 아닌가 하고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효경孝經에 ‘어른을 공경하고 섬기는 덕은 고매하고 너그러운 품성이며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인격적인 능력’이라고 하였다. 또한 ‘어른을 섬기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거나 업신여기며 오만하지 아니하고, 용서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며 언행을 바르게 해서 정의를 따른다’고 하였다. 공경한다는 것은 바른 인연관계를 가지려는 노력이다. 바른 인연를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청정淸淨하게 하고 정성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출가한 시절에는 생활 여건이 몹시 불편한 때였다. 그 당시 나는 주관하여 어른을 시봉하는 기회는 갖지 못하였고 다만 옆에서 돕는 정도였다. 시봉 거드는 일은 손빨래하고, 풀옷 손질하며 목욕물 데우는 일이었는데 그 무렵 목욕탕의 물솥은 둥글고 기름한 큰 모양을 한 가마솥이었다. 그 솥에 우물물을 길어서 붓고 장작불을 지펴 데웠는데, 목욕이 끝날 때까지 아궁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물이 뜨겁다고 하시면 찬물을 길어다 붓고, 물이 다시 식으면 불을 더 지피는 일을 되풀이하곤 하였다.
또 어른께서 볼일이 있어 출타하실 때는 오실 날짜를 미리 말씀하시지만 ― 산사에 통신이 없음 ― 일러주신 날짜에 왕복 사십 리를 걸어서 마중을 가보면 안 오시어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에도 나갔으나 힘이 너무 들어서 마침 마중을 안 나가고 있을 때 돌아오시면 ― 짐을 손수 들고 오심 ― 호된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 이렇게 시봉 심부름하던 일들이 아련히 남아 이제는 나의 수행 생활에 훈훈한 바람이 된다. 또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깊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며 더 많이 모시지 못한 것이 후회될 때도 있다. 육방예경六方禮經에 ‘어른을 공경하고 받들면 안온하여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어른을 섬긴다는 것은 온유한 수행자가 되기 위한 정진이고 자타自他가 둘이 아닌 자비와 인욕의 실천이다. 그리고 시봉을 통해서 우리의 의식은 전환되어 들뜬 번뇌와 분별심은 가라앉고 업장은 맑아지게 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예전 어른들이 시봉한 예를 들어보면, 법희스님 ― 만공스님이 인가한 비구니 ― 의 맏 상좌인 영명스님은 일생을 스님 곁에서 떠나지 아니했고, 취침할 때에도 스님보다 먼저 자리에 들지 않고 새벽에도 먼저 일어나며, 공양간에서 진지를 풀 때는 촉촉한 곳에서 푸라고 챙기셨고, 상좌나 손주 상좌들이 채공 소임을 살 때도 손수 호박·가지나물 등을 물렁하게 해서 드렸으며, 의복을 만들면 스님 옷을 가장 먼저 만들어 놓고 다른 사람의 옷을 만드는 등 스님을 먼저 생각하는 섬김이었다고 한다.
또 한 예로 안광호 스님은 젊어서 만행을 좋아하셨는데, 한번 만행을 떠나면 달포가 지나도 연락도 없고 돌아오지 않자 은사 스님께서 보고 싶음이 노여움으로 바뀌어 심기가 불편하여 계시는 때에, 송이간장 단지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스님! 상좌 광호 다녀왔습니다” 하고 큰절을 올리면 그만 노여움과 섭섭함은 일순 사라지고 기뻐하셨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공경의 표시로 말로 위문도 하고 머리를 조아리기도 하고 장궤합장과 최고의 존경은 오체투지로써 예를 올린다고 한다. 어른을 격식과 전통으로 모실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어른께 향하는 향심向心만 지니고 있다면 제자로서의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하겠다.
부처님께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잘 섬기고 조상을 공경하며 수행자를 존경하는 사회는 번영한다”고 하신 말씀을 새기면서 ‘념념念念 보리심 菩提心’ 하듯이 모든 어른을 공경하면 우리 마음은 아마도 한결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너그러워져서 맑고 조용한 냇물이 흘러가듯이 모든 이에게 행복을 제공하는 수행의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