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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은 불교 중흥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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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고재연 2000년 03월 217호
불자들이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익히며 실천하는 것은 자신의 불성佛性 심지에 등불을 밝히는 일이며, 더불어 사회에 법의 등불을 밝혀 이 땅에 불국정토를 이룩하는 것이 부처님이 중생을 위해 나투시고 몸소 출가하시어 전법하고 열반하신 참 뜻을 실현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내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기독교를 믿고 중학생 시절 초에는 카톨릭을 신봉하는 천주교 예비신자까지 하였으나 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신 보살님─충청도 청학사에서 공부하신 뒤에 내 고향인 광주로 내려오신 이복년 보살님─덕에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이 보살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네가 성당에 나가려면 나에게 오지 말고 성당에 나가지 않으려면 나에게 오라”는 말씀에 “대전 보살님, 제가 성당에도 나가고, 보살님께도 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통사정을 했다. 나를 후원해 주는 대전 보살님을 놓치지 않으면서 성당에도 꼭 나가고 싶었던 까닭은, 그 무렵 광주에는 카톨릭이 성행했고 카톨릭 신자가 되면 로마 교황청에 이름이 올라가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고 많은 사람이 로마 교황청에 이름을 올리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을 때라서 내가 성당에 가지 않으면 카톨릭 신자가 되지 못해 로마 교황청에 이름을 올릴 수 없어 어린 마음에 너무 서운했기 때문에 이렇게 통사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대전 보살님께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하였다. 대전 보살님께서 관세음보살처럼 인간적으로 저에게 너무 잘해 주셨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성당에 나가지 않고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그 때부터 불교에 귀의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 무렵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모른 채 이 보살님께서 하라는 대로 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대전 보살님께서는 불법 포교의 강한 의지와 열린 마음으로 일찍이 불법을 깨우치시고 인재 양성과 고기 방생이 아닌 인간 방생에 부처님의 참 뜻이 있음을 알고 실천하셨던 분인 것 같았다. 이 보살님께서는 지금은 돌아가시고 이 땅에 계시지 않지만 저의 꿈속에 언제나 좋은 모습과 환경으로 나타나시기에 아마 소원대로 극락왕생 하였으리라 믿는다.
아무튼 대전 보살님의 인연으로 불교에 귀의한 뒤 저는 종립 고등학교인 정광고등학교에서 불교교리 수업 시간을 통해서 부처님의 신비로운 전생 이야기며, 출생과 출가 그리고 열반을 그리는 부처님의 일대기와 인연법을 배우면서 불교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그 뒤에 내가 불교에 대한 신앙적인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지금 사찰에서 행하고 있는 구병시식이다. 내가 구병시식을 한 날 밤에 상여 세 개가 나가는 꿈을 꾸었다. 하도 이상해서 할머니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더니 우리 조상 가운데 세 분이 오래 사시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불교의 삼세 인연법이 보통이 아니구나 하고 그 때부터 깊은 묘미를 갖게 되었다. 더욱 더 불교를 위해서 헌신하고 정진해야겠다고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구병시식을 한 번 더하게 됐을 때 일인데, 꿈에 제가 호미로 밭을 일구며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천둥번개가 치더니 흰옷 입은 왕비가 스르르 나타나 걸어오면서 하시는 말씀이 “재연아, 너는 농사를 짓지 말고 금을 다루도록 하여라”하셨다. 그래서 그 때의 몽중가피夢中加被로 금융업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불교의 인연법이 보통이 아니라고 통감하였다.
부처님의 인연으로 태어나 이제 전법의 사명을 받고 불교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어릴 때 꿈에 나타난 흰천으로 가린 왕비가 백의관세음보살님이라 확신하며, 저를 신앙의 길로 전법의 길로 이끌기 위한 부처님의 은혜로움이라 생각하니 저는 축복받은 인생이며 부처님과 뗄 수 없는 삶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 뒤에 우연히 1983년 음력 7월에 범어사에 참배 가서 대웅전과 관음전에 삼배를 드리고 내려오는데 보제루에 젊은 불자가 많이 모여앉아 있길래 스님이 무엇을 하시나 하고 들어가 보았다. 바로 청년회 법회 시간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광주에는 중겙玆咀 불교학생회는 있었지만 불교청년회는 없었기 때문에 청년회 법회는 부산에서 알게 되었다. 이를 인연으로 불교청년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청년회에 적을 둔 뒤로는 불교 서적과 큰스님의 법문을 통해 신행에 불을 당기었다.그리고 한국 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일체 중생의 생, 노, 병, 사 고통을 해탈의 길로 열어 주시기 위해 육 년 동안 고행의 길에 들어서시어 성도하신 뒤 열반에 드실 때까지 45년 동안을 맨발로 걸식하며 중생을 제도하신 참 뜻을 우리 사부대중은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우리도 부처님같이 수행 정진하여 이 시대가 요구하는 불자가 되어야겠다.
우리 사부대중이 지금 꼭 해야 할 일은 적극적인 불법 홍포라고 생각한다. 큰스님께 세배 갔더니 “대 합창제라고 해서 가 보니까 칠천 명이 모여야 할 자리에 삼천 명밖에 모이지 않았다”고 하셨다. 이런 훌륭한 부처님의 음성 공양 자리에는 마음이 없고, 고기 방생이나 개인적인 기복에만 마음이 쏠린다면 한국 불교의 미래는 밝을 수가 없다. 이제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법당마저 생겨나는 21세기에는 우리 불자들도 변해야 한다.
나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어느 불자의 뼈에 사무친 참회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젊고 싱싱할 때 이 손과 발은 물론 마음까지도 남을 위해 써본 적이 없는 매우 이기적인 신앙을 가진 불자였는데, 이제 이렇게 식물인간이 되어 병석에 누워서 무료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고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병석에 누워 지나온 자신의 신앙 형태를 되돌아보니 절에 자주 가서 뭔가 열심히 한 것 같기는 한데 이대로 삶을 마감하기엔 너무나 억울하고 불안했다. 오직 자신의 앞가림을 위한 기도, 아상과 요행 그리고 삼독을 키운 신행으로 살아왔으니까? 그분은 발원하고 있었다. 다시 손과 발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상相 냄 없이
남을 위해 봉사하고 부처님의 참 뜻을 이웃과 사회에 펼치고 싶다고 재활의 꿈을 다지며 치료하고 있는 불자를 보았다.
이제 우리 불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육신과 마음 그리고 이 땅에 살면서 이룩한 재물을 얼마나 남을 위해 쓰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가진 온전한 눈으로, 그리고 입으로도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하물며 손과 발 그리고 재물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전법을 향한 불자들의 변화는 이런 작고 가까운 것부터 의식의 변화는 시작되어야 한다. 불교의 유형 무형의 저력과 가만히 있어도 인연 따라 제발로 걸어오는 기복적인 신앙 형태만 믿고 시대에 맞는 포교에 소극적인 포교의 씨앗(因)은 얼마 가지 않아 그 열매(果)가 되어 나타날진데, 이제 우리 불자들은 새천년의 출가재일과 열반재일을 맞아 나의 신앙에서 벗어나 우리를 향한 예경과 정진 전법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하겠다.
우리 모두가 합심 합력하여 불교 중흥의 길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좋은 법을 온 누리에 전하여 모든 중생구제에 최선을 다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