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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한 물건도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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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법전 2000년 04월 218호
설사일물즉부중說似一物卽不中이라 하니
풍종호혜운종룡風從虎兮雲從龍이로다.
차사유래비초초此事由來非草草이니
체언무법시진종體言無法是眞宗이라.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는다 하니
바람은 호랑이를 따르고 구름은 용을 따르네.
이 일은 본래부터 예사로운 일이 아니니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참된 법이라 하지 말라.

육조 혜능 선사에게 남악회양스님이 처음으로 찾아왔습니다.
“어디에서 왔는가?”
“숭산崇山에서 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닦아서 증득하는가?”
“닦아서 증득하는 일이 없지 않으나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 부처님들이 아끼고 염려해 주시는 바이니, 그대가 이미 그렇고 나 역시 그렇노라.”

육조선사와 일물(一物) 즉 ‘한 물건’과는 인연이 많습니다.
행자 시절 오조 홍인 밑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신수대사의 게송을 지나가는 학인에게서 듣게 됩니다.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요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라.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하여 막사염진애莫使染塵埃하라.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밝은 거울이니
항상 부지런히 갈고 닦아 티끌이 묻지 않도록 하라.
이를 듣고서 오조 앞으로 나가 자기의 마음자리를 내놓게 됩니다.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요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라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인데 하처유진애何處有塵埃이리오.
깨달음에는 본디 나무라고는 없으며 밝은 거울은 또한 받침대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나 티끌이 묻겠는가?
행자 때 이미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도리를 알았던 것입니다.
뒷날 스님께서는 어느 날 대중에게 말했습니다.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고 밝기는 태양 같고 어둡기는 칠 같다. 움직이는 사이에 항상 있지만 움직이는 사이에서 찾을 수 없으니 그대들은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어느 납자가 말했습니다.
“부처님들의 근원이요, 저의 불성입니다.”
이에 육조스님은 두어 방망이 때리고는 말했습니다.
“아환작일물我喚作一物도 상자부중尙自不中이온대 나감환작본원불성那堪喚作本源佛性고? 나는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데 어찌 근원이니 불성이니 하겠는가?”
여기에 ‘한 물건’이 있습니다.
천지가 생기기 전에도 항상 있었고, 천지가 다 없어진 뒤에도 늘 있습니다.
천지가 천 번 생기고 만 번 부서져도 이 물건은 털끝만치 변동도 없이 언제나 있습니다.
크기로 말하면 가이없는 허공의 몇 억만 배가 되어 헤아릴 수 없이 큽니다.
이 물건의 크기를 바다에 비유하면 사방의 넓고 넓은 허공은 바다 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 물거품과 같습니다. 또 일월보다도 몇 억만 배나 더 밝은 광명으로써 항상 시방세계를 비추고 있습니다. 이 물건은 모든 이름과 모양·분별을 떠난 절대적인 것입니다.
‘절대’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지만 부득이 ‘절대’라고 붙었을 뿐입니다.
‘한 물건’이란 이름도 지을 수 없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한 물건’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니, ‘한 물건’이란 이름을 붙일 때 벌써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일시에 나타나서 억천만 겁이 다하도록 설명하려 해도, 이 ‘한 물건’을 털끝만치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깨쳐서 쓸 따름이요, 남에게 설명도 못하고 전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한 물건’을 깨친 사람을 우리는 부처라고 부르며, 부처는 생사의 고통을 영원히 영원히 벗어나서 미래세가 다하도록 자유자재한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미물중생이라도 모두 이 ‘한 물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깨친 부처나 깨치지 못한 조그마한 벌레들까지도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이 ‘한 물건’을 깨쳤느냐 깨치지 못했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석가와 달마도 이 ‘한 물건’은 눈을 뜨고서 보지도 못하고, 입을 열어서 설명하지도 못합니다. 이 ‘한물건’을 보려고 하면 석가도 눈이 멀고 달마도 눈이 멀게 됩니다. 또 이 ‘한 물건’을 설명하려고 하면 부처와 조사가 다 벙어리가 될 것입니다.
오직 깨쳐서 자유자재하게 쓸 뿐입니다.
오직 이 ‘한 물건’만 믿는 것이 바른 신심입니다. 석가도 필요없고 달마도 필요없습니다.
대장경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로지 이 한 물건만 믿고 이것을 깨치는 공부만을 하는 것이 용맹정진입니다. 내가 이 한 물건 찾는 공부를 하다가 잘못되어 지옥에 떨어져 억천만 겁토록 무한한 고통을 받더라도, 조금도 후회하는 생각이 없어야 할 수 있는 공부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직 이 공부를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아니면 도저히 이 공부는 성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인은 말씀하기를 ‘사람을 죽이면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이 공부를 성취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철 노사는 ‘청상과부가 외동아들이 벼락을 맞아 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을 만큼 무서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 공부를 할 생각을 말아라’고 하였습니다.
고인들은 이 ‘한 물건’을 깨치기 위하여 목숨을 건 철저한 용맹정진의 자세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암권伊庵權 선사는 공부할 적에, 해가 지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오늘도 또 이렇게 헛되이 보냈구나”라고 하면서 통곡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누구와도 절대로 말을 건네지 않고 지내며 정진하였던 것입니다.
불등佛燈 선사는 불감佛鑑스님 밑에서 지낼 때 하도 공부가 되지 않아 크게 분심을 내었습니다.
“내가 금생에 철저히 깨치지 못한다면 절대로 자리에 눕지 않겠다”라고 작정하고는 기둥에 기대고 서서앉지도 않고 선 채로 공부를 하여 49일 만에 깨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송나라 때 임제종의 대표적 도인인 자명慈明 선사는 분양汾陽 화상 밑에서 지내면서 추운 겨울에도 밤낮없이 정진하였습니다. 밤이 되어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다리를 찌르면서 이렇게 탄식하였습니다.
“고인들은 도를 위하여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았거늘, 나는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이렇게 게으르고 방종하여 살아서는 세상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죽고 나면 이름조차도 없어질 터이니 너는 도대체 무엇하는 놈이야?”하고는 정성을 다하여 맹렬하게 공부를 하여 마침내 크게 깨치게 되었습니다.

