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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찾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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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경미 2000년 03월 217호
봄을 찾아 남쪽으로 갔다가 매화며 동백이며 푸른 바다를 보고도 마음이 흡족하지 않아 허기진 마음으로 민박집을 찾아 곤하게 잠이 들었는데 새벽 산골의 적막을 깨우는 장닭 울음
소리가 지친 나의 마음을 생기로 일깨우는 소리로 다가와 얼마나 가슴 설레었는지 모른다.
도심에 살면서 몇 십 년을 잊고 지냈던 새벽을 여는 꼬끼오오, 꼬끼오오. 그 울음소리에 내 맘 속의 봄을 찾은 듯 마냥 즐거워 동심에 잠겼다. 도시에서 새벽을 여는 알람 소리는 언제나 피곤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는데 산골의 닭 울음소리는 생명으로 충만된 일깨움으로 와 닿았다. 내가 진정 자연과 함께 살아 있는 생명의 요동이란 이런 걸까! 저 닭들은 새벽이 온 줄 어떻게 알까? 하늘을 보니 눈이 시리도록 별들이 가득하다. “별은 살아서 반짝인다”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자연의 삶은 이렇게 새벽 별빛처럼 반짝이며 우리에게 다가올진데, 우리의 삶은 살아도 살아도 이력이 나지 않아 늘 새벽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 나는 미얀마 마하시 선 사원을 출발하여 희뿌연 새벽 안개를 가르며 주택가를 돌며 탁발─탁발에 숨겨진 뜻은 수행자들이 밤새 일구어 놓은 복전福田을 중생에게 나누어주고, 하심下心을 위한 수행의 일과이다─ 하는 미얀마 수도승의 행렬을 보았다. 가사를 온몸에 두르고 맨발로 묵묵히 걸식하는 어린 사미승의 눈에서 새벽의 영롱한 별들이 자라나고 있어 그 길이 얼마나 환희로운 길인지 존경과 흠모로 땅에 엎드려 예배를 올렸다.
2500년 전 부처님도 제자들과 이와같이 칠가식七家食으로 진리와 중생을 향한 대법륜을 굴렸으리라. 큰스님께서 “부처님은 중생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이미 구원되어 있는 부처의 존재임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이것을 확인 시켜 주기 위해서 45년 동안 법륜을 굴리신 거야” 그리고 “중생이 부처를 찾는 것은 아이를 업고 아이를 찾는 격이요. 자신의 앞뜰에 매화 향기를 두고 봄을 찾아 이 산 저 산 헤매는 꼴이야” 이 말이 진리라고 믿고 공감하면서도 현실의 중생살이를 보면 나도 몰래 고개가 저어진다. 인간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고통을 못 이겨 울부짖는 산짐승과 낚싯줄에 매달려 살려 주세요 하며 요동치는 물고기며, 하물며 똑같은 사람끼리 함정과 미끼를 놓아 자신만의 이익과 안락 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과연 구원된 자로서 불사佛思며 불행佛行인가? 스님은 이야기하셨다 “중생의 육근六根으로 보고, 느끼고, 듣는 것은 보 잘 것 없는 거야 그리고 이미 나온 생각과 글(현상)속에 진리를 완벽하게 담을 수 없는 거야. 근본 자리에 돌아가지 않고는 중생살이는 언제나 중생살이일 뿐이야. 그래서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라고 했잖아. 여래의 진실한 뜻을 체득하기 위해서 우리도 부처님처럼 수행 정진해야 하는 거야. 여래의 눈은 육안肉眼뿐 아니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을 갖추고 있는 것이야.” 우리의 근본이 부처가 아니고 또 이 땅이 원래 정토가 아니라면 우리는 영원히 부처가 될 수 없고 이 땅을 정토로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검게 더러워진 흰 고무신은 닦으면 희게 되지만, 본 바탕이 검은 고무신은 아무리 닦아도 흰 고무신이 될 수 없듯이…
봄을 찾아 해인사로 오기는 잘 왔나 보다 해인사의 새벽예불 종소리는 잠시나마 나를 부처님의 세계로 인도한다. 산사의 새벽은 나그네의 지친 몸을 씻어 주고 참 생명으로 충만 시키며, 새벽 도량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스님들의 원력은 모든 중생을 새벽 정신으로 깨우고 있었다.
세상의 원음처럼 낭랑한 새벽종송은 소리와 함께 이렇게 울려 퍼졌다. “원하옵건대 이 종소리가 시방세계에 두루 퍼지어, 철위 산간에 있는 무간 지옥의 어둠을 모두 밝게 하여 주시고, 지옥, 아귀, 축생들의 고통을 여의게 하시며 칼산지옥을 파하시어, 모든 중생이 정각을 이루게 하여 지이다.” 넓고도 깊은 부처님의 원력에 고개 숙이며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나의 본래면목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게 한다.
새 천 년의 봄을 좇아 다니며 나는 근본이 바로 서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나라든, 학교든, 개인이든 근본이 바로 서 있으면 어려움도 잘 이겨 낼뿐 아니라 그 고난의 경계가 위복爲福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어려움과 기회는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쏟아지는 것. 학문이나 운동도 기초가 잘 잡혀있으면 노력 여하에 따라 대성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발전도 없을 뿐 아니라 사상누각砂上樓閣이 되는 것이다. 옛 어른들은 애들에게 바둑이나 붓글씨를 가르침에 먼저 붓이나 바둑돌을 잡기 전에 얼마 동안 배움에 임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부터 익히게 하였단다. 그리고 해인사로 출가한 행자들도 공양간이나 채공간에서 일을 시키기 전 얼마 동안은 가만히 세워 놓는다고 한다. 근본을 중시하는 지혜인 것 같다. 이제 세상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온갖 편리한 기계들로 화려한데 그 사용을 가르치기 전에 그 기능을 운용하는 인간의 인성 교육은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예부터 아는 놈이 도적질한다 했다. 나는 컴퓨터의 바이러스니 해커니 하는 것들이 우주에서 날라 온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제 세상은 급속히 사이버 세상으로 변화하면서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에 해적들이 판을 치고 있으며 그에 따라서 사이버 경찰마저 생겨났다. 이와 같은 창과 방패의 대결은 우리의 본래 면목을 찾지 않고는 영원히 피곤하게 계속될 것이며, 그리고 외형적인 발전만으로 세상이 행복하고 안락할 것이라는 기대는─이제 누구도 믿지 않지만─정작 실천하는 일에는 소홀하다. 탐욕의 뿌리가 대단한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 선과 명상에 대한 기대가 높아 가고 있지 않는가 싶다. 선은 수행의 안목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하며 양변의 조화와 지나침이 없는 중도를 생명으로 한다. 중도를 실천한 선사들의 어록엔 봄을 소재로 한 개안開眼이 많다. 올 봄엔 사이버 세상에도 봄 향기가 가득하길 부처님 전에 기원 드리며 봄을 찾는 나그네는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