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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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오성
2000년 03월 217호
해젯날 걸망이 가벼운 것은 안거를 잘 지냈기 때문이다. 죽은 듯 얼어붙었던 자연이 새 생명의 희망을 담아내는 산사의 길을 따라 걷는 맛은 형언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공부 맛을 조금이라도 보았을 때는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보다 조금 못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도반을 만나게 되면 마음이 든든하기 그지없다.
언젠가 어느 노승에게 들은 이야기다. 젊은 납자 시절 어느 삼동결제 때에 여러 명의 스님이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하고 깊은 산 속 절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 때에도 지난 안거처럼 눈이 많이 와서 겨울나기가 어렵게 되자 두 분 스님만이 함께 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 분은 이를 개의치 않고 하루하루 한 사람이 밥을 지으면 다른 한 사람이 나무를 하며 수행을 계속하였다. 서먹서먹한 시간이 흐르고 두 분은 차츰 서로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숨길 일이 없다 보니 드문드문 건네는 말에도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도 부연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이 한마음이 되었다. 어느덧 개울에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버들강아지 드리운 해제 전날이 되었다. 저녁에 공양을 마치고 차 한잔을 하며 밤새 이번 철의 서로의 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하였지만 이 두 분은 못내 아쉬워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보름이나 만행을 떠났다고 한다. 단지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말이다. 이 때 함께 했던 시간이 지금까지 스님 노릇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단다.
눈이 시리도록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모든 세상사 일을 접어놓고 혹독한 겨울을 지나 봄이 오는 들녘을 발길 닿는 대로 벗과 함께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겠는가. 어느 날 제자 아난이 세존의 질문을 받았다. 수행의 도정에 벗은 얼만큼 되겠느냐고. 아난은 이것저것, 이 조건 저 조건을 고민한 끝에 절반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세존은 벗이 이 길의 전부라고 하였다. 우리에게 삶이 무엇이겠는가. 모든 사람은 행복해지고자 한다. 하지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조건에 의해 이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매순간 깨어 있음에 있는 것이다. 벗은 당신을 깨어 있게 하며 삶의 주인공으로 분명히 서 있게 합니다. 좋은 벗을 살아가면서 갖고 있다는 것은 삶의 가장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좋은 벗을 선지식이라라고 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은 저절로 봄이 된다. 견디기 힘든 고난은 시간과 함께 과거가 된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은 한번뿐이다. 그 시간을 되돌일 수는 없다. 자신이 주인된 삶은 또 다른 나의 벗을 통해 가능한 것임을 새봄을 맞이하여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무엇엔가 맡겨 버린 삶은 편안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 마침표 찍는 날 돌아본 인생이 허망치 않겠는가. 누구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참 나, 참 사람을 위한 삶이라고 할 것이다. 모든 분의 삶이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