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해안 부둣가에 사는 흰수염갈매기입니다. 턱 밑에 흰 수염이 길게 나서 그런 이름이 붙었으나 나이 많은 할아버지 갈매기가 아닙니다. 생각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젊은 청년 갈매기입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밤잠을 자지 않고서라도 해야만 적성이 풀리는 그런 갈매기입니다. 물론 젊은 아가씨 갈매기들한테도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다른 갈매기들과는 달리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한다는 단점을 빼놓으면 나도 아주 멋진 갈매기입니다.
바다란 얼마나 넓은 것일까? 왜 바다에는 수평선이라는 게 있는 것일까? 도대체 수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물고기들처럼 나도 바닷속에서 살 수는 없을까? 갈매기들은 왜 산에서는 살지 못하는 것일까? 저 설악산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나는 한번 이런 생각을 하면 끝이 없습니다. 무슨 생각을 한 가지 했다 하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어린 갈매기들한테 잔소리 또한 많습니다.
“먹이를 먹더라도 시커멓게 뱃기름이 묻은 건 먹지 마. 잘못 먹으면 배탈 나.”“그까짓 오징어 다리 하나 가지고 서로 먹겠다고 싸우면 앞으로 내가 혼을 내줄 거야.”“배고프다고 바다 위에 떠다니는 비닐조각이나 나무토막 같은 걸 먹으면 안 돼. 잘못하다간 목구멍이나 모래주머니가 막혀 죽어. 발목에 끈이나 줄 같은 것도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 발가락에 줄이 친친 감기면 나중에 피가 안 통해서 발가락이 끊어져 버린단 말이야. 그래서 다리 병신이 되는 거야, 알았지?.”나는 어린 갈매기들을 만나기만 하면 그런 잔소리를 자꾸 늘어놓았으나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어린 갈매기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사고로 죽게 될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피해 갈매기들만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한낱 꿈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나랑 가장 친한 흰눈썹갈매기, 노랑부리갈매기와 같이 동해안 한가운데 있는 알섬이라는 곳으로 날아가 보았습니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위험한 부둣가를 떠나 고요한 해변가를 한번 찾아가 보자는 친구들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푸른 소나무로 빙 둘러싸인 알섬은 아름다웠습니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는 한없이 푸르렀습니다. 군데군데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었지만 고기잡이배들이 한데 모이는 부둣가보다 한결 깨끗하고 위험 또한 덜했습니다.
나는 신이 나서 파도에 몇 번이나 발목을 적셨습니다. 달빛같이 고운 모래 위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알섬의 가장 높은 바위에 앉아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습니다.
“바다는 누가 만들었을까?”
나는 너무 행복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만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야, 신께서 만드셨겠지.”
“그럼 우리도 신에게 우리만을 위한 섬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면 안 될까?”내가 그런 말을 하자 노랑부리갈매기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넌 아직도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못된 버릇을 안 고쳤구나. 이제 정신 좀 차려. 어린 갈매기들 보기에 창피하지도 않니?”나는 노랑부리갈매기의 말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수평선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정말 갈매기들만이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을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섬을 가질 수 있을까. 어린 갈매기들이 마음껏 날아다녀도 아무런 위험이 없는, 그런 섬이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맞아 신께 한번 부탁을 해 보는 거야. 사람들한테만 섬을 주지 말고 우리 갈매기들한테도 섬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하는 거야! 나는 노을 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신께 간절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갈매기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섬을 하나 만들어 주세요. 사람들이 사는 곳은 우리 갈매기들이 살기에는 너무나 위험합니다. 바닷물이 너무 더러워서 제대로 먹을 수도 없어요.
얼마 전에는 유조선이 침몰되는 바람에 기름에 빠져 죽은 갈매기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었습니다.”신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아무런 그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 어느 날 새벽이었습니다. 동해의 수평선 위로 불쑥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다가 굳이 신에게 부탁할 필요없이 나 스스로의 힘으로 섬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래 맞아! 내가 내 힘으로 섬을 하나 만드는 거야. 사람들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우리 갈매기들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섬을 한번 만들어 보는 거야…
그 날부터 나는 바닷가의 모래로 바다를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갈매기들에게 같이 힘을 합쳐 섬을 만들자고 했으나 아무도 나를 도와 주는 갈매기는 없었습니다. 흰눈썹 갈매기도 노랑부리갈매기도 그저 비웃고 조롱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동해안 바닷가에 오면 입에 모래를 물어 바다를 메우는 나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
정호승 님은 시인이다.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와 어른
이 읽는 동화집 「연인」, 「항아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