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총무원장의 권한
종헌(제44조)에 의하면 임기 4년의 총무원장은 다음과 같은 권한을 갖고 있다.
∇ 본종을 대표하고 종무행정을 통리 ∇ 종회에서 의결한 종법을 공포하고 종헌 종법의 시행세칙과 위임사항에 관하여 종령을 발할 수 있다. ∇ 총무원 직원 및 사찰 주지 임면 ∇ 종단과 사찰에 속한 재산을 감독하며, 그 처분에 있어서는 승인권을 갖는다. ∇ 종회의 동의를 얻어 징계의 사면, 경감, 복권 가능 ∇ 예산 승인권 및 중요사찰 예산 조정권을 갖는다. ∇ 종단의 특별목적 사업을 위하여 종회의 의결을 거쳐 총무원 직영 사찰을 지정 운영한다. ∇ 종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포상을 행한다. 그밖에 총무원장은 당연직 종정 추대위원이 된다 (종헌 제21조). 또 본사주지 임면(종현 제74조)은 물론 본사 4직 및 말사 주지도 본사 주지의 품신으로 총무원장이 임면(종헌 제맨초)토록 되어 있다. 75명의 중앙종회의원 중 간선의원 27인(비구 22인, 비구니 5인)을 선출하는 7인간선위원회의 위원장도 총무원장이 당연직(종회의원선거법 제5조)으로 되어 있다.
막강한 권한이다. 규정된 것만을 보면 무소불위의 자리이다. 그런데 이 종헌은 서원장이 재임중이던 88년 3월 29일에 개정되고 그 해 5월 3일에 공포된 것이다. 이른바 ‘명실상부한 총무원장 중심체제’로 바꾼 것이다. 이때 종정의 임기를 5년으로 바꾸었다.
이번 원장선거에서 차기 종정 추대와 관련지어 적지 않은 소문이 떠돌았다. (성철 종정스님의 임기가 내년 1월로 만료). 누가 원장이 되면 누가 종정이 되는데 유리하고 혹은 원장선거에서 누구를 밀어주면 종정 추대에서 누구를 밀어 준다는 담합 등이 그것이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종도들은 불교계의 상징이자 권위여야 하는 ‘종정’을 5년 임기로 한정지우고 세간의 선거와 별 다를 바 없는 원장선거와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에 적지 않은 불만을 갖고 있다. ‘종정’은 종신제 혹은 순환제로 하여 누가 봐도 아름다운 과정과 절차로 추대되고, 한 번 추대되었으면 흠집이 가지 않도록 전 종도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강한 총무원장의 직능과 선출에 대해서도 일단에서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6월 7일 한국불교정풍회(회장·용태영)는 ∇ 원장 임기를 2년으로 개정하고, ∇ 총무원을 집단지도체제로
바꿔 운영할 것, ∇ 종회는 20인 정도의 원로로 구성되는 상원을 신설하고, 하원에는 50인 정도의 중견 승려와 일정 정도의 재가신도로 구성하되, 지명위원은 배제할 것, ∇ 사법부에 해당하는 규정원의 구성 내지 감찰기구의 운영으로 종권을 3권으로 분립할 것 등을 성명서 형식으로 제안했다.
보완해야 할 선거제도
올 4월 11일 창간호를 낸 「대한 불교」(발행인 ·흥교스님)는 제10호 사설에서 현행 종헌 ·종법이 지나치게 세속법을 따르고 있다고 비판하고, 형식은 어찌 되었건 적어도 모양은 투표가 아닌 추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회에서 후보자를 압축하여 원로회의에 넘기면 최종결정은 원로회의에서 결정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선거시행세칙 혹은 총무원장 선거법 등을 제정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밟자는 주장도 있다. 충분한 공고기간→후보자 등록→공약 등 정책제시와 여론수렴→지지도 확인→투표로 선출 등 선거의 일반적 수순을 따르자는 것이다. 이번처럼 기습적으로 단행하여 일부나마 선거에 관심있는 종도들을 어리둥절케는 말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물론 수면하에서의 활동은 후보자 양측이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뜻있는 불자들은 어느 곳보다 언론이 통제되어 있는 불교계로서는 선거로나마 한국불교 미래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전개되길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또 해동불교신문(발행인·강찬신)은 설문조사를 통해 지난 선거가 유기명투표로 진행되었다는 데에 많은 종도가 놀라움을 표시하고, 이번 선거를 무기명 비밀투표로 치뤄지길 원한다고 보도했다.
