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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리고 시민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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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현진 2000년 03월 217호
4. 13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정치 개혁이나 자진 참회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경실련과 총선시민연대가 이미 공천 반대자를 발표했음에도 여야 각 당의 공천자들의 얼굴은 별로 새로울 게 없다. 새 정치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기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야 모두 지역 정서와 당선권 확보라는 현실의 한계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공천 탈락자들은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지역 감정을 조장하면서 무더기로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선거에서도 과거에 그랬듯이 지역 감정을 기반으로 한 정당들이 생겨나는 현상이 재현될 것 같다.
이번 정치권의 공천 발표와 관련해 시민 연대에서는 공천 무효 소송을 통해 법적 대응을 강구하고 있으며 앞으로 낙선 운동과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선거법 개정을 통해 시민 단체의 정치 개입을 일부 허용했지만 결국 시민 단체들의 낙천 낙선 운동을 수용하지 않은 셈이다. 정당 나름의 공천 기준이나 정치 상황이 있겠지만 이미 부패 무능 정치인으로 낙점된 의원을 공천한 것은, 대다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민심을 외면한 처사라는 지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낙선 운동 소식을 처음 듣게 되었을 때 미운 사람을 누군가 나서서 혼내 주는 것처럼 가슴 한쪽이 후련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사실 그 동안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염증은 하루 이틀 쌓인 게 아니다. 그만큼 국회는 제 할 일을 못하고 민생을 외면했던 부분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시민 연대의 행동은 유권자 중심의 혁명이 분명하다. 스스로 정치 세력이 되거나 정치권 본연의 임무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국민 주권을 다시 확인하고 올바른 정치를 복원하려는 자구의 노력이라고 믿고 싶다. 시민 연대의 이러한 과정이 총선 때까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몰라도 국민의 정치 의식을 일깨우는 데 톡톡히 한몫을 한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난달 실천승가회 등 불교단체들이 모여 총선불교연대를 출범시키고 정치 개혁을 위한 활동에 나선 것은 원칙적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시대의 상황과 요청을 저버리지 않는 구제 원력이 보살 정신이며, 대정부 대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과 방향 제시를 해주는 것이 역동적인 불교 운동이다. 그 동안 선거 때마다 보여 준 불교계의 행동은 극히 재한적이었고 대중적이지 못했던 점을 상기한다면 총선불교연대에 거는 교계의 기대 또한 크다. 총선불교연대의 활동 방향이 교계 일각에서 일고 있는 정종政宗 밀착의 우려와는 달리 사회 정의 실현과 정토 사회 구현에 앞장서는 바람직한 불교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시민 단체와 불교 단체의 이러한 염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와 불자들의 성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선거철을 이용한 종교 집단 이기주의와 사찰별 이익주의를 철저히 배격해야 공명한 선거문화를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불자의 성숙된 유권자 혁명과 아울러 불교계의 올바른 선거 운동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