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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게송산책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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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회해 - 반산 2000년 02월 216호
지리산 천왕봉에서 떠오른 새해 일출은 변함없이 온누리를 비추고 있지만, 중생이 새 천년의 시작이니 어쩌니 하니까 수줍은 듯이, 동해안에 모인 그 많은 인파를 피해서 지리산 꼭대기에서 비로소 그 장엄한 자태를 내보였다 한다. 아마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두번째 보광명전 법회
이번 호에서는 두번째 법회가 열리고 있는 보광명전普光明殿으로 찾아간다. 이번 법회에서는 총 육품六品이 설해지는데 화엄의 교설방법으로 52가지 보살의 수행단계 중에 처음인 ‘십신十信’에 해당하는 설법이 현수품賢首品 제12까지 이어진다. 그 첫 품은 이름하여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이다. 명호名號는 덕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명호로써 부처님의 몸으로 하시는 업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단골 도반인 게송이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잠깐 명호품의 성격만 언급하고 다음으로 넘어갈까 한다.
명호품에서는 특히 화엄경의 전편에 걸친 중요한 질문이 설해지고 있다. “화엄의 중요한 과제가 어떤 것이 보살행인가?인데 아래에 구체적으로 여러 보살의 십주十住와 십행十行과 십회향十廻向과 십장十藏과 십지十地와 십원十願과 십정十定과 십통十通과 십정十頂입니까?” 그리고 어떤 것이 여래의 지혜인가 하는 등의 총 29가지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경문에 말하였다.
“신통을 보이고 나서 동쪽으로 열 개의 불찰미진수세계를 지나서 세계가 있으니 이름하여 금색세계요 부처님 명호는 부동지시며 그 세상에 보살이 있으니 이름은 문수사리이다.(現神通已에 東方過十佛刹微塵數世界하야 有世界하니 名金色이요 佛號는 不動智시며 彼世界中에 有菩薩하니 名文殊師利라)”

다음은 사성제품四聖諦品 제8이다. 이 품에도 게송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는 사는 세상에 따라서 4가지 성스러운 진리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이름이 달라진다는 내용이다.
“여러 불자들이여 고성제苦聖諦는 사바세계에서는 죄악라 이름하고 핍박이라 하고 변이라 하고 반연이라 하고 덩어리, 가시, 의지근, 속임, 상처, 어리석은 범부행 등이라 한다(諸佛子야 苦聖諦는 此娑婆世界中에 或名罪며 或名逼迫이며 或名變異며 或名攀緣이며 或名聚며 或名刺며 或名依根이며 或名虛이며 或名癰 處며 或名愚夫行이니라). 왜냐하면 중생의 오염된 눈으로 보면 기쁨이다, 즐거움이다 하는 행동이 지혜의 눈으로 보면 모두 뒤바뀐 생각(전도몽상顚倒夢想)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가 보다. 마찬가지로 집성제와 멸성제 도성제도 이런 관점으로 살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광명각품光明覺品 제9에서 부처님은 두 발바닥으로 백억의 광명을 놓아서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갖가지 차별한 현상을 비추고, 문수 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평등한 이치를 비추매, 몸의 광명과 지혜의 광명이 합하여 하나가 되어 진리와 현상이 함께 어우러진 이치를 깨닫게 하였다. 대개 ‘뜻으로 짓는 업(意業)’은 헤아릴 수 없이 자재한 것이므로 ‘광명’으로 보인 것이다. 이상의 세 품(명호품, 사성제품, 광품)은 믿음의 의지가 될 ‘부처님의 공덕(果位의 德)’을 밝히었고, 다음의 세 품(보살문명품, 정행품, 현수품)에서는 ‘능히 믿는 행(能信行)’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두 번째 법회의 첫 게송이 보인다.

지혜 없는 중생은 애정가시에 찔린 격이다
그 때에 온누리의 문수보살들이 각각 그 부처님 처소에서 같은 시간에 소리 내어 게송을 설하였다. 중생에게 지혜 없어서 애정가시에 찔려 있으니 저들에게 보리를 닦게 하려고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도다.(衆生無智慧하야 愛刺所傷毒일새 爲彼求菩提하시니 諸佛法如是로다)

혹은 사자후로 혹은 거룩하고 비할 수 없는 몸으로 최후의 생으로 나시어 설법이 모두 진실되도다.(或見師子吼와 殊勝無比身으로 示現最後生하사 所說無非實이로다)
한 생각에 무량한 세월 두루 살피니 오고 감도 머뭄도 없느니 이처럼 삼세의 일을 통달하면 온갖 방편 뛰어넘어 열 가지 힘을 갖추고 성불하리라.(一念普觀無量劫호니 無去無來亦無住라 如是了知三世事하사 超諸方便成十力이로다)

위의 세 게송을 청량소를 통하여 살펴보자. 첫 게송에서 ‘애정가시(愛刺)는 보리를 닦을 수 있는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애정에 빠진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데 몇 가지를 열거한다. 첫째는 나찰이 낳은 자식을 먹어 치우고 지옥에 떨어지며, 둘째는 오욕에 찌들리면 남은 것은 독사 같은 굴레뿐이며, 셋째는 애정에 빠져서 선법을 져버리고 결국 삼악도에 떨어지는 등의 사례를 말하여 특히 애욕을 경계하였다. 그리고는 보살의 대비와 깨달음의 지혜로 건져 내지 못하는 중생이 없음을 강조하였다. 아래 두 게송에는 여래의 여러 방편과 설법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불법을 만났더라도 노력이 없으면 성불은 멀고 멀다
들으려는 마음이 금강과 같고 부처님의 수승한 지혜 깊이 믿으며 마음 자리 아는 데 내가 없어야 이렇게 수승한 법 능히 듣나니.(持心如金剛하야 深信佛勝智하며 知心地無我하야사 能聞此勝法이로다)

다음에 소개한 게송은 광명각품이 아닌 십지품十地品 제26의 게송이다. 미리 새해 벽두에 살펴보고 싶어서이다. 청량소淸凉疏에는 ‘설법을 하더라도 중생이 간절한 마음(지청법심持聽法心이니 ‘법문 들으려 하는 자세’)으로 듣지 않으면 그 울림은 전해지지 않는다’는 뜻을 설명하고 있다. 법문 들으려는 간절한 마음이 금강과같이 굳건하면 차원높은 교리를 모르더라도 법사의 설법이 가슴으로 전해진다는 뜻이다.(지청법심持聽法心이 견여금강堅如金剛하면 즉능득문則能得聞이라)

새해 벽두에 필자는 화계사 현각스님의 신앙고백서인 ‘만행’을 읽어 보았다. 그의 화려한 학력이나 세간의 화제보다는 지난해 한 해 동안 그래도 불교를 홍포하는데 가장 공헌한 책인 까닭에 마음을 낸 것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숭산스님과의 첫 인연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현각 아니 ‘폴’만이 가슴 가득 감동이 전해졌을까? 하는 것에 주의를 하고 싶다. 그는 종교적인 자질을 우선 간직하였고, 카톨릭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선법문禪法門에 클릭되었던 것이 아닐까! 불법은 이렇게 간절한 욕구와 노력이 있는 자에게 어느날 갑자기 스승의 가르침은 찾아오는 것이며. 한 번의 설법으로 바로 마음 문이 열릴 수 있다! 마치 육조혜능六祖慧能처럼 폴 현각처럼… 참으로 그의 구도행求道行이 머잖은 장래에 결실을 맺기를 모든 불자들과 함께 축원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