임기가 8월 25일에 완료되고 공식출마선언이 없는 관계로 교계에서는 빨라야 7월 선거를 점치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었다. 그런데 6월 13일자 불교신문에는 갑작스런 임시종회 소집공고가 공표되었다. 비록 공고일은 6월 4일자였지만 4일경에 이를 알고 있는 불자는 극소수였음이 분명하다. 거의 대부분의 종도들은 불과 선거 10여 일을 앞두고 선거날짜를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출마자들의 공식선언도 의현스님은 6월 9일 본사주지 회의에서 있으며, 월탄스님도 6월 11일에야 교계기자들과 만나고서였다고 한다.
막강한 총무원장의 권한에 비해 종도와 함께 공유하는 부분이 거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막판에 월탄스님이 불교관계 신문을 통해 자신의 ‘총무원장 입후보에 즈음한 공약’을
발표하여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것은 매우 고무적으로 평가된다. 비록 ‘연금제 실시’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것이 없다 할지라도 나름대로 체계적인 공약발표는 정책을 제시하고 종도들의 호응을 호소했다는 측면에서 돋보인 점이었다.
이러한 진행이 가능한 것은 현재의 종헌·종법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재 종헌에는 ‘총무원장은 중앙종회에서 선출하며 원로회의의 인준을 거쳐야 취임한다(제42조). 총무원장의 임기는 4년으로 하고 중임할 수 있다(제43조)’고 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선출방법이 명시되고 있지 않다. 종헌 제32조의 중앙종회의 의결을 경해야 할 사항으로 ‘총무원장 선출’이 있지만, 역시 더 이상 구체적 언급은 없다. 즉 종법이나 시행세칙 마련의 규정도 없는 형편인 것이다.
물론 구체적 규정이 없어도 원만히 진행만 된다면 굳이 언급하지 않겠지만 주지하듯이 선거를 둘러싼 온갖 소리가 적지 않은 조계종의 형편을 감안하면 현행 선거제도는 시급히 보완했으면 하는 것이 뜻있는 불자들의 바램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긴장감이 감도는 선거가 유기명 투표로 진행되어 무리를 일으키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종도의 기대에 부응하는 종단을 만들어야
흔히 이번 선거의 결과를 보고 세인들은 자금과 조직, 현행 원장의 기득권이 참신성과 여론을 앞지른 선거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특히 7,8월 주요 사찰에 대한 주지 임기의 만료에 따른 새 주지임명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재야 불교계 일각에서는 대구 동화사 출신의 의현스님이 T·K 인맥과 두터운 교분을 갖고 있는 것이 힘이 됐으리라는 지적이다.
선거가 끝난 이 시점에서 양측은 결과에 대한 갖가지 분석을 하겠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힘을 모아 불교계의 과제를 하나씩 추진해 가는 것이다. 공언한 대로 승가대의 4년제 정규대학으로의 승격, 불교방송국의 지방망 확충 등등 가시적인 불사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종도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종단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된다.
해동불교신문의 설문조사를 굳이 인용치 않더라도 대부분의 불교도들은 이번 선거에 부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불교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원장 한 명이 바뀐다고 해결될 것으로는 기대치 않았던 때문이요, 후보자의 성향이 크게 보아서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 위 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투표자인 종회의원들이 종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것(응답자의 77.8%)이며, 이해관계나 인맥(89.5%)에 의해 표를 던질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이렇듯 새 종단은 종단에 대해 불신하고 있는 많은 종도들의 마음을 풀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임기를 채우고 종헌 종법에 의해 차기원장을 선출한 이번 선거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정한 화합과 정진의 자세로 불교계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원장 선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 종도의 헌신적인 참여가 선행되야 하겠기에 무엇보다 신뢰와 존경받는 종단을 만드는 데 주력했으면 하는 바램일뿐이다.
또 신뢰와 존경받는 종단을 만드는데는 불교도 각자의 노력도 대단히 중요함은 물론이다. 한 차원 성숙된 종단을 만들기 위해 모든 불교도의 정진을 당부한다.