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인에게 의심은 한이 없다. 중생의 의심과 출가수행자의 의심은 본질적으로 크기가 다르며 방향도 다르다. 중생의 의심은 밖에 있고, 보살의 의심은 안에 있다. 중생의 의심은 밖에 있고, 보살의 의심은 안에 있다. 중생의 읫미이 혹 안에 있을지라도 그 크기가 좁쌀이라면 보살의 의심은 온 우주를 싸고도 남는 바가 있다. 세간의 의심이 바깥으로만 향해 내지르는 화살이라면 출가수행자의 의심은 안으로 향하는 밝은 빛이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을 위대한 의심(大疑心)으로 말미암았다 한다. 출가인의 의심은 믿음을 전제로 한 의심이다. 출가인의 믿음이 진리에 대한 믿음이라면 출가인의 의심은 자아에 대한 의심이다.
고요함 가운데 오히려 시끄러움이 있다. 고요한 선방, 좌복 위의 일상, 군더더기 없는 생활이라도 고요함 안에서야말로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막을 길이 없다. 참선을 하는 자리의 고요함이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의 수선스러움으로 부추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가다듬는 것이 보살의 고요함이며, 그 적막 속에서 빛을 발견하는 것이 보살의 참선이다. 보살은 시끄러운 시장 안에서 고요함을 찾으며, 화택 안에서 오히려 냉정하다.
군수리 출토 납석제 불상의 미소에는 의심이 궁극에 이른 확신의 미소가 있다. 고요함이 있으며, 선열禪悅이 있다. 중생의 명상이라면 바닥의 고요 속에는 분명 소란스러움이 있을 법한데, 보살의 고요는 오히려 적적함을 넘어서 깨어 있는 맑은 정신이 중생을 향한다. 선정을 의미하는 수인으로 손을 곱게 모았고, 약간 숙인 상호와 반개한 눈,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미소는 세간의 중생이라도 어느새 출세간을 바라보게 하는 모습이다.
마음의 찌꺼기가 말이요, 말의 찌꺼기가 글이다. 마음의 바른 법을 말과 글 중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쓰레기 통에서 금강석을 찾는 일과 같다. 석가모니가 영축산 회상에서 아무 말 없이 연꽃을 들어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예부터 선가에서는 말과 글을 경계함이 준엄하기 이를 데 없었고, 선개들은 단어 하나, 미소 하나, 동작 하나까지도 옥석을 고르듯 신중하였다.
수행자들의 공부에 대한 지극함은 늘 이와 같으며, 이를 그리워하는 중생의 손길에도 그 지극함이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잡았던 마음 줄이 끊기는 순간, 선원의 담장 밖 흰 목련이 후두둑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