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봉에 거주하는 상암주祥庵主 선사께서 주장자를 집어 들고 대중에게 일렀습니다.
“옛 사람들은 어째서 참된 깨달음의 경지에 편안히 머물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였습니다.
“너희들이 수행을 하지 않아 힘이 모자라는 까닭이다.”
그래도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필경에 어떠한가?”
그래도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젠 대중을 상대해서 살고 싶지 않구나. 이 주장자나 둘러메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살련다.”
연화 상蓮花 祥 선사는 송나라 때 운문종 스님입니다. 운문문언의 법을 이은 봉선 심奉先深 선사에게
참학하여 그의 법을 이었습니다. 전혀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살았는지라 발꿈치조차 땅에 대지 않았다고
전해올 정도입니다. 선인들은 도를 얻은 뒤에는 띠집이나 석실石室에서 발 부러진 가마솥에 나무 뿌리를 삶아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인연따라 한마디씩 내던지면서 불조의 은혜에 보답하고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하고자 할 뿐이었습니다.
연화상 선사 역시 도를 얻은 뒤 천태산 연화봉에 토굴을 짓고 숨어 있었습니다. 혹 어떤 스님이 찾아오는 것을 보기만 하면 바로 주장자를 들고서 “옛 사람들은 어째서 참된 깨달음의 경지에 편안히 머물려고 하지 않았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전후 이십 년 동안 지내 왔지만 끝내 한 사람도 대답하는 납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는 천봉 만봉 사이로 완전히 숨어버렸던 것입니다.
사실 이 물음에는 방편도 있고 진실도 있고 지혜도 있고 행동도 이미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이십 년 동안 이렇게 물었겠습니까? 이는 종사宗師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만일 이 경지를 알아차린다면 자연히 알음알이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장자는 원래 노비구의 지팡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 영축산 꼭대기에서 정진하고 계실 때 일입니다. 나이 많은 비구가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하여 영축산 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다리가 미끄러지면서 언덕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말을 듣은 부처님께서는 “주장자를 지니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뒷날 병든 비구들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자 이럴 때도 주장자를 짚을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몸을 지탱하기 위한 지팡이에 불과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선객들이 행각할 때 일상적으로 지니는 지팡이로써 그리고 존숙들이 젊은 납승들을 경책하기 위한 설법 도구로도 쓰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덕산스님은 걸핏하면 주장자를 휘둘러대는지라 ‘덕산 방棒’이란 별명이 붙게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다닐 일이 없는 결제를 ‘주장자를 메어둔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한 선비가 조주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선사께서 들고 있는 주장자가 꽤나 좋아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만 갖고 싶은 욕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선사에게 말했습니다.
“부처님은 중생의 소원을 들어준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스님께서 들고 있는 주장자를 달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는 법입니다.”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노승도 부처님이 아닙니다.”
결국 그 선비는 안목이 딸려 조주스님의 주장자를 얻어 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이름 없는 납자가 삼생장三生藏이라는 절에 가서 남악혜사南嶽慧思 선사가 평소에 짚고 있던 주장자를 뽑아 들었다가 다시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온갖 의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스스로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서 주장자를 들어서 도로 놓으니 주장자는 기울어지지 않고 똑바로 세워졌습니다.
어찌 주장자뿐이겠습니까? 모든 일에 한생각을 일으키면 착오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이 종이를 자를 때 모습을 보십시오. 마음을 내면 실수를 하지만 아무런 마음없이 자르면 전혀 어려움
없이 똑바로 잘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잠시라도 관조觀照를 떠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연화봉 상암주 법문과 같은 소리인 엄양嚴陽 존자의 주장자도 들을 만합니다.
엄양스님은 조주 선사의 수제자로 도가 높아 세인의 존경을 받았으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아 엄양산에 숨어서 살았습니다. 산천의 수려한 모습을 즐기면서 그 곳에서 조그만한 암자를 짓고서 정진하였는데, 언제나 호랑이 두 마리와 뱀 한 마리가 그 주위를 맴돌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엄양 존자가 길 가에서 한 납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대뜸 주장자를 세우면서 한마디
던졌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모르겠습니다.”
“한 자루의 주장자도 모르는군.”
엄양 존자가 다시 주장자를 땅에다 내리 꽂으면서 물었습니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움푹 패인 구멍도 모르는군.”
엄양스님은 다시 주장자를 걸머지고서 말했습니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주장자를 비껴든 채 옆눈 팔지 않고 천봉우리 만봉우리 속으로 곧장 들어가겠다.”
그러고는 그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
연화봉 상암주 선사께서 “옛 사람들은 어째서 참된 깨달음의 경지에 편안히 머물려고 하지 않았을까?”라고 한 것을 듣고는 운문 고雲門 톓 선사가 시중하여 염拈 하였습니다.
“존숙께서 동쪽 울타리를 끊어 서쪽 벽을 때우고, 다리의 기둥을 안고 목욕을 하고, 닻줄을 잡고 배를 띄운 일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을 위하는 도리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여기에 이르지 못한 이는 이르게 하고, 이미 여기에 이른 이는 머리가 깨지고 골이 갈라지게 하리라.
말해보라. 사람이 있는 곳이 있는가?”
그리고는 한참을 있다가 말하였습니다.
“1????는 허공의 이지러진 곳을 때우고 , 5????은 문에다가 ‘대길大吉’이라 써 붙이겠다.
좋은 솜씨로 연장을 날려서 코 끝의 진흙을 떼어내니 납자의 묘한 기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갑자기 안다 함이여! 백 가지 풀 끝에 소식이 드러난다. 어디가 소식을 드러낸 곳인가?”
그리고는 주장자를 한 번 세웠다가 눕혔습니다.
이에 마지막으로 산승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백천이류이해위극百千異流以海爲極이요
삼라만상이공위극森羅萬象以空爲極이라.
사성육범이불위극四聖六凡以佛爲極이요
명안납승이주장위극明眼衲僧以 杖爲極이니라.
백천의 각각 다른 강물은 바다로써 극極을 삼고
삼라만상은 허공으로 극極을 삼나니라.
성인과 범부는 부처로서 극極을 삼고
명안 납승은 주장자로써 극極을 삼는구나.
그렇다면 도대체 주장자는 무엇으로써 극極을 삼는고?
억喝!□
불기 2543.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