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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다리 거둘 때 부처님 손 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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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법전 2000년 03월 217호
황룡혜남黃龍慧南 선사께서 황벽산黃蘗山 적취암績翠庵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납자들이 찾아올 때마다 이런 말로 제접을 하였습니다.
내 손은 어째서 부처님 손과 같은가?
내 다리는 어째서 나귀 다리와 같은가?
사람마다 태어난 인연처가 있는데, 어디가 그대들의 태어난 인연처인가?

이 불수佛手 여각驢脚 생연生緣의 화두를 보통 황룡삼관黃龍三關이라고 부릅니다.
황룡혜남 선사는 송나라 때의 스님으로 임제종 황룡파의 개조입니다. 열한살에 출가하여 제방을 다니면서 여러 선지식을 친견하고 마침내 석상초원石霜楚圓의 법을 잇게 됩니다.
석상스님이 찾아온 황룡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운문종의 선을 배웠으니 아마도 그 종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운문雲門스님이 동산수초洞山守初스님에게 몽둥이 석 대를 때리겠다고 했는데, 몽둥이 석 대 맛을 보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몽둥이 맛을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러자 자명스님은 얼굴빛이 굳어지면서 말하였습니다.
“몽둥이 소리만을 듣고서 매를 맞는 것이 합당하다고 한다면 아침 나절부터 저녁까지 종소리, 목어소리, 북소리, 운판소리 따위를 듣고서도 몽둥이 맛을 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몽둥이 맛을 보는 일을 언제쯤이나 그만두게 되겠는가?”
이 말에 황룡스님은 얼굴빛이 달아오르며 비지땀을 흘리다가 마침내 깊은 뜻을 깨치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조주감파趙州勘婆’의 공안을 참구하게 됩니다.
조주 선사가 사는 오대산 길목에 한 노파가 살았습니다. 스님들이 오다가다 그 노파에게 묻기를, ‘오대산은 어디로 가오?’ 하면 노파는 대답하기를 ‘곧장 가시오’하여, 그 스님이 서너 걸음 내딛으면 노파는 ‘멀쩡한 스님들이 또 저렇게 가는구나’ 하였습니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선사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더니, 선사가 ‘내가 직접 그를 감정해 보리라’ 하였습니다. 이튿날 가서 그렇게 물으니 노파가 역시 그렇게 대답하는지라 선사는 그대로 돌아와서 대중에게 말하되, ‘내가 그대들을 위해 그 노파를 감정했다’는 그 화두를 타파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뒤 동안원同安院에서 개당 설법하게 됩니다.

여산廬山 귀종사歸宗寺에서 법을 펴면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밤, 절에 불이 나 대중이 법석하는 소리가 산골을 진동하였지만 선사께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스님들이 부축해 세우며 불길을 피하시라고 하니 스님은 그를 돌아보며 오히려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그 스님은 간곡하게 말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자명스님의 큰 법을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그러자 할 수 없이 천천히 옷을 고쳐 입고 일어서니 불길은 이미 자리까지 번져 있었습니다.
이 일로 관가에 붙들려 가서 고초를 치르게 됩니다. 두 달 뒤에 풀려났는데 수염도 머리도 깎지 않고 뼈와 가죽만이 앙상하였습니다. 마중 나왔던 사제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목메어 말했습니다.
“사형 스님께서 어쩌시다가 이렇게 되셨습니까?”
그러자 황룡스님은 “이 속된 놈아!”하고 호령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절을 올렸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의 태산처럼 동요 없는 행동은 대개가 그러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황벽산 적취암으로 은거하게 됩니다.

