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하며 새해 덕담을 주고 받는다. 그럴 적마다 과연 나는 복을 많이 받을 자격이 있는지? 복은 많이 지었는지?
…
내 나이 예순이 넘었다.
그 동안 살아온 과거를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잘 살았다는 기준은 모르지만, 부처님을 좋아하고 남을 배려 하며 바르게 살고 좋은 학교에서만 사십 년을 근무하고 멋있게 명예 퇴임을 했으니 그래도 괜찮게 산 인생이 아닌가?…
부처님 말씀을 따라서 지금 나의 삶을 유추해 보면 전생에 어떤 행위를 하였구나, 또 지금 내가 사는 모습과 행위를 보면 내생에 어떻게 삶을 살 것인지 추측할 수 있다. 인과의 역연함이 이러할진대 그 동안의 삶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삶(행위)이 더 중요하니 불자들은 내생 아니 당장 내일을 위하여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생명 바쳐 부처님께 귀의하며 진리를 곧바로 실천할 것을 발원해야 할 것이다.
퇴임하자마자 곧바로 나는 불교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였다. 모든 것은 인연이며 자업자득임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전생에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을 금생에 풀어가며 산다고 생각하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속상하게 생각 할 필요도 없다.
왜? 모든 것은 전생에 내가 좋은 업, 나쁜 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려움이 있을 적마다 모두가 내탓이라고 생각하니 속상할 필요도 미워할 필요도 없이 마음이 편안하다. 얼마나 멋 있고 평화로운 종교인가.
지난해의 일이다.
동생이 아엠에프로 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고 걱정을 해서, 동생과 함께 년 초에 3대 적멸보궁에서 기도를 하기로 하였다.
정암사에서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다. 상원사 보궁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태백산 정암사 보궁을 향해 출발을 했다. 같은 강원도라 가까운 줄 알았는데 정암사까지 네 시간쯤 걸렸는데, 도착하니 이미 어두워졌다. 배낭을 마루에 놓고 보궁탑에 올라갔다. 정암사는 처음이었다. 보궁탑까지 올라 가는데 웬 계단이 그리 많은지, 가파라서 힘은 들었지만 올라가서 부처님께 일체 중생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새해 참배를 드렸다.
철야 정진을 하기로 했다. 공양간에서 동생과 함께 공양하고 잠깐 쉴 곳을 찾았다. 민첩한 신도들은 오자마자 법당에 자리를 잡고, 기도할 채비를 하였다. 법당 앞 마당에는 자리를 깔아 놓았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 곳에서 기도를 할 수 없었다.
정암사는 법당도 작고 요사채도 작아서 신도들이 철야로 기도할 자리가 넉넉하지 않았다.
우리는 방이 없어서 약사전 인법당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도 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으나 비집고 자리를 잡았다. 겨우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방바닥은 뜨겁고 신도님들이 떠들기만 하였다. 법당에서는 스님이 기도를 시작해서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멀리서 들리는데 약사전 인법당은 기도할 분위기가 잡히기 않았다.
기도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떠들다가 그냥 가야 되나?…
나는 동생과 천수경을 작은 소리로 읽기로 했는데 산만하여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방을 둘러보니까 약사보살님 옆에 목탁이 있었다. 용기를 내어 큰소리로 말했다. “여기 목탁이 있는데 제가 잘 치지는 못해도 목탁을 칠 테니까 목탁에 맞추어 천수경을 다 같이 읽고 다라니 49편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제의를 했다. 어떤 노보살이 벌떡 일어나 질색을 하면서 목탁은 아무나 함부로 치는 것이 아니라며 야단을 쳤다. 옆에서 동생도 말렸다.
“언니, 잘못하면 욕먹어요.”
시간은 가고 겨울 밤은 깊어 가는데, 뜨거운 방에서 땀 흘리면서 쪼그리고 잠이나 자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이 상했다. 정암사 부처님!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나는 용기를 내서 목탁을 쳤다.
“똑똑똑똑걖걖걖.”
동생에게 염주알 마흔아홉 개를 새어 거꾸로 세어 나오라고 부탁을 하고 목탁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천수경은 자신 있게 외우기 때문에 열심히 쳤다.
약사전에 가득 앉은 보살들이 하나, 둘 염불을 따라하였다.
신경을 써서 열심히 치니 틀리지는 않는데 목탁이 점점 무거워지고 팔과 손목도 아프고 다리, 허리, 어깨도 아프고 여러 증세가 나타났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치면 목탁이 틀릴까 봐 눈을 감고 치는데, 어쩌다 눈을 뜨고 주위를 곁눈질해서 보니 조는 사람, 엎드려서 자는 사람, 수다 떠는 사람 없이 모두가 일심으로 염불삼매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목탁소리를 내 귀로 들으면서 열심히 치다 보니 요령도 생기고, 그리고 기도하는 분위기가 쳐지면 목소리를 크게 내고 목탁을 변화 있게 치니까 모두가 환희심으로 정성껏 염불을 하였다.
옆에서 염주알을 돌리던 동생도 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염불삼매에서 기도를 무사히 끝냈다. 모두가 환한 얼굴로 서로를 격려했고, 수고 했다고 귤과 음료수를 주면서 덕분에 기도 잘 했다면서 칭찬을 했다. 다라니 49편을 처음 해 보았다는 보살도 꽤 많았고, 동생을 비롯하여 젊은 보살들은 이번에 다라니를 확실히 외우게 되었다며 매우 고마워했다.
이런 작은 일도 전생과 내생을 이어주는 인연과 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부끄럽기도 하면서 용기 있게 행동한 것이 자랑스럽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 부처님 제자될 것이며 열심히 육바라밀을 행하면서 적극적으로 살겠습니다.
인생은 짧고 시간은 없어도 원을 세워 기도와 염불, 참선을 죽는 날까지 하겠습니다.
끝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의 ‘감사를 느끼는 마음’(1938년)을 인용 하면서 부처님을 향한 저의 마음을 갈무리 할까 합니다.
“감사를 느끼는 마음은 성자에 가까운 마음이다. 무상보리에 회향하는 선근을 심는 까닭이다. 가족에 대해서, 인인隣人에 대하여, 사회 국가에 대하여, 내지 유정무정에 대해서, 감사를 느끼는 이만이 유연한 마음을 가진 이다. 유연한 마음을 가진 뒤라야 삼독을 여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탐적貪的의 생활을 버리고, 귀적鬼的의 생활을 버리고, 축적蓄的의 생활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아빈我貧을 버리지 않고 상쟁相爭은 없어지지 않는다. 진에瞋 를 버리지 않고 평화는 오지 않는다. 우치愚痴를 떠나지 않고 시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거기에 이해도 있고, 존경도 있고, 만족도 있고, 평화도 있는 것이다.”
새 천년을 맞아 정초에 산림 기도에 임하시는 모든 불자님, “감사를 느끼는 마음”으로 시작 합시다.
서방정토 극락세계 나무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