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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에 무엇이 오려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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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암 이야기 - 법장 2000년 02월 216호
겨울은 기다림의 세월인갑다. 산골의 겨울은 더욱 그렇다. 소복이 흰눈이 온 산에 덮힐 날을 기다리고, 시간이 흐르면 봄이 오려니 하는 기다림이 있고 인적이 거의 끊겨 버린 날들이라, 숲으로 난 길을 따라 누군가 올라오리라는 기다림으로 온통 귀와 눈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겨울이 푸근하여 가난한 살림살이는 도움이 되지만 눈도 좀 펑펑 내려줘야 겨울답기도 하다. 아직껏 눈답게 내린 것은 딱 한번이었다.
이 산골에서 첫눈을 맞이하는 마음은 썩 별달랐다. 그날 승록이는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눈이 쌓이기도 전에 눈싸움 하자며 떼를 쓰고 난리다. 어쩌다 올라오면 같이 놀 친구가 없으니 심심하다고 놀이 같은 걸 하자고 곧잘 졸라댄다. 첫눈 온 기분에 같이 엉켜 뭉쳐지지도 않는 것을 억지로 뭉쳐서 눈싸움이랍시고 해 본다.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보기도 한다. 한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지쳐 이젠 눈사람을 만들자고 억지다. 그러나 눈사람을 뭉치기엔 턱없이 부족하여 다음날 더 쌓이면 하기로 약속만 남겨 두었다.
이런 날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가래떡을 뭉턱 베어물며 뜨뜻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앉아 히히덕대기 좋은 날이다. 언제 적부터 벼러 왔던 일이라 묵은 쌀 한 자루를 싣고 가서 아랫마을 떡방앗간에 맡겼다. 내려오기 어려운 길이라 내려온김에 승록이랑 자장면도 한 그릇씩 푸짐하게 사 먹고 그런데 고민이다. 떡을 해서 맡겨 두면 굳은 뒤 떡집에서 썰어 준다는데, 그걸 누가 찾으러 내려온담. 따뜻할 때 가져가 가는 길에 마음의 몇 집에는 나눠 주고 싶기도 해서이다. 그냥 싣고 왔다. 며칠 밤 한석봉 어머니 흉내좀 내보는 수밖에. 나중에 혼자 써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꼬박 이틀밤을 지새우다시피 하였더니 엄지와 검지 손가락은 물집이 잡혀 험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래도 고집을 부렸으니 어쩌나. 혼자 다 해야지.
기다리는 마음이 많아서인지 겨울밤엔 환청을 많이 듣는다. 아직도 덜 쉰 마음 때문일까. 밤이 이슥해지면 이따금씩 자동차 오르막 차는 소리같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이 밤에 누굴까 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마음은 바짝 조인다. 한참을 오르던 소리는 어느만큼에서 딱 멈춘다. 골짜기를 스쳐가던 골바람소리. 여지없이 속고 만다. 그러기를 수없이 거듭했는데도 아직도 속는다.
그러나 정작 산골의 겨울밤을 놀래키는 것들은 따로 있다. 산짐승과 들쥐 무리들이다. 여기에도 여러번 속았다.
초저녁엔 괜찮다. 아마 산짐승이 싫어하는 발전기의 진동음 때문인가 보다.
불빛도 꺼지고 진동음도 어지간히 가라앉을 시간쯤이면 꼭 그랬다.
그것도 누구라도 와서 같이 있는 날은 그렇지 않은데 꼭 혼자만 되면 그랬다.
이것들도 혼자 사는 것을 시덥잖게 여김이 분명하다. 잠자리에 들고 막 어렵게 잠 속으로 빠져갈 때, 이상한 인기척 같은 소리가 난다. 순간에 잠은 달아나고 온몸이 쭈뼛 선다. 머리털부터 시작하여 모든 털이 다 일어나는 두려움으로 간도 졸아들 만큼 졸아들고, 몸을 웅크리고 숨소리마저 죽인다.
그러다가 애써 안간힘을 쓴다.
막다른 순간에 진정하고 속없는 다짐을 한다. “그래 뺏길게 목숨밖에 더 있냐 이만큼 살았는데 별 수 없지. 마음도 비우고, 용기도 더 내고.” 그러기를 여러번. 마음이 다잡힐 무렵엔 기척도 사라진다. 다음날 아침에 보면 무언가 산짐승이 다녀간 흔적이 있고. 에이, 이 쬐끄만 것들이 수행자 체면을 다 구겨 놓는다니까.
그래도 날이 밝으면 겉으로 태연한 척하며 속으로는 무언가를 열심히 기다린다. 눈이나 좀 펑펑 안 내려 주려나. 길 잃은 까투리와 동무하며 승록이와는 눈사람이라도 큰 바위만 하게 뭉쳐서 하나 세워 놓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