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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갠지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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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관암 2000년 02월 216호
외부의 이질적인 세계와 바로 직선으로 맞딱드릴 때는 깊은 호수의 바닥물이 윗 물과 수직으로 교류 하듯 인식 또한 수직으로 교류되어 그 당혹감과 충격은 직접 그 현장을 떠나서는 경험되어 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힘 들여, 돈 들여 여행하고 문화를 체험하는 것일까?
나는 몇 해 전에 부처님의 성지 인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불자라면 아니 색다른 세계와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돈 주고 고생하지만 인도 여행을 꼭 원하게 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이해 못할 땅이며, 그런 삶이 있고 그리고 신비롭고 영적인 시간과 공간이 생활 속에 혼재하는 정말 엄청난 문화 충격의 현장임에 틀림없으리라. 일행은 델리 공항을 거쳐 기차로 하루 종일 달려서 인도 시바신의 꽃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인도인은 갠지스강에서 해가 돋을 때 목욕하면 생전에 지은 모든 죄업이 소멸된다는 믿음으로 인해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에는 목욕과 화장으로 매우 복잡하다.
나와 세 분의 스님은 복잡한 아침을 피해서 저녁 노을 무렵에 목욕은 못할 망정 성스러운─실제로는 흙탕물이며 추잡하다─갠지스강에 배를 띄워 바다같은 넓은 갠지스강 본류로 노를 저어 나아갔다. 나는 이내 명상에 들었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곁에 있는 스님들은 장난끼가 발동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배가 매우 흔들렸으나 나는 의식하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망망대해 같은 갠지스강에서 배가 뒤집혀 버렸다. 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윤회와 해탈이 함께 하며, 미와 추가 함께 하며, 생가 사가 함께 하는 성스러운 갠지스강에서 살려 달라 허우적거리는 꼴이 되었다. 이제 도저히 더 이상 허우적거릴 힘이 없을 때쯤 옆에 있는 스님들이 보였고 그들은 나에게 “정신 차려! 꿈꾸냐?” 그때서야 나는 이 곳의 물 깊이가 가슴 정도임을 알았다. 가슴밖에 안 되는 강물에서 살려 달라 어머니! 부처님! 관세음! 을 찾으며 허우적거렸으니 오! 갠지스강이여!
나의 공부됨이 이것밖에 안 되오! 나의 살림살이를 이렇게 적나하게 노출시키다니! 즉금의 현실, 즉금의 마음을 안으로 살피지 않고 밖으로 치닫는 공부만 하였으니 갠지스강은 나에겐 잊지 못할 스승이 되었다.
일행은 여행 기간 동안 내내 나를 놀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들은 이 곳의 물 깊이가 노 길이쯤임을 알고 무식하게 장난을 쳤다나… 이레 저레 나는 속은 셈이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해 온다. 허나 누굴 한탄하랴. 자신의 살림살이는 언제 어디서든 드러나는 법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