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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원회 기독교 일색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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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0년 03월 217호
종교적 성향은 관철되려는 의지를 내재하고 있는데...
지난\" 2월 2일 조계종은 매우 이례적이고, 아주 강경한 내용의 대정부, 대정당 성명서를 발표했다. 새 방송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조계종의 입장을 담은 것이었는데, 원로회의 의장 탄성스님을 비롯하여 부의장 종산, 도원 그리고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중앙종회의장, 호계원장, 중앙종무기관(총무원 교육원 포교원)의 각 부장의 이름을 명시했다.
조계종이 성명을 발표하며 원로의장부터 중앙종무기관 부장급 이상의 소임자들의 이름을 붙인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조계종으로서는 그만큼 급박하고 중차대한 사안에 대한 입장 발표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조계종단 주요 소임자의 이름을 거론한 것에 대해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방송위원 인선에 대한 조계종단 전체가 우려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위원 선정은 성명 발표가 있은 열흘쯤 뒤인 14일에 이뤄졌는데, 2일 현재 각정당과 국회 문화광위원회에서 추천한 6명의 종교 분포는 개신교인 4명, 천주교인 1명, 무종교인 1명으로 나타났다.─방송위원회 위원 9명 가운데 6명은 정당 추천, 3명은 대통령의 추천하며, 임명은 대통령이 한다.─이런 가운데 대통령이 추천할 것으로 예상되는 8명의 명단이 언론에 보도됐다. 현직 목사 2명을 포함해 개신교인 5명, 천주교인 1명, 무종교인 2명의 이름이 거론됐다. 불교계로선 방송위원 후보자들의 종교 분포를 외면할 수 없는 분위기인데, 후보자로 얘기되는 14명 가운데 개신교인 9명, 천주교인 2명, 무종교인 3명이라는 분포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자연스럽게 ‘방송위원 기독교 일색’이란 불만이 터져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가니 성명서의 내용 또한 매우 강경했다. 한마디로 방송위원 인선을 재고하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종교간 형평성이 지켜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성명서의 서두는 “고질적인 병폐 가운데 하나인 종교간 형평성이 지켜지지 못한 점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로 시작해 ‘김태복 장군 누명 사건’ ‘대다수 불교계 공약 미이행’ 등 해묵은 문제까지 끄집어내었다. 이어 “방송위원으로서의 전문성 및 자질과 관계 없이 특정 종교의 대표성을 띤 인사가 추천되었다면 앞으로 방송위원회에 대한 평가 및 종교간의 형평성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경고로 이어졌다.
방송위원 선정 과정에 대한 조계종의 이 같은 인식은 많은 부분 설득력을 갖는다. 적어도 불교계 안에서는 폭넓게 인식되는 부분이다. 조계종에 이어 2월 3일 실천불교전국승가회와 불교바로세우기 재가연대, 우리는 선우 등 불교계 12개 출가·재가단체에서도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해 “특정종교를 대표하는 인사들로 방송위원회를 구성한다면 현정부는 국민들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불교계의 분노 섞인 외침에 대해 지금까지는 메아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2월 14일─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방송위원 9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최종 결정된 방송위원의 종교 분포를 보면 그렇다. 개신교인 5명, 천주교인 1명, 무종교인 3명으로 결론지어졌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에서 방송위원 선정에 대해 이처럼 매우 예민하게 바응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방송위원회 역할의 막중함 그리고 그에 따른 권한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예전의 방송위원회가 심의기구의 성격이었다면, 지금의 방송위원회는 방송 전반에 관한 정책을 세우는 일을 한다.
방송위원회는 방송영상정책과 관련한 방송제도의 수립, 방송프로그램의 수급 및 제작·유통에 영향을 미치는 방송사업자 구도의 변경, 방송시장의 개방, 새로운 방송환경의 형성·변화에 대한 대책 수립을 수립하는 역할을 한다.
또 인터넷 방송 또는 방송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해 유통되는 정보나 일정한 편성계획에 따라 정기적으로 편성되는 정보에 대해서도 방송위원회가 심의한 뒤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
즉, 방송정책과 행정권, 공영방송사의 인사권 등 방송 전반에 걸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기구가 방송위원회이다. 방송에 관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색칠까지 하는 기구이다. 방송이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함에 비춰본다면, 정부의 어느 기구보다도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영국의 언론학자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영상매체에 관한 저작 가운데 고전으로 읽히는 「텔리비전:테크놀러자와 문화형식」(1974)에서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를 포함한 모든 테크놀러지, 특히 텔레비전은 특정 사회질서의 의도이며 동시에 효과이다”며 텔레비전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방송의 가장 핵심적인 매체인 텔레비전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얘기이다. 윌리엄스보다 조금 더 비판적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란 형식의 커뮤니케이션이 기존 문화의 권위를 위협한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텔레비전은 상당히 많은 인구의 두뇌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정보 전달을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사실상 텔레비전이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하여 문화생산의 다양한 분야들 ─ 예술겧??과학겷또?법 ─ 에 매우 큰 위험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텔레비전에 대하여」 1996)텔레비전에 대한 이 같은 지적은 몇몇 특정한 학자의 관점만은 아니다. 문외한일지라도 텔레비전이 지닌 영향력을 감각으로 알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방송 프로그램에서 초보적이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편집 기법 가운데 리포터 대신 실제 사건의 참여자를 등장시키는 것이 있다. 생동감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다. 시·청취자는 사건 당사자의 목소리와 표정까지 볼 수 있으니, 특정 사안에 대해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기획과 편집 과정에서 사건 당사자의 의사는 일정 정도의 왜곡을 피할 수 없다. 프로그램에서는 왜곡의 과정을 굳이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 당사자를 등장시켰으므로 진실한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고 은근히 과시한다. 방송에서 전달하는 내용이 ‘유사 사실’일 뿐이라는 것을 감추는 것이다. 방송 매체의 사안 전달 과정의 대면성 직접성이 인쇄 매체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높기 때문에 문제로 삼는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이번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방송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이 같은 한계성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방송의 한계성에 방송위원회의 종교적 편향성까지 겹쳐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계가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방송위원 선정이 문제되기 얼마 전의 사례를 보면 불교계의 우려가 자기방어용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시립합창단에서의 일이다. 서울시립합창단은 3월 6일 제1회 ‘가스펠(개신교 복음성가) 페스티벌’에 이어 18일 기독교 음악 콘테스트를 개최한다. 이 소식을 접한 불교계의 종교편향대책위원회는 서울시립합창단에 즉각 항의했는데, 담당자의 답변이 놀라웠다. “기독교 음악의 새로운 축제를 위해서 마련했다. 지난해 7월부터 시립에서 재단법인으로 민영화됐으므로 합창단은 공공단체가 아니다”는 것이다. 기독교 음악 공연이라면 교회 차원에서 치루면 되지 굳이 서울시립합창단이 나설 일이냐는 항의에 대한 답변치고는 너무 노골적이다.
성향은 관철되려는 의지를 내재적으로 갖고 있다. 더구나 관철하려는 성향이 삶의 지남으로 삼는 종교적 신념일 경우는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좋은 정부, 좋은 정당의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를 사족처럼 붙인다면, 종교편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