‘한 물건’을 찾는 공부는 이렇게 무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낳아 길러준 부모가 굶어서 길바닥에서 엎어져 죽더라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 무서운 자세 바로 이것이 고인들의 공부하던 태도였습니다. 황제가 스승으로 모시려고 하여도 목을 베였으면 베였지 절대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 고인들이 공부하려는 지조였습니다. 모든 부귀는 풀잎 끝의 이슬 방울이요. 모든 권력은 진흙 위의 똥덩어리라는 이런 생각과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야 참으로 이 ‘한 물건’ 찾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도를 성취하기 위해서 자나 깨나 죽을 힘을 다해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 몸 얻기도 어렵고 불법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얻기 어려운 사람 몸을 얻어 더 한층 만나기어려운 불법을 만났으니, 이 목숨을 떼어 놓고 공부하여 속히 이 ‘한 물건’을 깨쳐야 할 것입니다.
이 ‘한 물건’을 깨치기 전에 만약 죽게 된다면 또 짐승이 될는지, 새가 될는지, 지옥으로 떨어질는지, 어느 때 다시 사람 몸 받아서 불법을 만나게 될는지, 불법을 만나도 최상 최고의 길인 이 한 물건 찾는 공부를 하게 될는지 알 수가 없으니 참으로 두 발을 뻗고서 통곡할 일입니다.

대각피모이마래戴角披毛伊?來하여
철위산악진충개鐵圍山岳盡衝開로다.
염부답살인무수閻浮踏殺人無數하니
맥비심천예불회驀鼻深穿톌不廻로다.
뿔을 이고 털을 쓰고 저렇게 와서
철위산을 들이받아 무너지게 하네.
염부제의 많은 사람을 밟아서 죽이니
설쳐서 코뚜래를 깊이 꿰어도 따라오지를 않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