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가면 반드시 국립박물관을 찾는다. 그리고 진열실에 들어가기 전 뒷마당 서쪽 편에 자리하고 있는 종각에 드른다. 우리나라 금속 공예를 대표하는 동시에 민족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 결려 있기 때문이다. 이 신종은 어느 외국인이 말했듯이 한국 예술을 대표하는 최대의 결작이며, 우리의 예술 문화를 이 곳에 집약해 놓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위대한 문화 유산이다.
그런데 이 날도 예외 없이 외국인 수십 명이 안내자를 에워싸고 설명을 듣고 있었다. 성덕대왕신종의 유래를 설명하며 ‘에밀레종’이라는 종의 이름을 말하면서, 지금도 종을 치면 어린 봉덕이가 어미를 원망하여 ‘에밀레, 에밀레’하는 소리가 울린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설명을 듣던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슬픈 사연에 애처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님을 전송하고 돌아오는 안내자를 불러 그렇듯 허무한 전설을 또 이야기했느냐고 말하자,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해야 실감이 나서 호응을 얻는다며 달아나 버렸다.
내가 경주를 답사하며 박물관에 들려 성덕대왕신종을 처음 견학한 것은 1952년도 봄이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당시 ‘국립박물관 경주 분관’이라 칭하여 시내 한복판 옛 관아 자리의 한옥 건물에 있었으며 서남 담장 쪽 한구석에 종각이 있어 이 안에 성덕대왕신종이 걸려 있었다. 좁은 공간이어서 종각에 들어가 활동하기는 어려웠으나 박물관의 허가를 얻어 타종을 할 수 있어 우렁차고도 여운이 긴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때 사무실에서 한 분이 나
와 종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면서, 이 종은 일명 ‘에밀레종’이라고도 하는데 그 까닭은 어린 봉덕이의 죽음으로 인한 종소리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렁차고도 아름다운 종소리와는 너무나 맞지 않은 전설이어서 의아한 마음뿐이었다. 설사 스님이 시주를 원한다고 하여도 어린 자식을 선뜻 내주는 비정한 모정이 있을 수 없으며, 그렇듯이 어린 아이를 펄펄 끓는 쇠가마 속에 던지는 살생이 어떻게 불가佛家에서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였으나 그 분은 설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이 방면을 공부하면서 여러 종류의 불교 미술을 찾고 대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어떤 유적지에서는 그 곳과 직결되는 전설을 듣기도 하고 또는 전해 오는 전설을 따라서 관계 있는 곳을 찾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모든 전설은 고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전설이든 그 출처가 있으며 연원을 찾으면 조금이라도 진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삼국사기 특히 삼국유사에 보이는 설화의 내용과 관련 있는 유적지를 찾았을 때 조금의 거짓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것을 나는 고기록古記錄의 고증考證이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에밀레종 전설의 고향, 에밀레종 설화의 진원지는 그 뒤 수십 년을 두고 찾았으나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전설이 경주 이외에 또 어디에 있는지를 찾았으나 전혀 없었다. 하기야 실물實物인 성덕대왕신종이 경주에 있으므로 경주 이외의 지역에서 찾아질 리가 없었다. 경주 지역의 유지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예방하며 경주의 많은 전설을 청취하여 그 전설들에 얽힌 유적지는 모두 찾아 답사하였으나 에밀레종 전설의 출처만은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전설이 그리 오래 된 것도 아니고 영남 지역의 일부에서만 유포되고 있는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영남 지역은 본디 유림儒林들의 고장으로 조선 왕조 창업 이래 배불숭유의 사상이 가장 짙었던 곳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서는 불교를 배척하고 승려를 무시하는 말로 스님을 ‘까까중’이라고 하며, 아주 시원치 않은 사람들을 보고 ‘아이고, 이놈의 화상아’라고 한다.
또 바보 멍충이의 뜻으로 ‘목딱 같은 놈’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까까중이란 스님을 일컫는 것이지만 스님이라고 부르기가 싫어 ‘머리를 홀딱 깎은 중’의 뜻으로 멸시하는 언사인 것이다. 화상이란 ‘화상和尙’으로서 스님을 높여 부르는 말, 수계자受戒者를 위하여 사표師表가 되는 스님을 일컫는 용어이다. 목딱은 ‘목탁木鐸’으로 독경 또는 염불할 때 치는 성스러운 불구佛具로 사람에 비유하면 세인世人을 지도할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영남 지역에서 불교를 무시하는 몇 가지 용어를 살펴보았거니와 이러한 배경에서 꾸며진 근거 없고 고향 없으며 터무니 없는 전설이 에밀레종 전설이 아닌가 생각된다.
불교에서는 붉은 피를 흘리지 않으며 또한 피를 보지 않는다. 신라가 불교를 수용할 때의 사실로 법흥왕 15년(528)에 있었던 이차돈 스님의 순교에 관한 내용이 삼국사기에 보인다.
신라 본기 법흥왕 15년조를 보면 이차돈이 순교할 당시 ‘부처님이 신령하다면 내가 죽은 뒤 반드시 이적이 일어날 것’이라 하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였다. 목을 베자 머리는 멀리 날아 금강산에 떨어졌고 잘린 목에서는 흰젖이 솟아올랐으며(혈종단처용血從斷處湧 색백여
유色白如乳) 갑자기 깜까해진 하늘에서는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고 땅이 크게 진동하였다는 것이다. 이 때에 목을 베었는데도 붉은 피가 솟지 않고 흰젖이 솟아올랐다고 하였다. 이러할진대 전설의 주인공인 어린 봉덕이의 어미가 자기 자식을 선뜻 내주어 시주하는 비정의 모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피를 보지 않는 자비의 세상을 외치는 불가에서 살생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에밀레종의 전설을 정말로 근거 없이 지어낸 안타까운 전설인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성덕대왕신종을 에밀레종이라 부르며 터무니 없는 전설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그것을 흥미 있게 듣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을지 모른다.
우리의 문화유산은 불교적인 것이든 유교적인 것이든 모두가 민족의 문화재인 것이다. 특히 고대로부터 한국 문화의 주류가 불교 문화일진대 이 불교적인 문화유산은 불자佛子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것이다. 천수백 년 동안 우리의 가슴 속에 간직되어 왔으며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긍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등록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서 우리도 과거 흥미 본위의 전설에서 벗어나 올바른 민족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알고 이를 세계에 자랑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덕대왕신종을 에밀레종이라 부르며 그 전설을 앞세우던 어리석음을 지양하고 이 신종이 갖는 역사적인 가치와 신종이 보이는 우수한 조형미 등을 강조하여 우리 민족 문화의 정수임을 알려야 한다.□
정영호 님은1934년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국 범종 연구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금은 한국
교원대학교 교수, 한국문화 사학회 회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