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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에 생겼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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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암 이야기 - 법장 2000년 03월 217호
입춘이 지났다. 입춘이 지날쯤 이 산골엔 역사적 한 장면이 있었다. 남이 들으면 웃을 일이겠지만 이 골짝으로는 빈법당에 부처님 대신 법보法寶를 모신 것이다. 섣달 그믐밤. 그도 거창하게 한·중·일 대장경을 함께 모시었다. 불단 가득 대장경을 모시고 맑은 차 한잔 공양으로 올린 채 엎드려 절하니, 생각해 보라 얼마나 감개가 무량했겠는가를. 집을 지으며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순간에 생각 키우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너무나 힘든 시절이었기에. 사실 집이 이만큼 완성되는 날 부둥켜 안고 한번 크게 울어 보자고 약속한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라 멋쩍고 그래 애써 참았다. 영문 모를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 더욱 그랬다. 궁상스런 소리지만.
어떤 일이건 중요한 대목은 엉겁결일 경우가 많다. 이번 일도 그랬다.
오래 전부터 모시려는 생각은 하면서도 미뤄왔던 일이다. 그러나 설을 앞두고 늘 해오던 정초기도가 염두되면서도 딱 어떤 결정이 안 내려졌다. 그렇게 섣달 그믐에까지 다달았고, 이젠 정작 아무도 없는 혼자라 난감하였다.
그런 날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나타난다. 혼자 외로울까봐 들렸다며 광주의 김 거사 내외가 와서 반가워하며 있는데, 영광에서 이 거사가 과일과 떡을 준비하여 온 것이다.
갑자기 분주해졌다. 이 사람들이야 어차피 저녁에 내려갈 참이니 있을 때 운력으로 마치자는 생각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서둘렀더니 잠깐 동안에 끝마쳐졌다. 이 거사는 과일과 떡을 정성스레 올리고. 이래 놓으니 격식 갖춰 설은 못 지내도 서운치는 않게 되었다.
기도할 준비까지 자연스럽게 되어진 셈이다. 이쯤만 해도 감격스런 역사적 장면일 텐데 기도까지 하게 되니 더 말해 무엇하랴.
쓸쓸했어도 기도입제는 원만하게 이뤄졌다. 정초기도는 빠뜨리고 싶지 않은 연례 행사이다. 수행도 변변하게 못하고 사니 이라도 하면 여간 마음이 가벼운게아니다. 더구나 새 집에서 처음 하는 기도라 마음까지 설레어졌다. 한편엔 우려도 없지는 않았다. 어떤 장애는 없을까 하는.
첫날, 저녁기도를 마치고 나오니 눈이 펄펄 내려 온 경계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서설이었다. 기도가 잘 될 예감이다. 그런 예감이 신기하게 맞아졌다.
물도 얼어 계곡에서 길러야 하고 사실은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그 눈발을 어찌 왔을까 싶게 보살이 대구에서 옴으로 하여 어려움이 순식간에 해결된다.
기도는 장애없이 진행되고, 눈에 막혀 아무도 올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반갑기는 얼마나 반가웁겠는가.
시작도 괜찮았지만 회향은 더욱 과분할 만큼 성대하였다. 마침 일요일이라 어린 승록이까지 한자리 하였으니 성대함이 당연하였다. 예쁘게 절하고 엄마 곁에 합장하고 서서 무엇을 기원하는지 진지하다. 특히 이번 기도 중에 역사적 사실이 하나 더 추가된다.
이웃 마을 할매들이 처음 불공 드리러 온 일이다. 혼자 살려고 법당도 자그만데, 정초를 그냥 넘길 수 없어 혼자 기도하는 참인데, 계획에 없던 일이라 쑥쓰럽다.
그래도 별 수 없잖은가. 정성껏 축원했다.맘에 들었는지 회향날 또 오셨다.
떡시루까지 올리고 열심이다. 기도 끝난 다음날인가도 더 몇 분이 오셨다.
이건 사건이다. 부처님도 아직 못 모셨건만. 소문 들으니 잘해 준다고 해서 이리로 왔단다. 이렇게 구름처럼 몰려오면 감당하기 어려워지겠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정말 어쩐담.
순박한 시골 할매들 흐뭇하게 해드릴 재주가 없다. 이들은 부처님께 불공도 해야 되지만 그보단 오직 자손에 대한 생각뿐이라서 올라오는 길로, “시님, 우리 올해 신수 쬐까 봐 주실 수 있을랑가요” 그런다. 다 그 기대가 큰데 재주가 없으니 여간 안됐다. 낭패다.
부처님 말씀으론 성이 안 차질 것이 당연한 노릇이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래도 참 괜찮은 날이다. 할매들도 다 올라오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다 못 주었지만 그분네들이 그럴 거라는 것을 몰랐던 바도 아니었으니 그저 웃으며 바라볼밖에. 산골에 살며 이런 재미난 날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