적취암에 있을 때 한 납자가 곁에 서 있으니 황룡스님께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었습니다.
“백천 가지의 삼매의 경지와 무량한 묘한 법문을 한마디로 너에게 말해 준다면 믿겠느냐?”
“스님의 성심 어린 말씀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황룡 선사는 그의 왼편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쪽으로 오너라.”
그러자 그 스님이 종종걸음으로 오려고 하자 “쯧쯧”하고 혀를 차면서 말했습니다.
“소리를 따라 움직이고 색色을 쫓아다니면서 언제나 깨달을 수 있겠느냐? 썩 나가거라!”
어느 스님이 이 이야기를 듣고서 황룡스님 방으로 찾아갔습니다. 지난 번과 똑같이 물었습니다.
“백천 가지의 삼매의 경지와 무량한 묘한 법문을 한 마디로 너에게 말해 준다면 믿겠느냐?”
“스님의 성심 어린 말씀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황룡선사는 그의 왼 편을 가르키며 말했습니다.
“이 쪽으로 오너라.”
그러자 그 스님이 꼼짝하지 않고 서 있으니 이번에도 “쯧쯧”하고 혀를 차면서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찾아온 것은 나와 가까워지려고 온 것인데 도리어 나의 말을 듣지 않다니, 썩 나가거라.”이처럼 선사의 가풍은 깎아지른 듯하여 설사 부처님이라고 하더라도 기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미 실추된 임제종의 가풍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사께서는 빈틈없는 용모와 원대한 도량을 지녔는지라 대중은 그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선사의 문하에서 공부를 이루어 제방의 총림에서 명성이 높았던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일찍이 선사께서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것을 본 적이 없을 만큼 엄격하였던 것입니다. 스승이란 존경은 하되 가까이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황룡 선사의 가풍인 삼관화두는 이에 계합하는 납자가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혹 대꾸하는 납자가 있어도 눈을 감고서 맞다 거나 틀리다 거나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숨어사는 은자隱者인 반연지潘延之가 그 까닭을 설명해 달라고 하니 황룡스님은 말하였습니다.
“관문을 통과한 자는 팔을 흔들고 가버리면 그만이다. 관문을 지키는 관리에게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는 자는 아직도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자이기 때문이다.”만년에 선사께서는 이 삼관화두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남겨 놓은 게 있습니다.
“나의 손과 부처님 손을 모두 그대에게 들어 보이니, 그 자리에서 알아차리면 창과 방패를 움직이지 않고서, 말하는 그 자리에서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을 것이다. 나의 다리와 나귀 다리가 나란히 걸어가는 걸음마다 무생無生을 밟아가니, 구름이 걷히고 햇살 감춰지는 곳에서 종횡 무진한 이 도를 비로소 알리라. 생연이란 이야기를 모든 사람이 다 알건만, 해파리가 언제 새우를 떠난 적이 있었던가? 태양이 돋는 동쪽 언덕을 바라보기만 하면 어느 누가 다시 조주의 차를 마시리오.”그리고 이 모두를 총괄하여 다시 한마디 하였습니다.
“태어난 인연처 끊길 때 나귀 다리 드리우고, 나귀 다리 거둘 때 부처님 손 열린다. 오호五湖에서참선하는 납자들이여! 세 관문을 하나하나 통과하여라.”
어쨌거나 이 삼관화두에 대하여 예부터 제방에서도 견해가 분분했습니다.
나의 손은 어찌하여 부처님 손과 닮았을까?
어느 납자가 대답했습니다.
월하농비파月下弄琵琶로다.
달빛 아래 비파를 켜는구나.
또 다른 납자가 대답했습니다.
원도경공발遠道擎空鉢이로구나.
먼길 위에 빈 바릿대를 들고 서 있구나.

나의 다리는 어찌하여 나귀의 다리와 닮았을까?
어느 납자가 대답했습니다.
노자입설비동색鷺 立雪非同色이로다.
백로가 눈 위에 서 있어도 같은 색이 아니구나.
또 다른 납자가 대답했습니다.
공산답락화空山踏落花로다.
텅 빈 산골에 떨어진 꽃잎을 밟는구나.

어느 곳이 너의 태어난 인연처인가?
어느 납자가 대답했습니다.
모갑모처인某甲某處人이로다.
나는 어느 어느 곳 사람이로다.

이제 산승이 여러 대중에게 말하겠습니다.
길을 막고 서서 누군가에게 부처님 손, 나귀 다리, 생연처를 묻는다면 ‘먼 길위에 빈 바릿대를 들고 서 있구나’라고 대답하겠습니까?아니면 ‘백로가 눈 위에 서 있어도 같은 색이 아니구나’라고 대답하겠습니까?만일 이 두 가지로 동시에 대답한다면 불법을 혼란시키는 일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가운데 한 가지를 가려서 대답한다면 한쪽으로 치우친 말라빠진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